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치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임영빈
K-day PACE 원장
“나이 들면 다 치매 걸리지.” 이 말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오해다. 그러나 과학은 이미 이 통념을 뒤집었다. 2020년 Lancet 저널의 치매예방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치매의 40%는 예방 가능한 요인으로 설명된다. 즉, 치매는 노화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생활습관의 축적된 결과다. 치매의 가장 강력한 예방수단은 두뇌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교육 수준은 물론, 중·노년기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행위—악기, 외국어, 글쓰기—는 뇌세포의 연결을 강화시킨다. 인간의 뇌는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연결을 만들 수 있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지닌다. 배움은 뇌의 운동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청력 관리다. 중년기의 난청은 치매 위험을 두 배 이상 높인다. 보청기를 착용한 노년층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느리다는 연구는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됐다. 청력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기관’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연결 통로이기 때문이다.
운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유산소 운동은 뇌혈류를 늘리고, 해마(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위축을 막는다. 근력운동은 근육을 통해 인슐린 감수성을 높여 대사성 치매를 예방한다. 실제로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30~40% 낮다. 나는 진료실에서 매일 본다. 걸음을 멈춘 순간부터 기억도 흔들린다.
영양과 수면, 정서 건강도 똑같이 중요하다. 지중해식 식단과 MIND 식단은 뇌혈관 건강을 보호하고 염증을 줄인다. 반면, 만성 수면부족은 베타아밀로이드(알츠하이머의 원인 단백질)가 뇌에 쌓이게 만든다. 또 우울증은 치매의 위험 요인이자 때로는 초기 증상이다. 기분의 회복이 곧 기억의 회복이다.
우리가 흔히 무심히 지나치는 위험 요인들—흡연, 음주, 고혈압, 당뇨, 비만, 대기오염, 뇌 손상—역시 뇌 건강을 갉아먹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생활습관의 선택으로 조절 가능한 영역이다. 매일의 식사, 매일의 수면, 매일의 대화가 뇌를 지키는 백신이 된다.
의학의 목적은 병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다. 병이 오기 전에 막는 것이다. 치매예방은 더 이상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그 시작은 “오늘의 30분 걷기”, “오늘의 새로운 배움”, 그리고 “오늘의 전화 한 통”일 수 있다.
치매는 운명이 아니다. 우리가 만드는 생활의 결과다. 오늘의 습관이 내일의 기억을 지킨다. 문의 (213) 757-20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