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또다시 불황의 먹구름이 드리운 해운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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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또다시 불황의 먹구름이 드리운 해운업계

웹마스터

이보영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


하루 평균 약 6만 척의 배가 바다를 통해 중국에서 생산된 전자제품, 방글라데시산 의류품, 아르헨티나산

쇠고기, 걸프만의 원유 등을 지구촌 곳곳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좁은 배에서 파도와 싸우며 종사하는 선박 근로자(선장, 선원)들은 줄잡아 약 120만명이나 된다.


해운시장은 장기불황으로 세계 톱 20개 해운사 중, 8개 해운사가 퇴출(또는 합병)되었고, 캄캄한 터널 속을

지나던 중, 2020년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다. 세계경제는 마이너스로 곤두박질 칠 것이 뻔하게 예상됐다. 전 세계가 ‘팬데믹(Pandemic)’ 공포에 휩싸이자 소비자들은 너도 나도 생필품을 '사재기' 했다. 


미국 정부는 문을 닫는 소상공인들에겐 경기부양 지원금과 개인들에겐 실업수당으로 돈(Money)을 풀었고,

이 공돈(Free Money)은 소비성향에 부채질을 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직장인들은 본격적인 재택근무로 전환되고 외출이나 여행이 제한되니 온라인 소비심리가 폭증했다. 수요가 증가하자 중국과 아시아로부터 상품들이 연일 쏟아져 들어왔다.


그로 인해 해상 물동량이 급증하고 화물운임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호황으로 반전되었다. 미 서부지역 각 항만에는 내륙 연계 운송수단인 기차와 트럭이 부족해 컨테이너들이 산처럼 적체되기 시작했다. 항만·내륙 간에 병목현상(Bottleneck)이 발생한 것이다.


장기간 불황에 시달리던 해운업계에는 즐거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누적된 적자를 메꾸고도 흑자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해운업계는 오랜만에 호황기(2020 ~ 2023년까지)를 누렸다.


한편, 부산항에는 미국으로 수출되어야 할 화물(컨테이너)들이 점점 적체되어 가고 있었다. 국적선사인

‘현대상선’과 ‘SM 라인’의 배로는 운항횟수나 선복량(Freight Space)으로 소화하기가 역부족이었다. 외국배들은 자국 화물을 최우선으로 탑재하고, 스페이스(Loading Space) 여유가 있을 때엔 부산항을 기항하지만, 만재(Full Loads)인 경우엔 부산항을 패싱하기 일쑤였다. 짐은 많은데 배가 없었다.


무역업자들은 화물이 적기에 선적되지 못하는 사태를 당국에 호소하고 가슴을 쳐도 뾰족한 해결수단이

없었다. 화물 미선적으로 상품대금 결재도 못했고, 수입상과의 계약을 못지켜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등,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호황기에 한진해운이 있었다면…. 필자는 몸 담았던 회사 생각이 절절했다. 무역업계도, 정부기관도

부산을 모항(Home Port)으로 주름잡던 한진해운의 필요성을 뼈져리게 느꼈을 것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배가 없어 수출을 못한다니, 정부는 가슴이 뜨끔했을 것이다.


2017년 해체 당시, 한진해운은 155척의 선박군으로 세계 3대양에 정기선을 운항하며, 미국행은 매일,

유럽행은 주간으로, 지중해, 중남미까지 해상네트워크를 갖춘 선복량 세계 제7위를 마크하고 있었다.


2011년 7월 남아공의 ‘더반’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을 ‘PYONG CHANG, KOREA’로 선정한다는 발표가 터졌을 때, 고 조양호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발표 현장에 있었다. 2014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된 고 조양호 한진그룹 총수는 위원들과 함께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국가들을 답사하며 경기장 시설과 설비, 경기운영 시스템(Software) 등을 벤치마킹하며, 약 2년간을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탄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문체부장관에 의해 직위해제 통보를 받았다. 이 뉴스는 당시 스포츠계는 물론 재계도 놀랐고, 본인과 한진그룹에겐 큰 충격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당시의 숨겨졌던 얘기(Behind Story)들이 슬슬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체육을 통해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을 도모하며 창조문화, 경제를 지향한다는

구실로 엄청난 기금을 대기업들로부터 강제 기부받아 온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K 스포츠재단’이 평창 동계올림픽의 신규 설비와 시설물에 독점 참여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조직위원회장은 모든 참여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자격심사도 한다는 원칙론을 고집했다. 스포츠재단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한진그룹의 계열사들도 스포츠재단의 모금에 비협조적이었던 것도 ‘미운털’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장기불황의 늪에서 생존을 모색하던 한진해운은 구조조정은 물론,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국내외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고 사주(社主)의 사재도 투입했지만, 정부의 구제금융은 한진해운을 외면했고, 재무구조가 훨씬 취약한 현대상선으로 향했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하에 들어갔고,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권력의 입김으로 갑자기 공직이 날아가고, 한국 해운을 대표하는 굴지의 기업이 이렇게 쉽게 해체당할 수 있다는 게 백사불해(百思不解)다.


요즘 ‘롱비치 항만’이나 ‘LA 항만’에 나가 보면 분주하게 움직이던 높이 솟은 갠트리 크레인들이 거의 쉬고 있다. 항만 접안에 대기하고 있는 선박이나 외항에서 입항을 기다리는 선박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항만 내의 ‘트럭 게이트(Truck Gate)’에도 출입하는 트럭, 트레일러 행열도 예전같지 않고 드문드문 보인다. 갑자기 바다가 조용하고 한산해 진 기분이다. 해운업계에 불황의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는 징조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든다. “호황은 짧고, 불황은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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