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 Law] 여왕폐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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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z & Law] 여왕폐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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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원 

변호사 


1981년 7월 29일 19살이던 다이애나는 12살 연상인 찰스 왕세자와 런던의 세인트폴대성당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다이애나와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이 미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필자는 이 결혼식을 당시 TV로 보면서 할리우드 스타들의 결혼식인 것처럼 미국민들이 열광하는 장면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역사가 짧고 영국 후손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미국에게 영국의 역사는 자기네 역사처럼 여겨지고 영국의 역사에 대한 드라마나 영화들은 미국인들에게 사극이다. 그래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미국민들에게 영국 왕실은 늘 큰 관심사다.

 

영국의 역사는 이런 미국민들의 관심 외에도 세계 현대사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영국 역사뿐만 아니라 현대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 8일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막을 내리는 큰 사건이다.


70년간 여왕의 지위를 유지한 엘리자베스 2세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영연방의 군주였다. 그녀에 대한 헬렌 미렌 주연의 2006년 영화 ‘더 퀸’ 첫 장면에서 토니 블레어가 수상이 되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취임 인사를 온다. 그런 블레어 수상에게 여왕은 그 자리에 윈스턴 처칠과 마가렛 대처가 앉았었다고 조용하게 말하면서 그를 압박한다. 여왕은 지난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까지 모두 15명의 총리를 만났다.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는 영화 ‘킹스 스피 치’의 주인공으로 형 에드워드 8세의 갑작스러운 퇴임으로 엉겁결에 왕이 됐고 여왕도 조지 6세가 서거해서 지난 1952년 즉위했다. 여왕의 즉위 당시 영연방은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공, 파키스탄 등 54개 국이 가입했지만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통치 영역이 줄어 들었다. 그래도 엘리자베스 2세는 서거 때까지 자메이카, 바하마 등 15국, 1억 2900만명을 거느린 국가 원수였다.


여왕은 공주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의 승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39년 당시 겨우 14살이던 여왕은 처음으로 대국민 라디오연설을 하면서 영국은 끝내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화를 되찾을 것이라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여왕은 1942년 군대를 사열하며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1945년에는 여군 지원부대에 자원 입대해서 탄약을 관리하고 군용트럭도 몰았다.


만일 연합국이 이기지 않았으면 미드 ‘맨 인 더 하이캐슬’처럼 일본과 독일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고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로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들의 독립으로 미국에게 최강대국 자리를 뺏겼다.


영국이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물론 당연히 엄청 많지만 특히 미국의 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독일을 따라 대륙법 체계였던 한국은 법전 위주에서 최근에는 영미법 체계인 판례 위주로 바꿔가고 있다. 미국은 아무리 노동법 조항들을 달달 외어도 판례가 우선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노동법 케이스들이 어떻게 법조항들을 적용하느냐로 판결이 내려진다. 소송을 당한 한인 고용주들을 영미법 체계를 이해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미뤄왔던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을 그룹 퀸의 ‘여왕폐하 만세(Long Live the Queen)’을 들으면서 봐야 겠다. ‘더 크라운’의 제작진은 여왕의 상중에 제작을 잠시 멈추

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여왕이 천당에서 며느리였던 다이애나를 만나면 화해를 하기를 바란다. 

문의 (213) 387-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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