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행복이발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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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행복이발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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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여년 쯤 되어서 친구들을 만났다. 10명 남짓한 친구들이 모여서 즐거운 식사를 했다. 고교 졸업식 후에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반가운 식사자리에서 고등학교 시절 추억을 나누다가 ‘누가 우리의 스승인가?’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그런데 그 날의 결론은 고등학교 목사님이 우리들의 스승이라는 것이었다. 놀랍게 만장일치였다.   

   

교회도 안다니는 친구들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목사님 말씀이 생각났단다. 고교 2학년과 3학년을 교목실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했다. 목사님의 어설픈 비서였다. 철없던 시절, 실수도 많았고 잘못도 많았고, 목사님께 혼도 났다. 하지만 평생에 가장 자랑스러운 이력이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목사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위해 2차를 샀다.  

   

우리 오상진 목사님은 부산의 달동네 교회(가야제일교회)를 목회 하시면서 혜광고등학교 교목을 겸임하셨다. 그런데 당시 목사님은 코리아 헤럴드를 정기 구독하셔서, 교목실에 영어 신문이 배달되었다. 사전도 없이 영자 신문을 술술 읽으시는 모습은 종교부 임원들에게 큰 화제였다. 목사님을 존경한 우리들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일종의 영어 공부 붐이 있었다. 생애 첫 월급을 받게 되었을 때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영어 신문을 구독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평생 영어 신문을 읽는다. 

   

목사님이 주신 또 하나의 영향력은 기도다. 각반 종교부장 회의나 절기 예배 연합 성가대 연습을 위해서 교목실에 모이면 늘 목사님은 뜨겁게 기도해 주셨다. 휴식 시간에 교목실에 가면 목사님은 홀로 기도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목사님께서 그때 기도하시며 이름을 부르시며 축복하셨던 이름들이 정현과 정호였다. 그 이름이 한국 교회에서 쓰임 받는 서울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님과 대전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님이다. 훌륭한 두 목사님들 뒤에는 아버님의 기도가 있었다.  

   

지난 금요일 ‘행복이발소’에 들렀다. 이름 때문에 꼭 가보고 싶었던 이발소다.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가 운영하는데 그 분들이 경북 의성군 다인면 삼분리 삼분교회 즉 오상진 목사님 고향교회 출신이셨다. 장로님과 권사님은 오상진 목사님 집안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장로님의 할아버지가 오정현 목사님 할아버지와 함께 교회를 섬겼고, 함께 기도하셨던 장로님이셨다. 두 분께서 오상진 목사님 아버님 기도의 삶을 들려 주셨다. 이발을 하며 그분들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도하는 아들, 쓰임 받는 손자들의 뿌리에 눈물겨운 기도의 이야기가 있었다. 

   

오 장로님은 매일 밤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셨단다. 어느 늦가을 새벽, 부지런한 농부가 산기도 마치고 내려오시는 오 장로님을 만났는데 장로님의 어깨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더란다. 서리를 맞으며 밤새 기도하신 것이다. 삼분교회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기도 간증이다. 이런 기도를 먹고 자란 자녀들 그리고 손자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는다. 

   

의성군 삼분교회는 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교회다. 작은 시골 마을교회에서 국회의원이 끊이지 않고 배출되고 있고, 수많은 목회자, 학자, 박사 그리고 공무원을 배출하고 있다. 모두 기도 씨앗의 열매들이다. 행복이발소에서 들은 행복비밀을 맘에 새긴다. 오늘 눈물의 기도는 씨앗이 되어 다음 세대의 행복(축복)으로 피어 날 것이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이다’라고 노래했던 시인의 노래가 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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