[크리스천 칼럼] 엄마가 떠난 세상에서 맞는 첫 어머니 날에
박종순 목사(제자들교회 담임)
엄마가 죽었다. 작년 6월 무덥던 날 엄마가 죽음을 맞이했다. 8월 중순 한국 일정이 예정되어 엄마와 통화했다. 좀 더 통화하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바빴다. 빨리 전화를 끓고 싶어서 하는 것을 눈치채셨다. 엄마도 별다른 결말 없이 전화를 끓었다. 다음날 엄마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심장마비. 마지막 통화의 후회가 몰려왔다. 견딜 수 없는 자책감이 밀려 왔다. 좀 더 다정하게 이야기할걸. 사랑한다고 말할걸. 고맙다고 전할걸. 늘 마음에만 있었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죄다. 표현하지 못한 게으름은 큰 죄다.
4년 전 장모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무덥던 여름, 장모님도 심장 마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티후와나(멕시코) 공항에서 장모님의 전화를 받았다. 공항에선 왜 늘 바쁜지! 맘이 분주한지! 공항직원 일 처리는 왜 이렇게 불합리한지! 그런 상황에선 왜, 늘, 어김없이 전화는 오는지. 내가 빨리 전화를 끓으려 하는 것을 아셨다. 별다른 결말 없이 전화를 끓으셨다.
사역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온 다음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모님의 소천 때도 난 심하게 자책했었다. 하지만 다시 실수하고 말았다. 실수가 반복됐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수 없는 나의 문제다.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알베르 카뮈가 발표한 '이방인'의 첫 문장은 가히 충격을 넘어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 실존의 상실과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했던 까뮈는 이 한마디로 세계를 흔들었다.
엄마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이방인'의 뫼르소를 통해 까뮈는 전쟁으로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 미쳐버린 유럽 사회를 질타했다. 그 메시지는 어머니 날을 맞은 나에게도 묵직한 한방이 되어 가슴을 때린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첫 번째 맞이한 마더스데이에 엄마의 부재가 너무 크게 와 닿는다. 가슴이 시리고 마음은 허전하다.
'엄마'라는 단어는 신비다. 삶의 욕구와 현실의 불일치에서 오는 부조리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실존에 대한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일류 공통의 언어다. 엄마의 죽음은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헌신과 수고를 영원히 상실했다는 의미다. 목사인 나에게는 가장 맹목적이고 불합리하며 반이성적인 광신자 한 명을 잃었고, 내 맘은 세상을 잃은 듯하다.
엄마는 영원불멸의 불사다. 엄마는 죽었다. 4년 전, 1년 전 이미 나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엄마는 내 심장 어느 한자리에, 내 뇌의 전두엽에, 깊은 영혼 구석 어디에 여전히 살아계시다. 여전히 우리의 기억과 숨결 속에 살아 계신다.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육체의 생명이 끝나도 엄마란 존재와 실존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5월, 여전히 엄마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결하며 고결한 단어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다시 엄마를 부를 수 없는 날은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