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병원 밖으로 나와 세상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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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병원 밖으로 나와 세상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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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첫 번째 사진) 한국어진흥재단이 지난 2024년 12월 14일 베벌리에 매입한 새 건물로 이전하고 오픈하우스를 했다. 동 재단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에픽 코리언’(EPIC KOREAN, 레벨 1-4, 전 12권)의 수익금으로 사옥을 마련한 쾌거다. 모니카 류(앞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 이사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 이훈구 기자 (사진 두번째) 한국어진흥재단 현판에서 기념촬영을 한 모니카 류 이사장 / 이훈구기자 (사진 세번째) Joseph Le Conte 중학교 MOU 체결식에서  모니카 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LA한국교육원) / (네 번째 사진) 모니카 류 이사장의 신간 디카시집 '병원 밖 세상'


모니카 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강인한 부모의 유전자로 대범하게 극복하는 법 배워

미국으로 유학 후 종양방사선학과 전문의로 맹활약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한글 발전 유공에 대통령표창

병원 밖 세상 사진으로 담아 디카시집 출판도


▲모니카 류 이사장 프로필

경기여고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미국 뉴욕주립 의과대학 시라큐스 업스테이트 병원 종양방사선 전문의 전공수료

로스앤젤레스 카이저 종합병원 종양방사선 전문의

우간다 에이즈 고아단체 이사

말보로 여학교 이사

밸리 한인 천주교회 최초 여성 사목회장

한국어 진흥재단 이사장


#. 우울의 그림자를 넘어

한국어진흥재단 모니카 류(78·한국명 전월화·사진) 이사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해맑은 미소다. 생전 근심 걱정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것 같은 표정과는 달리 그의 어린 시절은 집안 가득한 우울함 때문에 항상 공기가 무거웠다. 평안도 출신의 부모가 물려준 강인한 유전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흔히 맹호출림(猛虎出林)으로 불리는 평안도 기질은 사나운 호랑이가 수풀에서 나온다는 뜻으로평소 얌전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용맹함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겉으로는 점잖지만, 내면에는 강한 승부욕과 끈기가 있어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행동하는 특징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조선반도에서 가장 먼저 개화가 되고 개신교가 뿌리를 내린 곳이자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울 만큼 부흥을 하여 일찍부터 여권신장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평안도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모니카 류 이사장의 가문이다. 6.25사변이 일어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学)출신의 인텔리였던 큰 오빠의 전사 소식은 가족 전체를 비탄에 빠지게 하고 항상 ‘우울의 그림자’가 있었지만 특유의 평안도 기질로 대범하게 극복해 나갔다고 한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일희일비(一喜一悲)않는 가풍은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평안도가 여성들에게 개방적이었기 때문에 딱히 자매들에게 특별한 것을 강요하거나 하지 않고 교육의 기회도 공평하게 주어졌다. 부모님은 전사한 아들과 관련한 손님과 식객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것으로 우울의 그림자를 넘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과의 인연

집안 전체가 공부를 잘했다. 당시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는데 경복고와 경기여고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고 국비유학생으로 유학을 가는 코스를 모두 밟았다. 여자답고 조신하고 예쁘고 숙녀답다는 평가를 받던 자신의 언니가 가정학과를 진학하는 건 당연해 보였지만 웬지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선택한 것이 바로 의과대학이었다. 당시만 해도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가장 활동을 많이 하고 유학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사실 당시의 한국 대학생들은 ‘미국에 유학 가는 게 유행’이라는 소리가 돌 정도로 미국유학을 동경했다. 그러나 모니카 류 이사장에게는 유학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왕 공부하는 거 열심히 하자”는 책임감이 더 중요했다. 때문에 문교부장관상을 받을 만큼 의학에 정진했다. 물론 해부학 같은 수업들은 공포스러웠지만 인체의 신비를 알면 알수록 잘 선택한 진로였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유학 준비 겸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하던 중에 같은 길을 걷는 배우자도 만났다. 마침 유학 시험을 봤는데 고득점이 나와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했지만 발목을 잡았다. 때마침 ‘유신헌법’이 선포되면서 유학 조건이 까다로워지고 남편의 병역 문제 등 여러 걸림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체가 그의 진로를 바꿔 놓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일찌감치 ‘산부인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남편과 달리 그는 분명한 전공을 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세부 전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 방사선종양학의 산 증인

미국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했다. 뉴욕주립대학교 유학 시절 진로를 놓고 고민을 잠시 하기는 했지만 ‘정신과’와 ‘종양방사선학과’ 두개의 오퍼를 받으며 평안도 기질이 빛을 발했다. 의학의 세부전공을 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문과 (文科)와 이과(理科)중 어느 것이 더 적성에 맞을까를 생각할 만큼 심사숙고를 했는데 이때 바로 평안도 기질이 발휘된 것이다. 이과는 시작과 끝이 확실하다는 점이 그의 기질과 성격에 잘 맞았던 것. 때마침 주립대학에 ‘방사선종양학학과’에 자리가 비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지원해 버렸다. DNA 검사도 잘하지 않던 시절 택한 이 전공이 의학의 미래를 책임질 줄을 그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많은 한국인, 인도인들이 거쳐갔지만 적응이 힘들었던 대학병원의 구조에서 그는 특유의 배짱과 적극적인 화법으로 버텨냈다. 최초로 뽑은 외국태생의 여성 의사였기에 ‘마이너리티’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만의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말투에 액센트가 강하다는 지적을 받을 때도 ‘지식의 척도가 아니’라는 논리로 정면돌파했다. 방사선종양학(Radiation Oncology)은 방사선을 이용해 암(종양)을 치료하는 의학 전문 분야로 수술, 항암치료와 함께 3대 암 치료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다분야 종합치료’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수련의, 수레지던트, 펠로우 수레지던트를 거쳐 카이저(KAISER) 병원의 종양 방사선과 전문의로 활약해 왔다. 

특히 여성암 그 중에서도 ‘유방암’치료의 전기를 마련하여 의학기술의 획기적 발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작정 수술로 절개하기 보다 7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솔루션에 참여하여 방사선으로 치료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암을 완전히 제거 ▲수술 후 재발 방지 ▲수술이 어려운 경우 대체 치료 ▲말기 암에서 통증 완화(완화 치료) 등의 치료방법이 있다. 이 과정에서 방사선 촬영 스페셜 리스트, 조직검사 스페셜 리스트, 임상병리 스페셜리스트, DNA 스페셜리스트 등이 참여하고 외과의사들이 약물치료, 호르몬치료, 수술, 방사선치료를 진행하며 소셜워커가 참관하는 형태의 치료를 하게 된다. 손재주가 유난히 좋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분야로 평가하는 모니카 류 이사장이기에 50년 동안 의학의 발전단계를 지켜보면서 현대 의학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고마운 전공이며 악착같이 버텨낸 성과이기도 했다.


#. 한국어진흥재단과의 인연

모니카 류 이사장이 한글을 미주 지역은 물론 전 세계에 보급하는 한국어진흥재단(FOUNDATION FOR KOREAN LANGUAGE & CULTURE IN USA)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반려묘’ (伴侶猫)가 이어준 인연이라고 말한다. 한국어진흥재단을 오랫동안 섬겨 오던 문애리 교수 등이 휴머니티 운동으로 ‘길고양이 돌봄사역’을 하고 있었던 것을 그냥 바라만 봤단다. 그런데 인연이 되려는지 근방 홈디포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을 목격한 후 고양이를 케어하거나 반려묘를 웰스케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고.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레 한국어진흥재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지난 2017년부터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으로서 미국 초중고등학교에 한국어반을 개설했다. 한국어 보급과 교육 확산을 통한 뿌리 교육과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특히 한국어 교재와 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수 차례 완수하였다. 이 재단은 전 세계에 한글 보급 운동을 펼치기 위해 지난 1994년 미국에서 설립된 순수 비영리 민간 단체다. 한글 보급 운동과 함께 한국어 교사 워크샵, 예비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연수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AP 시험 과목에 한국어 채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한국어진흥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한글 발전 유공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비로서 한인의 정체성도 살리면서 뜻 깊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겨났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 2023년에는 대한민국 국민교육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24년에는 경기여고 동창회의 '제31회 자랑스러운 경기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동 재단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에픽 코리언’(EPIC KOREAN, 레벨 1-4, 전 12권)은 LAUSD외에도 오하이오, 뉴욕, 버지니아, 캐나다, 아일랜드에서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오랜 더부살이를 마치고 외부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에픽 코리언’의 판매 수익금으로 사옥을 마련하는 쾌거를 이뤘다.


#. 병원 밖 세상을 디카에 담다

모니카 류 이사장은 수필가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여러 매체에 수필과 동화 그리고 칼럼을 연재해 오면서 뛰어난 필력으로 한글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산문집 ‘희망, 한 단에 얼마에요?’를 통해 병원에서 투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바 있다. 수필을 통해 병원 안 세상을 이야기했다면 그가 시인으로 변신해 내놓은 ‘병원 밖 세상’은 제목 그대로 병원 밖 세상 속 이야기들을 담아 냈다. 시인으로 변신하여 내놓은 첫 디카 시집은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책이다. ‘디카 시집’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시집의 결합 형태인 디카 시집은 지난 6년간 18차례 해외를 오가며 촬영한 수십만 장의 사진 중 선별한 것이다. 일상의 풍경을 넘어서서, 해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현장의 사진과 시적 감상을 담은 까닭에 세계 각지의 문화 그리고 그 사진들이 수록되었다. 디카시의 특징은 우선 주제가 무겁지 않아야 하고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 내야 하며 5행 미만의 마음에 남는 시를 담아 내야 한다.

신앙의 신비, 국가라는 보호막, 들려줄 이야기, DNA 등 총 4부 주제로 구성된 이번 디카 시집은 학생, 교사, 학부모 등이 이 장르를 통해 한국어를 쉽고 재미있게 배우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시작하였다. 디카시를 하게 되면 한국어와 더 친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모니카 류 이사장은 ‘신앙의 신비’를 통해 한국, 에티오피아, 스페인,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를 기행하면서 단순한 견문록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함께 종교성을 조명했다. ‘국가라는 보호막’을 통해서는 전쟁과 테러를 겪지만 이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국가이 역할과 국가관을 다룬다. 들려줄 이야기와 DNA에서는 삶의 성찰과 함께 이민자로서의 삶의 애완과 정체성을 시로 담아 내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미국과 한국의 문화와 언어가 하나의 용광로에 담겨 진 듯한 자신의 삶과 정체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병원 밖 세상을 담아낸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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