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짝퉁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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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짝퉁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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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은 언제부턴가 흥청거리는 유흥의 계절이 되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성탄 메시지는 점점 엷어지고, 어깨춤을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곳곳에 울려 퍼진다.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는 예수가 태어난 시골 외양간의 말구유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기원 후 1세기 무렵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메시아 대망(待望)사상이 무르익던 시절이었다. 특히 로마의 식민지배 아래 있던 유대에서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성취할 메시아가 곧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컸고, 실제로 수많은 정치적․민족적 메시아들이 등장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도 언급된 테우다스는 로마에 항거한 무장독립투쟁으로 잠시 메시아의 칭호를 누렸지만, 얼마 뒤 로마군에 붙잡혀 처형되자 그 메시아 칭호는 유대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 후 이집트에서 건너온 익명의 투사가 올리브 산에 올라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포하자, 열광한 유대인들은 그에게 메시아 칭호를 바쳤다. 그렇지만 곧이어 벌어진 로마군과의 치열한 접전 끝에 그는 어딘가로 도망쳤고, 실망한 유대인들은 그의 이름을 메시아 리스트에서 지워버렸다. 


서기 36년경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 모세의 옷이라는 누더기를 걸치고 나타난 자칭 메시아가 일단의 군중을 이끌고 로마에 저항하다가 총독 빌라도가 보낸 군대에 진압되었다. 그 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 예수의 처형에도 끄떡없었던 빌라도는 결국 그 일로 파면되었다. 물론 사마리아의 메시아도 자취를 감췄다. 


서기 132년 드디어 시몬이라는 영웅이 등장한다. 그는 뛰어난 군사작전으로 로마군대를 예루살렘에서 깡그리 몰아내고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포한다. 온 유대인들이 그를 바르 코크바(별의 아들)라고 부르며 환호하는 가운데, 존경받는 랍비 아키바 벤 요셉은 그에게 메시아 칭호를 수여한다. 역사상 공인(公認)된 메시아는 시몬 바르 코크바가 유일하다. 그러나 곧이어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정예부대가 바르 코크바 군대를 전멸시켰고, 이스라엘은 전보다 더 가혹한 식민통치를 맞게 된다. 이후 유대인들은 바르 코크바를 바르 코세바(사기꾼의 아들)라고 바꿔 불렀다. 


저 많은 정치적 메시아들은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였다. 유대 민중은 그들에게 주저 없이 메시아 칭호를 바쳤지만, 저들의 일시적 성공 뒤에는 참담한 패배와 함께 더 잔혹한 압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날 저들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구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 사형수의 돌무덤에 묻힌 예수는 유대 민중이나 랍비들로부터 잠시라도 메시아 칭호를 받아본 적이 없다. 사제의 예복을 걸친 적이 없는 예수는 종교사범으로 기소되었지만 종교의 차원 너머에 있었고, 독립투쟁을 이끈 적이 없는 그는 정치범으로 처형되었지만 정치의 영역을 초월해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정치적․민족적 메시아가 아니었다. 예수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철저히 소외된 아웃사이더였다. 


식민지를 약탈하는 로마 제국주의, 정의와 도덕을 비웃는 위선의 정치, 약자를 짓밟는 불의한 경제, 정신을 오염시키는 사상과 이념의 혼란…, 그 짙은 어두움 속에서 예수는 오직 충만한 사랑의 세계, 소망 가득한 마음과 영혼의 하늘나라를 선포했다. 그는 가난하고 무식한 하층민들, 방탕한 여인, 부패한 세리의 친구였다. 그의 마지막 친구는 함께 십자가에 달린 살인강도였다. 


그 사형수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신앙의 기적이 아니면 수용 불가능한 신비로운 역설임에 틀림없다. 정치적 메시아로 추앙받던 독립투사들의 이름은 모두 잊혀졌지만, 메시아의 칭송을 받지 못한 예수는 메시아의 이름을 소유한 유일한 인격으로 인류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예수는 화려한 성전을 가리켜 ‘강도의 소굴’이라고 꾸짖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발붙이기 어려운 부유한 대형교회에도 신앙의 기적이 있는가? 대통령후보들을 정치적 메시아로 축복하는 어떤 종교인들에게도 신비로운 역설이 있는가? 그 기적, 그 역설이 없다면 그저 또 한 번의 짝퉁 성탄절이 스쳐지나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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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니스트: 변호사로 현재 숙명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중앙법원장 등 법관으로 근무하던 30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문학, 철학 등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는 PEN International, Korea 회원으로서 인권위원장을,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문인권익옹호위원장을,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를, Seoul National Symphony Orchestra에서 명예지휘자를, FEBC(극동방송)에서 신앙 칼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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