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20년 전쟁… 돌고돌아 '원점'
시한 1분 앞두고 대피·철군 완료
아프간 정권은 다시 탈레반 손에
철수 오판 '제2의 사이공' 조롱도
녹록지 않은 '포스트 아프간' 전망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 전쟁인 아프가니스탄전이 30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미국이 철수 시한인 31일을 1분 남겨둔 30일 밤 11시 59분(아프간 현지시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민간인 대피 작전을 끝내고 20년간 주둔한 미군 철수까지 마무리해 이날부로 아프간전은 끝났다.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9·11 테러가 발생한 다음 달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작된 미국 주도의 서방 진영과 아프간 내 탈레반의 싸움이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간 것이다.
애초 전쟁의 원인 제공자는 탈레반이 아니었다. 미국은 9·11 테러 배후로 지목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당시 아프간 정권을 쥔 탈레반에 인도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하자 아프간을 침공해 전쟁이 시작됐다.
유럽 등 서방과 합세한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우고 2011년 5월 빈라덴까지 사살했지만 미국은 내내 전쟁의 수렁에 빠져 나오질 못했다.
알카에다 축출 목표는 탈레반 소멸로 바뀌었고, 아프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정부 수립이라는 임무까지 생겼다. 그러나 산악 지대의 특성을 십분 이용한 탈레반은 끝까지 버티며 게릴라전, 테러를 통해 미국을 괴롭혔다.
조지 W. 부시 때 시작된 전쟁은 이후 물적, 인적 피해 증가와 더불어 미국 내 반전 여론 고조라는 저항에 부딪혔다.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정권마다 아프간전 종식과 미군 철수를 내세웠지만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탈레반을 소탕할 수 있다는 국방부 등 매파의 주장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연히 전쟁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치솟았고 인명 피해도 커졌다.
지난 4월 기준 아프간전으로 희생된 이는 약 17만 명으로, 아프간 정부군(6만6000명), 탈레반 반군(5만1000명), 아프간 민간인(4만7000명) 등 아프간 측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미군 2448명이 숨지고 미 정부와 계약을 한 요원 3846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군 1144명 등 미국 역시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미국의 전쟁 비용은 1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에 부정적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임은 변곡점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포함한 동맹군이 철군하는 평화협정을 작년 2월 탈레반과 맺었다. 이 합의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1만2000여 명이던 미군을 지난 1월 퇴임 시 2500명으로까지 줄였다.
새로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합의대로 철군이냐, 병력을 충원해 전쟁 계속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 속에 지난 4월 미군 철수, 즉 아프간전 종식을 최종 결정했다.
애초 철군 시한을 9·11 테러 20년인 9월 11일로 했다가 그마저도 8월 31일로 당기며 고삐를 죄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탈레반이 미군 철수와 맞물려 파죽지세로 진격하자 정부군이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한 채 손을 드는 바람에 영토를 급속히 탈레반에 내주는 상황이 벌어졌다.
바이든 정부가 미군 철수 후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을 자력으로 막아내거나, 정권이 무너진다 해도 내년 말,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버틸 것으로 오판한 결과였다.
특히 탈레반은 지난 15일 마지막 보루이던 수도 카불을 함락하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마저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2001년 이후 20년만의 정권 재장악에 성공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아프간 정부의 붕괴까지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지만 11일 만에 무너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