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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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감성 사이]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으며

웹마스터

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2025년이 저물어 간다. 돌이켜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한 해였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은 일들이 있었고, 애써 견디며 지나온 시간도 적지 않았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순간도 있었고, 이유 없이 마음이 지치는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힘들 때마다 인간은 본능처럼 희망을 찾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낸다.


다가오는 2026년은 병오년, 흔히 붉은 말의 해라 불린다. ‘병’은 불의 기운을 뜻하고, ‘오’는 말을 상징한다. 불과 말이 만나는 해는 멈춤보다는 움직임을, 체념보다는 도전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붉은 말의 해라는 말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먼저 반응한다. 오래 멈춰 서 있던 발걸음을 다시 떼어도 괜찮다는 신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말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단단하게 이어진 근육의 곡선, 뿜어져 나오는 기운, 그리고 무엇보다 선한 인상을 지닌 얼굴 속에서 느껴지는 비범함 때문이다. 말은 힘이 넘치지만 그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필요할 때 온몸으로 달리고, 달릴 때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 절제된 에너지는 보는 이의 가슴을 자연스럽게 뛰게 만든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형상화한 존재처럼 다가온다.


말은 늘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전설과 신화 속에서도, 전쟁과 개척의 기록 속에서도 말은 인간과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모험담에서 말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결단을 함께 짊어지는 동반자였다. 말이 달리는 방향이 곧 인간의 길이 되었고, 말이 멈추면 인간의 여정도 잠시 멈추었다. 인간의 서사 속에서 말은 언제나 가장 앞에서 길을 열어 주는 존재였다.


서구 미술에서도 말은 강렬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 Franz Marc의 작품 'The Red Horses'<사진>는 이러한 상징을 잘 보여 준다. 이 작품 속 말들은 사실적으로 묘사되기보다, 강렬한 붉은 색채와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공격적이기보다는 따뜻하고 생명력 넘치는 인상을 주며, 화면 전체에 흐르는 에너지는 멈추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에 가깝다. 이 붉은 말들은 파괴가 아니라 재도약과 생의 추진력을 상징한다.


동양의 그림과 민화 속 말 역시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힘차게 달리는 말은 출세나 성공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결단과, 긴 시간을 버텨내는 끈기를 상징한다. 말은 빠르지만 조급하지 않고, 강하지만 균형을 잃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말은 인간이 닮고 싶어하는 모습에 가깝다. 성급함보다 지속을, 과시보다 내면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붉은 말의 해가 기대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인간은 고통을 기억하지만, 그 고통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조금씩 잊고, 다시 희망을 품는다. 망각은 약함이 아니라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다. 붉은 말은 바로 그 준비된 힘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않는 존재, 필요할 때 다시 달릴 줄 아는 존재다.


2026년이 더 빠른 해가 되기를 바라기보다, 다시 달릴 용기를 회복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크게 소리 내지 않아도 좋고, 남보다 앞서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한 해이기를 기대한다.


2026년, 붉은 말의 해다. 저무는 2025년을 보내고, 우리는 또다시 희망을 품는다. 잊고, 견디고, 그리고 다시 달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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