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한 소인 물러가고 한 소인 나아온다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의 물음에 예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로마에 아부하며 왕좌를 유지하던 간특한 헤롯, 타락한 종교권력인 대제사장 가야바, 저들의 선동에 가벼이 놀아난 유대민중, 스승을 권력에 팔아넘긴 가룟유다,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친 제자들…, 그 숱한 소인배들이 메시아를 십자가 처형대로 내몰았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측근으로 ‘로마역사상 가장 음흉한 모략꾼’이었다는 세야누스 집정관의 비호 아래 유대를 10년간 통치한 총독 빌라도는 소인배 정치인이었다. 유대인 철학자 필로는 그를 ‘거칠고 사악하며 잔인한 인물’로 평가했다. 그 빌라도의 물음이 진리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였을까? 예수가 침묵한 것은…. 성인은 소인과 다투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는 소인배 제자들의 탓도 없지 않았다. 잘생긴 얼굴과 능란한 말재주로 조국과 적국을 넘나들다가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로 전락한 알키비아데스도, 30인 과두정파의 지도자로 민주정파를 혹독히 탄압한 크리티아스도 모두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민주정파의 아니토스 일파가 소크라테스를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고발하자, 일당을 받고 나온 배심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철인정치를 외친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저들 소인배의 손에 조용히 죽어갔다. 철인은 소인들과 맞붙어 싸우지 않았다.
중종반정의 공신인 훈구파는 권문세족이 되어 국정을 농단하며 더럽게 재산을 긁어모았다. 성리학의 도덕정치로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사림파의 조광조는 훈구공신들을 경계한 중종의 후원 아래 강도 높은 정치개혁을 추진하면서 위훈삭제(僞勳削除)를 밀어붙인다. 가짜 공신들의 특권을 박탈하고 그 직책과 재산을 몰수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훈구파는 급기야 주초위왕(走肖爲王)의 모함으로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를 제거한다.
임금과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던 조광조의 개혁은 적폐척결을 지나치게 밀어붙이다가 피로와 불안감을 불러왔다. 도덕정치의 이상을 지닌 조광조도 정치현실에서는 경험이 미흡한 유학자에 불과했다. 성인은 소인과 싸우지 않지만, 그는 피터지게 싸우다가 패배했다. 소인들과 싸우려면 자신도 소인이 되거나 그들이 감당 못할 대인(大人)이 되어야하는데, 그는 소인의 음습한 정치도 몰랐고 대인의 큰 정치도 알지 못했다. 이상주의자는 종종 선악이분법의 도그마에 빠져 교왕과직(矯枉過直)의 잘못을 저지르기 일쑤다.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곧음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형벌로는 이루지 못해도 모함으로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권모술수의 교과서 나직경(羅織經)을 쓴 당나라 때 간신 내준신(來俊臣)의 신조다. 그 신조를 경전처럼 떠받들며 온갖 중상모략을 일삼는 소인배들과 싸워 이길 성인이나 군자는 없다. 그래도 기어코 소인배와 겨뤄야한다면 모름지기 눈앞의 소리(小利)를 버리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볼 줄 아는 대인의 길을 걸어야 할 터이다.
잘못된 일의 책임을 군자는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論語 衛靈公篇) 정권이 교체되고 여야가 바뀌었지만, 소인배 정치판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한 소인 물러가고 한 소인 나아온다. 이기고 지는 자, 소인들뿐이로구나.”(一小人退 一小人進 勝負者 小人而已) 조선의 영의정 신흠(申欽)의 탄식이다. 소인이 물러간 자리에 대인이 아니라 또 다른 소인이 들어앉는 불행을 문명시대인 지금도 겪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탐욕덩어리인 기성 정치세대야 어차피 희망 없는 소인배 무리라 해도, 저들과 맞붙어 치고받는 젊은 세대 역시 결코 듬직한 대인의 모습은 아니다.
청년들마저 소인배 정치꾼으로 그치고만다면, 희망도 미래도 없다. 저들이 제 잘못을 감추거나 ‘비단주머니’의 잔꾀 따위에 기댐이 없이, 대망을 품고 대인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니체의 충고다. ‘괴물’을 ‘소인’으로 바꾸면, 젊은 정치세대를 위한 충고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