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미국 민주주의의 발상지와도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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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미국 민주주의의 발상지와도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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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소타주 와바샤에 있는 국립독수리센터에서 남편과 기념삼아 찰칵’. 미시시피강에서 다른 배와, 작은 건물들을 나르고 있는 부선의 모습.  미주리주 하니발에 있는 마크 트웨인흉상이 있는 뮤지엄.  마크 트웨인 박물관에 걸려 있는 노만 로크웰의 삽화.

아메리칸 인디언의 슬픈 역사를 담은 블랙호크조약 도시 콰드시티의 박물관에 걸려 있는 인디언 부족장 와파하사(왼쪽) US인디언 담당 에이전트 로렌스 탈리아페로흑인 노예들의 자유 항쟁을 대표하는 헤리엇 스콧과 드레드 스콧 부부. (위에서부터)


모니카 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미시시피강 유람선 투어 <1>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강

인디언·백인·흑인 얽힌 삶 품어

한때 전국 농산물의 92% 생산

지금도 각종 물류의 허브 역할

마크 트웨인 소설 무대 '하니발'

인디언 슬픈 역사 '블랙호크조약'



올 여름에는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내 제2의 조국인 미국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이 나라에서 제일 긴 미시시피강(Mississippi 江)을 따라 유람선 여행을 했다. 내가 본 이 강은 미국을 구성하는 중요한 세 그룹 즉, 아메리칸 인디언과 유럽 출신 백인 정착민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이동되어 노예로 미국생활을 시작했던 흑인들의 얽힌 역사를 품고 있었다. 


그동안 다녀본 조물주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얼음의 세상 남극이나 역사와 문화, 음악 이야기를 가슴에 안겨주던 유럽과는 많이 달랐다. 남극은 내가 작고, 힘 없고, 볼품 없는 피조물인 것을 깨닫게 하였다면 유럽은 권력다툼 가운데 얼룩진 사랑의 흔적을 가진 낡고 슬픈 얼굴을 한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에 비하면, 이 여행지는 백인 우월주의와 싸웠던

아메리칸 인디언과 미국 흑인들의 항쟁으로 일구어 놓은 미국의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상지 같기도 했다.


미시시피강은 아프리카의 나일강, 남미의 아마존강, 중국의 양쯔강에 이어서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다. 미국 50개 주(州) 가운데 31개의 주의 산기슭에서 작은 샘물들이 흘러 내려가면서 모이고, 마지막에 두 개의 큰 강을 이루게 된다. 북아메리카의 등뼈를 로키산맥으로 칠 때, 이 산맥의 서북쪽에서 시작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미주리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미시시피강에 합류하면서 미국의 대동맥인 미시시피강을 만든다. 


미시시피강은 2350마일에 달하고, 제일 넓은 부분의 폭은 11마일이다. 200여년 동안 주변 농토를 비옥하게 해서, 미국 농업물의 92%를 생산한 적도 있었다. 10개의 주(州)와 경계를 만들면서 흐르다가 남쪽 멕시코만(灣)을 통해서 대서양에 합류한다.


내가 탄 배는 10개 주 중에서 일리노이, 미주리, 아이오와, 위스콘신, 미네소타주를 지났다. 이 다섯 주는 강의 상류 절반 부분과 접해 있다. 우리가 탄 배는 남쪽 항구인 세인트루이스에서 출발하여 북상(北上)해서 쌍둥이 도시(都巿)라고 불리는 미니애폴리스, 세인트폴에서 끝을 맺었다.


이 강은 운송의 프리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각종 물품과 자동차, 트럭 등이 이 강을 통해서 곳곳으로 보내진다. 운송은 집배 또는 부선(艀船)이라 부르는 바지(barge)가 하는데, 부선은 바닥이 평평한 예인선(曳引船)으로 다른 배를 끌거나 밀 때 쓰인다.


첫날에 배는 마크 트웨인(본명: 사무엘 렝혼 클레멘스)의 ‘소년 시절의 집’과 ‘허크 핀 자유센터’가 있는 미주리주(州)의 하니발(Hannibal)에 머물렀다. 승객들은 항구에서 도착한 후, 배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던 버스로 이동하였다. ‘허크 핀 자유센터’는 소설의 주인공 중의 하나인 흑인 노예 짐(Jim)과 짐처럼 힘든 삶을 살았던 미국 흑인들의 문화와 그들의 역사적 유산을 기리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마크 트웨인의 두 소설 ‘톰 소이어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히 숨 쉬고 있는 듯한 조금은 소박하고, 또 한가한 작은 도시였다. 박물관에는 노만 로크웰이 그린 삽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마크 트웨인(1835-1910)과 노만 로크웰(1894-1978)은 동시대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은 두 책으로 연결된다. 두 책은 우리가 아는 대로 여러 가지 형태로 또, 여러 번 재판(再版)되었는데 1876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1935년 헤리티지프레스 출판사가 특정판을 계획하면서 노만 로크웰에게 삽화를 의뢰하게 된 것에서 역사 속에서 만나게 된다. 그는 삽화를 그리기 전에 마크 트웨인의 ‘소년 시절 집’을 직접 방문하였다. 1941년에 완성된 삽화를 전시용으로 박물관에 빌려주었다가 31년 후인 1972년에 공식 기증하였다. 내가 본 그림은 원본인 셈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항쟁, 노예제도 찬반과 이념 차이로 극화되었던 남북전쟁 등이 인종차별과 정치관념의 격차를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극복하였던 역사를 미시시피강이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그러한 어려움들을 겪어가면서 여러 인종의 나라, 미국을 튼튼하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격동의 역사와 멀리 있던 삽질로 농사짓던 농민들은 전력을 이용한 농기구를 개발했다. 미국 정치, 문화 현대화에 기여한 뛰어난 인재들도 배출했다. 바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월트디즈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보비 딜론의 그들이다. 그들은 세기적이고도 독보적이었던 자기개발의 에너지를 가진 대표적 인물들이다. 만화를 그리던 10대 청년 월트디즈니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로널드 레이건을 ‘싹수가 노랗다’고 거부 한 곳이라는 뒷담화도 있다.


이런 뒷담화들은 평범한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고무적인 이야기도 빼어 놓을 수 없다. 바로 노예해방의 리더였던 링컨 대통령이 ‘새파란 청년 변호사’이었을 때 미시시피강 위를 지나가는 기찻길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이바지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국내와 국외로 이동되는 모든 물품을 2300여 마일을 남북으로 흐르는 미시시피강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 강의 동쪽과 서쪽의 여러 도시는 1800 년대에는 스팀으로, 그 후에는 디젤, 이어서는 개솔린 엔진으로 움직이는 배들에 의존해서 물품 유통을 했다. 대두와 옥수수 같은 농산물을 대량생산해서 옮겼고, 농기구나 목재도 이 강을 이용해서 날랐다. 기찻길이 이 강 위로 동쪽과 서쪽을 가로질러 소통시키면서 쌍방의 물건을 나를 수 있었으니, 얼마나 획기적이었을까 상상이 된다.


내가 탄 배는 하니발을 떠나 다음 항구인 블랙호크조약(Black Hawk Treaty)를 맺은 콰드시티(Quad Cities)에 도착했다. 그곳은 국가라는 울타리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했다. 대륙의 주인인 원주민들은 국가라는 관념이나 국가의 울타리가 없었다. 강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고, 1804년에 몇 부족은 유럽 백인 정착민들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땅을 내어 줄 정도였다. 박물관에 걸려있는 사진에서 인디언 부족장 와파하사와 US 인디언 담당 에이전트 로렌스

탈리아페로의 요약된 활동을 읽을 수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받았던 경제적 압박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제 땅을 잃은 지도자의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30여 년이 지난 1832년에 블랙호크라는 지도자가 땅과 자유를 되찾으려고 전쟁을 일으키지만 결국 그는 실패하고 만다. 일본과 을사조약을 맺고, 많은 항쟁을 했어도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듯이, 이 블랙호크조약으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결국 항복한다. 블랙호크는 미국에 ‘반동’으로 몰리어 감옥에서 수년을 지내었다. 그는 부족장은 아니었다.


블랙호크뿐 아니라, 흑인 노예들의 반전도 있었다. 대표적인 자유 항쟁 인물들은 헤리엇 스콧, 드레드 스콧 부부이다.

다음 편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노인들을 만난 라 크로쓰(La Crosse), 미국의 국조(國鳥)인 ‘돌아온 새’로 불리는 독수리 생태연구소가 있는 와바샤(Wabasha), 농기구를 쟁기에서 개발한 디어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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