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가다<1> "지금 우리는 히말라야 깊숙한 곳으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 아찔한 출렁다리를 건너고 끝없는 오르막길을 걷는 멀고도 험한 길.
활주로가 500미터로 짧은데다 경사도 져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으로 꼽히는 루클라공항 모습.
‘가자! 에베레스트로.’ 일행이 루클라 마을에서 산행 첫날 목적지인 팍딩으로 떠나기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말 탄이는 하경철 회원으로 LA에서부터 발이 좀 아팠던 탓에 이번 산행 내내 기마병 행세(?)를 했다.
웅장한 히말라야 산맥의 고봉들. 왼쪽부터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엄마의 목걸이).
트레킹 동안 길에 자주 마주치게 되는 마니석. 티베트 라마 경전의 진언을 새긴 돌을 쌓아 탑을 만들었다.
에베레스트의 네팔어인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의 체크포인트.
남체 바자르로 가는 길목에서 하기환 스키협회 고문이 설산을 배경으로 ‘찰칵’.
쿰부 지역 행정 중심지로 셰르파들의 고향인 ‘남체 바자르’. (사진 위에서 부터)
글·사진=하기환 재미스키·스노보드협회 고문
네팔 불안했지만 '미룰 수 없던' 여행
스키협회 활동하는 지인 등 5명 강행
'위험천만' 루클라공항 무사착륙 안도
산행 첫날은 팍딩까지 가벼운 발걸음
'사가르마타' 공원 관문 지나 히말라야로
아찔한 출렁다리 건너 끝없는 오르막길
셰르파들의 고향 '남체 바자르' 당도
지난달 20일. 우리는 다시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팀원은 나를 포함해 스키협회 활동을 함께 하는 론김, 제인김, 하경철, 그리고 사위인 샘김까지 5명. 카트만두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한 달 전에 일어난 엄청난 폭동 탓에 뉴스로 본 카트만두의 모습은 불바다 그 자체였다. 시위대는 정부와 의회가 모여 있는 정부청사에 불을 질렀고 수십 명의 사망자를 냈다. 주위에서는 이런 상황을 걱정했으나 계획을 미룰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이하 EBC)까지 트레킹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니까.
2024년 10월에 도착한 카트만두는 대홍수에 휩쓸렸다. 악화한 기상이 히말라야에서는 눈폭풍이 되었고 모든 교통편도 막혔다. 때문에 포기하고 대신 인도관광으로 바꾸었었다. 올해 네팔의 엄청난 폭동은 뉴스로 알고 있었으나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네팔 사람들이 트레커들에게는 매우 우호적이라는 말을 믿기로 했다.
‘세계 1위’를 놓치지 않는 루클라공항
다시 도착한 네팔에는 시위는 멈추었으나 히말라야 뉴스는 좋지 않았다. 얼마 전 눈사태가 나서 한국인도 죽고 날씨가 계속 나쁘다는 소식. 카트만두는 날씨가 좋아 도착 다음 날인 21일 루클라(Lukla)공항으로 이동했다. 루클라공항은 지금도 몇십 년째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 1위를 놓치지 않는 곳. 대략 500m 정도의 짧고 경사를 가진 활주로. 자동유도 같은 장치마저 없어 조종사 감으로 착륙하는 해발 2,850m의 공항. 루클라공항 정식 명칭은 에베레스트 초등자 ‘힐러리 텐징’ 공항이다. 일주일 걷지 않으려고 탄 비행기 무사착륙에 모두 파일럿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국 시골의 버스 대합실 같은 비좁은 공항터미널은 막 도착했거나 트레킹을 끝낸 외국인들 그리고 등짐 질 일거리를 찾아 나왔을 포터들로 미어터질 듯 했다.
그런데 우리 짐 2개가 오지 않았다. 2시간이나 기다려도 짐이 오지 않기에 대행사에게 맡기고 출발하기로 했다. 북새통 공항을 빠져나와 걷는 루클라 마을이 오히려 산뜻하다. 돌을 깐 길은 깨끗했고 길옆으로는 음식점과 장비점이 즐비했다. 오토바이와 릭샤로 혼란스러운 카트만두 타멜 거리에 비하면 오히려 여기가 더 깨끗해 보였다. 마을을 벗어나는 길에 파상 라무(Pasang Lhamu)의 아치가 보인다. 여성 셰르파 파상 라무. 그녀는 1993년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그러나 하산 도중 탈진한 동료와 비박하다 함께 숨졌다. ‘네팔의 별’이란 별명과 함께 카트만두 중심가에도 파상 라무 동상을 세워 놓았다.
마니석(瑪尼石) 옴마니밧메훔
첫날은 루클라에서 3시간 정도 거리인 팍딩(Phakding· 2,652m)까지. 내리막길 트레킹 시작부터 6,000m급 설산이 보일 만큼 날씨가 좋았다. EBC 트레킹을 계획하며 세 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루클라공항, 고산병, 그리고 나이. 우리는 나름 철저히 준비했다. 고산증 약을 챙기고 음주와 샤워를 금지하고 천천히 움직일 것을. 그리하여 만든 구호가 ‘팀원 중 단 한 명도 고산증에 걸리지 않는다’ 였다. 결과론적이지만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그리고 이제 내 나이가 만 77살. 평생 스키를 타며 거친 야외활동에 잘 적응해 왔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번에도 체력이 따라 줄까. 걱정스럽다.
민감한 사람은 백두산보다 높은 루클라 출발부터 고산증을 느낀다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스키클럽 멤버들 답게 미국 고산 스키장에서 고소훈련이 된 덕분일 것이다. 오늘 산행은 짧기에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 길가에는 돌에 옴마니밧메훔 불경을 새긴 마니석이 많이 보인다. 납작한 돌들에 불경을 적어 탑을 만들었다. 알 수 없는 글자의 티베트 불교 마니석이 우리 눈엔 하나의 예술품으로도 보인다. 네팔은 힌두교가 국교였다. 지금도 압도적 다수의 국민은 힌두교도이고 불교도는 소수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지역을 쿰부 히말라야라고 부른다. 티베트에서 넘어온 셰르파족들이 이곳에 정착하며 티베트 불교를 믿는 것이다.
팍딩에 도착해 롯지 방을 배정받았다. 열악한 숙소에 난방이 없는 것은, 2023년 안나푸르나 등산 때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보온 옷과 슬리핑백을 단단히 준비했다. 그러나 팍딩은 고도가 높지 않아서 그런건지 샤워도 할 수 있고 방안에 화장실도 있다. 그게 무엇보다 고맙다. 오래 전 위 수술을 받아 매일 아침 오랜 시간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샤워실에 수건과 비누가 없다. 오지 탐방이니 현실에 맞추어야 한다. 내복을 수건 삼고 비누는 가져온 샴푸로 대신했다. 팍딩에서의 첫날은 그런대로 지낼 만했다. 내일부터는 강행군이 시작될 것이다.
날이 밝았다. 롯지에서 간단히 아침을 막고 7시30분부터 걷기 시작했다. 오늘 목적지는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해발 3,440m 고지의 이 마을은 바자르, 즉 시장이라는 말이다. 티베트와 교역을 하던 곳이며 에베레스트 등반기지이자 셰르파들의 주거지로 유명하다. 팍딩이 2,652미터이니 무려 800m를 오르내리는 10km 이상의 산행길. 날씨가 좋아 탐세루크(Thamserku·6,608m)봉이 훤히 보인다. 정상이 두 개로 이루어진 설산이 압도하듯
우뚝하다. 과연 지금 우리는 히말라야 산맥 깊숙이 들어가는 중이다.
몬조 마을을 지나자 입산 체크포스트가 보인다. 검문검색이나 통행료 징수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수직에 가까운 벼랑 사이에 병목처럼 자리잡아 에베레스트 쪽으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한다. 검문소에 ‘사가르마타’ 국립공원관리소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에베레스트는 영어식 이름이고 네팔 말로는 사가르마타. 여기부터 사가르마타 공원 관할이란다. 사가르마타 관문을 지나 벼랑길을 내려가 두드코시(Dudh Koshi) 강가에 닿았다. 돌아보니 검문소는 과연 절대로 몰래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자리했다.
아찔한 쇠밧줄 '힐러리 구름다리'
우윳빛 강이라는 두드코시를 따라 오르는 길. 강물 소리가 요란하다. 강을 건너는 아슬아슬하게 긴 쇠밧줄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현수교 쇠줄 난간에는 바람에 삭은 룽따가 흩날리고 있다. 몇 번 이 출렁다리를 건너왔으나 건널 때마다 언제나 오금이 저린다. 그러나 이것은 예고편. 우리 앞에 정말 무서운 구름다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조르살레(Jorsalle·2,810m) 마을에 도착해 볶음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조르살레가 2,810m이므로 200m 가까이 올라 왔다. 4시간 걸어 겨우 고도 200m를 올랐는데 목적지 남체까지 아직도 극복해야 할 고도가 630m.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점점 협곡 깊이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과연 깎아지른 양쪽 절벽 끝에 걸린 길고 긴 출렁다리가 보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출렁다리 두 개가 위아래 2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트레커들이 아찔한 흔들다리를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고 있다. 다리 이름이 ‘힐러리 구름다리(Hillary suspension bridge)’. 사가르마타 초등자 에드먼드 힐러리의 이름을 붙였다. 힐러리는 쿰부 히말라야에 학교와 보건소를 짓는 등 많은 헌신을 했다.
이곳은 원래부터 이층다리가 아니었다. 2012년 아래쪽에 있는 것이 너무 낡아 외국의 도움으로 윗쪽에 새로 만들었다. 쿰부 계곡의 출렁다리 중에서 가장 높다는 이층다리는 이제 이곳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사람들이 건너는 다리를 윗쪽. 아랫쪽은 번지점프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셰르파들의 고향 남체 바자르로 가려면 꼭 이 다리를 통과해야 한다. 구름다리를 건너며 보이는 두 개의 협곡은 당연히 히말라야에서 발원한다. 왼쪽은 티베트의 초오유(8,201m)에서 시작하고 오른쪽은 에베레스트(8,848m)에서 발원한다. 엄청난 두 계곡의 물머리가 내 눈앞에서 합류하는 중이다. 이곳 주민인 세르파 말로는 라르자 도반(Larja Dobhan)으로 부른다. ‘도반’은 한국말로 치면 두물머리. 즉 양수리를 뜻한다. 두물머리가 하나의 물 흐름이 되면 우리가 거슬러 온 두드코시 강이 된다.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요란한 두드코시 강물소리와 함께 다리에 무수히 걸린 룽따가 펄럭인다. 쇠줄에 걸린 오색 룽따는 ‘바람(Lung)의 말(Ta)’이란 뜻을 가진 깃발. 파랑은 하늘, 힌색은 바람, 빨강은 불, 초록은 물, 노랑은 땅을 뜻한다. 만물의 근원이라는 5원소를 티베트 라마불교는 청, 백, 적, 녹, 황 오색으로 표현한 것.
한 발 두 발 움직일 때마다 다리의 출렁임에 몸이 흔들린다. 마음고생하며 다리를 건너자 진짜 고행이 시작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깔딱고개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끝은 있다. 대나무 숲 모퉁이를 돌아서니 체크포스트가 있다. 그리고 산비탈에 지어진, 하지만 거대한 남체 마을이 홀연히 나타났다. 남체 바자르라는 말대로 골목마다 장비점이 보인다. 토요일마다 큰 시장이 열리는 쿰부 지역 행정 중심지. 전문 등산장비 모두를 이곳에서 살 수 있을 만큼 장비점도 많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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