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 칼럼 교육대란을 해결할 선생님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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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 칼럼 교육대란을 해결할 선생님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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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송해(왼쪽) 선배와 함께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1. 독불장군을 만드는 아버지

학교 교육에 위기가 왔다. 교권이 무너졌다.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갑질,괴롭힘을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교육 얘기가 나오면 겁이 난다. 성실하게 모범생으로 학교생활을 못 한 게 후회 스럽다. 1964년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 선생님께서 부유한 반 아이들을 모아서 과외수업을 하셨다.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과외를 받지 못했다. 

심술 많고 트집 잘 잡는 못된 성격이 그냥 있을 리가 없다. 과외 수업하는 아이들을 못살게 굴었다. 몇 번이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있는 집 애들이라 성적이 팍팍 올라가겠네” “우린 과외를 못하니까 낙제나 하겠지” 누군가 일러 바친 게 분명하다. 선생님께서 생활기록부 행동 발달 사항란에 “이 학생은 독불장군이니 특별한 지도를 요 한다는 평가를 해 놓으셨다. 방과 후 과외를 하는 학생들에게 공개되어 말이 났고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퍼졌다. 아버님이 격노하셔서 담임 선생님께 항의했다. 잘못된 아이들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 나무랄 수도 있고 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독불장군이란 표현은 합당치 않다. 더구나 남들에게 공개가 돼서 아이들의 놀림 감이 되고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잘못된 일 아닌가? 젊은 담임 선생님은 별 게 아니라 하면서 당당히 맞섰다. 아버님은 시골 사람이라고, 돈이 없다고 얕본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흥분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교장, 교감 선생님 실까지 쳐들어가 언성을 높이며 사생결단을 하시려는 듯 했다. 아버님은 이장 이셨다. 싸움 났다고 통장 반장 동네사람들이 떼로 달려오고 파출소 순경까지 뛰어와서 말렸다. 학교는 아수라장 난장판이되었다. 독불장군이 세긴 센걸 그때 알았다. 나 하나 뿐이던 독불장군을 집집마다 키우고 있다.

2. 기적이냐..거적이냐

1965년 가을 초등학교 6학년때 난생 처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다. 서울역-남대문-경복궁-창경궁-동물원-식물원-동대문-KBS 서울중앙방송국-남산 케이블카 환상적이다. 가본 적이 없으니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비용은 200원이다. 어머님이 행상을 하셨고 아버님이 고물 장수를 하셨다. 마침 사기를 당해 집안 형편이 지극히 어려웠다. 하교 길에 담임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내일 아침 이 돈 200원을 내게 내고 버스를 타라. 너는 반장이고 학교를 위해 일을 많이 했으니 가야 한다.“ 못 가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미안했다. 

선생님께 죄송스러웠다. 그냥 빠지겠다고 했다.”선생님이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시키는 대로 해“ 나중에 알았다. 우리 반에 여행 갈 수 없는 여러 학생에게 여행비를 대신 납부해 주셨다.그날 이후 지금까지 거룩하신 스승의 은혜를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평생 간직하고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주신 발안초등학교 최곡영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KBS방송국이 특히 인상 적이였다. 아나운서든 코미디언이든 방송국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이 변함없이 자라고 또 자라서 결국은 KBS 코미디언이 될 줄이야! 200원이 결정적이였다.

선생님께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발안초등학교 어린이 신문 기자로 임명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이 무엇을 알까. 그래도 기자는 기자다. 그 무렵에 의사 안중근 이란 영화를 봤다. 기자로 변장하여 만주 하얼빈역에서 일본, 러시아 경비병을 따돌리고 이등박문에게 접근하여 저격하는 용감한 안중근 의사를 화면으로 만났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불의를 응징하는 안중근 기자가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다. 비록 침략을 당했으나 일본 아니 전 세계에 한국인의 저항의식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죽음을 겁내지 않고 목숨을 던져 싸우는 민족 정신이 있으니 언젠가는 해방과 독립을 이룰 것이라는 예고가 아니었겠는가.

선배 중고교 학생들의 3·1운동 궐기대회, 향남면 4H 농산물 경진대회, 발안천대민봉사를 나온 국군용사 봉사단 활동, 화성군 반공방첩 정신함양 웅변대회 등 각종 이벤트를 찾아다니며 취재를 했는데 원고 작성 능력이 날로 늘어나더니 이것이 코미디, 개그 작가를 만들었다.

이러한 인연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분명 기적이다. 기적은 기적인데 왜 나의 인기는 이 모양일까 이해가 안된다. 다시 한번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나는 미주조선일보 LA의 칼럼을 맡았고 쓰고 쓰고 또 쓰는 것이다. 반드시 기적을 써서 일생에 한번은 스승님께 밝은 얼굴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이번에 기적을 못 쓰면 거적을 뒤집어 쓸 것이다.

3. 스승을 따르자니 아이가 울고 아이를 따르자니 스승이 운다

한 가정에 자녀가 하나밖에 없는 세상이 됐다. 아이는 우리 부부의 모든 것을 다 물려받아야 한다. 만약 아이가 잘못되면 회복이 안된다. 가문과 혈통을 계속 이어가서 내 DNA를 갖고 세상에 나를 존재케 하는 오직 하나다. 가치가 무한대다. 예상이 되는 결과였다. 이렇게 되니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단장이고 소대장이고 선생님이고 교장이고 눈에 보이겠는가? 죽기 살기로 몸부림을 친다. 오직 내 자식 뿐이다.자식을 위해서는 부도덕이든 위법이든 몰상식이든 야비하든 가리지 않는다. 아주 현명한 이 땅의 자녀들은 이 상황을 알게 된다. 그 순간부터는 종래의 아이들이 아니다.

부모에게 담임 선생님에게 사회에 군대에 정부에 무한정 요구한다. 왜? 들어주게 되어 있으니까 들어줄 수밖에 없을 때 지금과 같은 학교문제가 터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인류가 멸망한다던 학자들 다 어디 갔나? 그걸 믿고 제도를 만든 정치가들 다 어디 갔나? 수습 불능의 비극에 해법이 될까. 자연으로 돌아가라!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 시대에도 보통 5남매 자녀를 키웠던 위대한 부모님이 그립다.

4. 선생님은 아무나 하나

어느 나이트클럽 45번 웨이터 엄영수가 있었다. 유재석, 신동엽도 있는데 왜 엄영수로 했나? 지적이잖아요. 뭔가 많이 아시고 기억력이 좋으시더라구요. 전혀 코미디언 같지 않아서요. 왜 45번 이야? 45 가보 아닙니까? 38 광 땡으로 하지. 딴 놈이 먼저 꿰찼습니다. 비똥 광땡도 있어. "아 그러네요 선생님, 그걸 몰랐네요 선생님." 

포항 지방공연 때 MC가 짝퉁 어멍수 였다. DJ 성대모사, 내 걸음걸이와 속사포 말투를 흉내내는 게 주 특기였다. 이 동네에서는 잘 먹히는 MC다. 이런 경우 나는 다른 소재로 웃기고 짝퉁 MC를 격찬해서 띄워야 한다. 짝통보다 잘하는 걸 보여줘서 그나마 열심히 사는 지방 MC 기 죽일 일은 없지 않은가? 어멍수에게 연기 비법을 전했다. DJ대통령님의 동영상을 자주 볼 것, 말할 때의 표정 특히 입 모양을 똑같이 할 것, 끝나면 "어때요 똑같죠! 이거 힘든 겁니다. 박수!" 자신감이 90% 다. 

박수를 스스로 유도하라! 먼저 크게 웃어서 객석에서 따라 웃게 최면을 걸어야 한다. 작별하면서 어멍수는 "엄영수 선생님 고맙습니다. 엄영수 선생님 많이 배웠습니다. 엄영수 선생님 감사합니다." 혹시 나를 어멍수로 발음 할까 봐 너무 조심하다가 "어믕수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실수를 했다.

어믕수도 좋다. 나도 선생님이 되었다.

5. 만들어지는 선생님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오랫동안 김대중 선생님으로 불렸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이 훨씬 더 인기가 높았다. 탄압을 받고 수사관에게 쫓기고 사형 선고를 받을 때까지 늘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어디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얻게 되면 대중은 흥분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전직 대통령이 많이 있지만 다른 분에게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잘 쓰지 않는다. 유독 김대중 선생님이다. 누가 어떻게 하라고 강제로 약속한 적도 없다. 선생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 김구 선생님, 안창호 선생님 우리는 많은 민족 지도자 즉 선생님을 갖고 있다. 이 또한 우리의 자랑이다. 코미디언 구봉서 선생님, 송해 선생님, 남보원 선생님이 있다. 우리 코미디언들은 선생님께 인생, 연기, 생활. 참으로 많은 걸 배웠다. 남북 간에 만나서 회담을 할 때도 선생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처음 만나 존경의 표시도 되고 친근감도 느끼고 가장 무난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려울 때나 급할 때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생님만 찾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한 선생님은 어디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고 예의를 갖춤으로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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