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기독교 인문학] 불 꺼진 창문의 슬픈 사연
어느 교장이 은퇴하고 평생 중소 도시인 고향에서 살다가 어렵사리 장만한 서울 집으로 이사했다. 시골에서는 (은퇴한) 교장으로 살았는데 서울에서는 그냥 할아버지다. 나들이 나갔다가 누가 할아버지가 아닌 아저씨로 불러 주는 날에는 종일 기분이 좋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 생활은 불편하다.
불편을 무릅쓰고 서울에 사는 이유는 하나 뿐인 아들과 가까이 살기 위해서다. 알뜰한 마누라가 아들에게 집을 하나 사주었는데, 노 부부는 아들 집을 팔고 자기들 돈 보태서 큰 아파트를 하나 장만해 아들네와 같이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 말을 꺼냈다가 똑소리 나는 며느리에게 혼(?)났다. 며느리는 지금까지 힘들다 이제 숨 돌릴 만 한데 부모님 모시고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며느리 얘기를 들으며 이상한 노인 취급을 받는 것 같기도 하고, 며느리가 버릇없는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결국, 타협해 며느리가 원하는 좋은 학군 지역에 아파트 두 채를 사서 따로 살기로 했다. 아들은 조금 큰 집, 노 부부는 좀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앞뒤 동에 서로 보이는 집이었다.
두 집 거리는 서로 ‘불빛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다. 속 사정을 모르는 주변 사람과 동창들은 행복한 노후라며 부러워했다. 처음에는 시답잖았는데 그들의 칭찬과 부러움이 진심인 듯해서 자랑하게 되었다. 아주 가끔 며느리 초청으로 아들 집에 가서 손자들도 보고 요상한 퓨전 음식도 먹으며 좋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음식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신선하게 여겼던 퓨전 음식이 영 시원치 않았다. 아내는 아들네에서 저녁을 먹고 와서 김칫국을 마시기도 하였고, 나중에는 이런 음식을 먹고 사는 아들을 걱정했다. 그 걱정이 구체화 되어 음식을 갖다 주기 시작했다.
아들이 어릴 때 잘 먹었던 청국장을 준비해서 아들네 갖다 주고 돌아온 아내는 아들이 좋아한다며 좋아했다. 아내는 종종 누룽지, 숭늉, 김치 등등을 챙겨서 아들 집을 방문했다. 방문이 잦아지며 아들네 문이 잠겨 그냥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내가 헛고생하는 것이 싫어 큰소리치기도 하다가 아들네 집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가라고 일러 주었다.
아내는 충고대로 아들네 창문에 불이 켜져있는지를 확인하고 음식을 갖다 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들네 창문에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불이 꺼져 있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건너가 초인종을 울렸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헛걸음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 몰래 아들네에 갔다. 집안에 인기척이 있는데 불이 꺼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들 앞집 사람에게서 방금 며느리가 파 한 뿌리 얻어 갔다는 말을 듣고 맘이 아팠다. 아들네는 부모들의 방문이 탐탁지 않아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식탁에 촛불을 밝히고 조용히 식사했던 것이다. 이 상황을 마누라에게도 알릴 수가 없었다. 아내가 받을 상처가 걱정되었다.
이상은 거칠게 간추린 박완서의 소설 '촛불 밝힌 식탁'이다. 어버이날이 있는 오월에 다시 읽게 되는 작품이다. 이런 서글픈 이야기가 오늘도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니 이와 비슷한 얘기를 내가 만들고 있는 것 같아 맘이 시리다. 사랑이 왜곡되고 무시되어 맘이 슬픈 부모님의 사연을 아는지 오월의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