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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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다<3·끝>

웹마스터

고락셉에서 3시간 걸려 힘겹게 도착한 EBC. 계곡은 온통 빙하로 가득하다. //마침내 도착한 EBC. 뒤로 설산고봉이 인상적이다.//  "왔다간 흔적은 남겨둬야지." EBC임을 알리는 대형바위를 배경으로 인증샷!// EBC 함께 오른 일행들과도 기념촬영을 했다.//로부체에서 출발해 고락셉으로 가는 트레일. 고도가 5000미터가 넘는 수직과 다름없는 돌산이지만 등산객이 넘쳐난다.//EBC 가기 앞서 잠시 휴식을 취한 고락셉 마을. // 눈보라를 뚫고 일행과 등산객들이 EBC에서 로부체로 하산하고 있다.// 로부체 하산길에 왼쪽 발목을 다치고 말았다. 덕에 '말택시' 타고 서둘러 히말라야를 벗어났으니 '인생사 새옹지마'.//EBC에서 만난 원정대 텐트.(위에서부터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고통 끝에 오는 것을~"  



로부체 출발, 고락셉 거쳐 EBC로

끝없는 오르막길 숨쉬기도 어려워

빙퇴석 쿰부빙하 걸으며 목적지로

고생끝에 도착한 EBC, 일행 '울컥'

5400m, 평생 이런 높이는 처음

눈보라 속 하산길에 왼발목 '삐끗'

크램폰 없는 동료와 나눴다가 '그만'

산행 처음으로 '말택시' 타고 하산

서둘러 철수 큰 다행, '새옹지마'


글·사진=하기환 재미스키·스노보드협회 고문


드디어 도착한 EBC

고소이고 또 춥기도 해서 비몽사몽간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오늘 역시 일정이 빡빡한 터라 서둘러 산행에 나섰다. 우선 해발 5,180m에 자리한 고락셉(Gorak Shep)으로 향했다. 거기가 EBC 가는 길목 마지막 롯지가 있는 곳. 고락셉 뒷산 칼라파타르(Kala Patthar) 봉이 에베레스트 정상이 보이는 뷰포인트였다. 이곳에 오는 중에는 다른 산에 가려 에베레스트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시작은 완만했지만, 가파른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고도가 5,000m가 되니 한 발짝 떼는 것도 숨차고 어렵다. 모든 힘을 다해서 올라가고 내려서기를 반복했다. 어느 사이 완만한 내리막길이 나타나더니 마지막 롯지가 모인 고락셉에 도착했다.


애초 예약한 롯지는 너무 시설이 안 좋다. 다른 곳의 롯지를 찾아 옮기고 일단 짐을 풀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팀의 마지막 목적지인 EBC로 향했다. 이제 우리는 쿰부빙하 고락셉 모레인(moraine) 빙퇴석 지대를 걷고 있다. 모레인은 빙하에 의해 운반되고 쌓인 퇴적물. 이 지역은 거친 암석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모레인 지대를 걸어 EBC로 산행을 시작했다.


왼쪽으로는 하얀 눈을 쓰고 있는 푸모리봉이 우뚝하다. 눈앞으로는 에베레스트에서 어깨걸고 내려오는 봉우리들이 더는 못 간다는 듯 막고 있다. 오후라 그런지 좋던 날씨가 구름이 끼고 나빠지기 시작했다. EBC까지는 생각보다 꽤 멀었다.


가끔 모레인 사이로 빙하가 만든 파란 호수가 보였다. 가도 가도 베이스캠프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원정대가 대부분 철수해서 텐트가 몇 개 없을 거라고 했다. 봄에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제일 많고 가을엔 그보다 적은데 10월 후반에는 모두 철수한다는 것이다. 여름을 지나며 눈이 많이 녹은 상태라 눈사태 위험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발에 차인 돌이 빠지면 얼음이 보이기도 했다. 바로 에베레스트로부터 내려가는 쿰부빙하였다. 빙퇴석이 덥인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빙하 얼음 위를 걷는 중.


끝 모를 길을 걷다 보니 멀리 EBC가 보이기 시작했다. EBC가 5,364m인데 눈 아래로 보인다는 건, 우리가 더 높은 곳을 걷고 있다는 말이다. 모레인을 걸어 내려가야 EBC를 만난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는 5,400m 이상을 걷는 셈이다. 내 평생, 이 높이를 오른 적이 없다. 그런데 고맙게도 숨 쉬는데 이상 없고 고소증에 머리도 아프지 않다. 스키협회 회원들과 미국 높은 산에서 스키를 많이 탄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스키장도 원래 고산에 있다. 일례로 콜로라도 브레켄릿지(Brenkenridge) 스키장은 3,900m 위까지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드디어 우리팀 목적지 EBC에 도착했다. 이곳 큰 바위에 EBC라는 표시가 써있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무엇인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몇 개의 원정대 텐트가 보였다. 빙퇴석 돌무덤에 텐트를 치고 있는 원정대. 등반이 끝나지 않았는지 사람들도 보이고 등짐을 나르는 말도 있었다. 그 앞으로 쿰부빙하와 눈부신 설원이 펼져져 있다. 빙하가 폭포를 이루어 아이스폴이라는 별칭을 얻는 얼음 빌딩 군락들도 보인다. 아쉽게도 에베레스트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서 실컷 보았으니 억울할 건 없다.


우리 팀중 몇 명은 고산증세가 심했던 모양이다. 힘든 모양인지 늦게 올라왔다. 그러나 우리 팀이 목적한 EBC에 모든 인원이 도착했으니 2년간 별렀던 원정은 성공한 것이다.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럴 땐 빠른 하산, 탈출이 필요하다. 서둘러 고락셉으로 하산했다. 다음날 아침 눈보라가 치는 가운데 샘김이 말을 타고 하산했다. 말은 히말라야에서 ‘택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부상이나 고산증이 심한 사람을 태우고 내려가기도 하는 것이다. 팀원 중 하경철이 말을 제일 많이 이용한 사람이었다. LA에서 출국 전 운동을 하다 무릅을 다쳤는데 오랫동안 별로 온 원정이니 포기를 할 수 없었다. 말이 없어 그런 사실을 나중에 알 수 있었다.


말 택시와 헬리콥터

새벽부터 8시간 이상 걸은 날이다. 땀을 흘려 그런지 온몸이 끈적거려 뜨거운 물 한 통을 사서 엉터리 샤워를 했다. 고산에선 절대로 목욕하면 안 된다고 했으나 그냥은 못 잘 것 같았다.


로부체에서 만났던 노르웨이 등산객이 인사를 건넨다. 그는 지금 허리케인 같은 빅스톰이 오는 중이라 알린다. 자신도 EBC찍고 바로 페리체로 내려갈 거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헬기를 타고 하산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가이드는 히말라야에서 일기예보는 못 믿는다며 고락셉에서 자야 한다고 고집했다.


10월 28일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 보니 어젯밤 내린 눈이 30cm 이상 쌓여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그래도 계획대로 로부체로 하산하는 수밖에 없다. 사위 샘김은 고산증이 심해져 250달러를 내고 말을 타고 페리체까지 하산을 시작했다. 고산증의 일종인 폐에 물이 차는 폐수종이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도 출발했지만 눈길을 걷기가 쉽지 않다. 눈에 가려진 길 찾기도 고역이었다. 빙퇴석도 울퉁불퉁이라 미끄러지고 걷기가 몹시 힘들다. 나는 배낭 속 크램폰을 꺼내서 착용했다. 쇠발톱을 차니 미끄러움이 훨씬 덜 하다.


팀원 중 크렘폰 준비를 못 한 사람이 있었다. 한쪽을 나누어 주었다. 날씨는 계속 나빠지고 눈은 계속 오고 있다. 경사진 길이고 눈보라 속이지만 속도를 조금 내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왼쪽 발목이 접질리면서 우두둑하고 큰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나는 길옆 계곡으로 쓰러졌다. 뒤에 오던 동료가 놀라 나를 끌어내 세웠다. 도저히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겠다. 크렘폰을 한 짝씩 사용하면 더 위험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게 몰려왔다. 가이드가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로부체 마을로 내려가서 말을 불러왔다. 로부체에서 더 내려간 페리체 마을까지 200달러에 가기로 계약을 끝냈다.


그동안 보기만 했던 말 택시를 나도 처음으로 탄 것이다. 발목이 많이 부어 올랐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부상이다. 말을 타니 무지 빠르고 힘이 덜 들어 좋긴 했다. 눈이 계속 오는 가운데 간신히 페리체 마을 숙소에 도착했다. 즉시 카트만두 헬기회사에 연락했지만 날씨 관계로 운행불가. 발목 통증은 좀 줄었으나 밥맛은 없어 그날 저녁은 굶었다. 눈이 내리면 헬기는 뜨지 못하는데 악천후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걱정이 창밖 눈처럼 쌓여 가는 밤이었다.


아침이 밝았고 다행히 눈은 그쳤다. 통신혁명은 쿰부 히말라야에도 들어와 휴대폰으로 통화가 가능하다. 페리체는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기에 5명의 팀원 모두 한 대에 탈 수 있었다. 헬기가 언제 올지 모르니 새벽부터 서둘렀다. 짐을 다 싸서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끝내 놓았다. 헬기가 7시경 도착했다. 걸을 수가 없는 나를 가이드가 업어 날랐다. 우리는 헬기를 타고 우선 루클라공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2시간 정도를 카트만두행 헬기를 기다렸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헬기를 타고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다. 공항에서는 바로 카트만두 국제병원으로 달렸다.


국제병원은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종합병원이라고 했다. 이머전시 룸으로 가서 우선 X-Ray를 찍었다. 결과는 복사뼈 가운데가 Crush가 되어 있었다. 복사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러진 게 보인다. 오른쪽 발목도 이상해서 CT Scan을 했다. 스캔 결과는 이상이 있으나, 이번 사고가 아니고 오래된 상처라고 한다. 오래 전 수술자국이 나타난

것이다. 발목이 많이 부어 있으니 우선 반쪽 기브스를 했다. 붓기가 내리면 전체 기브스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히말라야가 알려준 세옹지마

병원의 정형외과 담당이 너무 친절하다. 설명도 잘 해주고 목발 사용법도 알려준다. 청구서를 보니 400달러다. 병원비가 너무 싸서 놀랐다. 사위 샘도 고산증으로 기침이 심했다. 샘도 폐 X-Ray를 찍고 약도 처방 받았는데 30달러라고 했다. 미국 같으면 적어도 1만달러 이상 청구서가 나왔을 것이다. 원래 메디케어 보험은 외국에서 일어나도 ER에 가서 나온 치료비는 돌려 주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치료비가 너무 싸서 본인 부담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왔다. 앞으로 목발을 6주 동안 하고 다닐 생각을 하니 답답하긴 하다. 2016년에 스키사고로 발목을 다쳐 수술하고 6주 고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오른쪽 발목 지금은 왼쪽이니 이제 더 부러질 발목이 없다. 호텔에서 오랜만에 더운물로 간신히 샤워를 했다. 저녁엔 휠체어를 타고 한국 식당을 찾았다. 원래 계획은 EBC를 끝낸 후 은둔의 왕국이라는 부탄 여행을 하기로 했었다. 나와 샘은 서울로 가지만 나머지 3명이라도 부탄에 갔으면 했는데 모두 포기한다.


EBC 원정에 지쳤는지 모두 안 간다고 해서 일정을 당겨 서울로 가기로 했다. 대한항공 직항 비행편이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없어 카트만두에서 3일을 더 묵었다. 카트만두는 모든 것이 저렴하다. 물론 달러가 강세인 점도 있으나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라 그럴 것이다.


그래서 쇼핑하기도 좋고 먹고 자기도 부담 없다. 일행은 탬플 관광도 하며 카트만두 명소를 찾았고, 나는 호텔에 있다가 저녁 식당에서 그들을 만났다. 호텔방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EBC 원정 원고에 집중할 수 있었다. 뉴스를 보고 안 것인데 이번 EBC 트레일에 닥친 악천후 대단했다. 인도양서 불어온 허리케인 같은 Cyclone Storm이 덥친 것이다.


우리가 페리체에서 헬기로 빠져 나온 다음, 모든 것이 막혔다. 공항도 폐쇄되고 우리가 내리고 탔던 루클라공항에서도 사고가 났다. 헬기 한 대가 추락하여 사람도 죽었다. 페리체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갇혀 있었을지 모른다. 부러진 다리 치료도 하지 못한 채. 야생의 히말라야에서 위험은 늘 곁에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속담은 옳은 말이다. 불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그만한 게 다행인 것이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새옹지마.


글을 쓰면서 곰곰히 기억을 되살려 보니, 정말 EBC 트레일은 힘들고 어려운 산행이 맞다. 평생 스키를 타며 알프스나 록키 산맥 고산들을 많이 겪어 봤다. 그러나 과연 ‘신들의 산 히말라야’는 달랐다. 크기와 높이와 야성이 살아 있는 제3의 극지. 우리가 이번 극한 체험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고통 끝에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시간과 건강이 허락한다면 나는 다시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글 쓰는 것을 도와준 스키협회 테미 김 회원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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