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외로운 선교, 고단한 선교, & 행복한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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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칼럼] 외로운 선교, 고단한 선교, & 행복한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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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옥 목사

미라클 LA교회(Miracle LA Church)


필자는 나이 60이 되도록 성지순례를 하지 못하였다. 오래 전 한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교단 차원에서 목회자 성지순례가 잘 준비되어 예루살렘으로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라에 큰 고통이 찾아왔다. IMF 사태가 터진 것이다.


결국 외환 위기의 상황에 출국한다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니기에 훗날을 기약하며 아이의 돌 반지들을 챙겨서 오히려 헌납하였다. 그리고 선교학을 공부하고, 선교지로 나가기 위해 2003년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기묘하였다. 하나님도 다른 차원의 선교를 준비하고 계셨는데, 애송이 목사 한 명이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2003년 학업을 위해 입국하고, 목사이기에 섬길 교회를 위해 40일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필자가 현재 섬기고 있는 미라클 LA 글로벌감리교회의 전신이었던 교회에서 부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평안북도에서 출생하셨던 담임목사님은 혼자서 조용히 압록강변, 두만강변 고통 가운데 지내던 꽃제비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던 시기였다. 당시 필자의 교회 신자들이 이러한 선교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아서 자비량으로 자신의 휴가를 그렇게 사용하시던 때다. 어찌 보면 외로운 선교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005년에 필자의 교회에서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단기선교팀 파송을 준비하였을 때에는 그 분위기가 사뭇 기대와 긴장이 교차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큰 교회가 아니었는데, 30,000달러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였기에 단기선교팀 파송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한 계획이 계셔서 연약한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셔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파송 할 수 있게 하셨다. 선교에 호의적이지 않아서 담임목사가 혼자서 자비량으로, 자신의 휴가를 대신하여 외로운 선교를 행했던 교회가 거액의 비용을 들여서 단기선교팀을 파송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하나님은 이러한 나에게 선교적 교회가 되게 하는 역변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셔서 한 가지 생각을 주셨다. 그것은 선교팀으로 파송된 학생들과 신자들을 위해 전교인 40일 금식기도를 드리자는 제안이었다. 선교를 불편하게 생각하던 신자들에게 40일 연속 금식기도는 더욱 불편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충만하게 이끌어 주셔서 필자의 교회는 선교적 교회로의 큰 발걸음을 출발할 수 있었다.


이후 해마다 우리들은 자비량 단기선교팀을 파송할 수 있었고, 필자 역시 자비량으로 단기선교팀과 함께 사역을 펼칠 수 있었다. 특히 2005년에 하나님은 필자에게 “내가 급해서 너를 부른다”라는 음성을 주심으로 인하여 당시 담임목사님과 함께 2050년까지 5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비전 50‘선교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선교 비전이기에 필자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님은 내가 급해서 그런다는 음성을 통하여 온전히 순종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후 비전 50 선교에 자비량으로 우선적으로 중국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다. 이는 20여년전에 선교하게 되었던 중국교회는 성령의 뜨거운 불이 역사하셨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당시 미말의 종이었던 필자가 중국교회를 방문하여 집회를 해도, 성령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각종 병든 자를 고치게 하셨기 때문이다. 2011년 필자는 같은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되어 시진핑 주석의 선교추방 정책 전까지 중국의 연변을 시작으로, 통화, 영안, 무단장, 훈춘, 심양, 내몽골 근처 강핑, 베이징, 정주, 서주, 상하이, 귀양, 쿤밍 등등 중국의 전역에서 단기선교팀과 또는 혼자 사역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여 중국 곳곳에서 비전 50 선교 사역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조선족 목회자에서 시작하여 훨씬 더 많은 한족 목회자들이 함께 동역하는 비전 50 중국 본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몽과 일대일로의 꿈으로 선교사들을 추방하던 시진핑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의 선교는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당시 우리들도 영적, 인적, 물적 자원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미연마, 네팔, 방글라데쉬, 인도, 파키스탄, 아프리카 감비아, 체드, 말리, 콩고, 브룬디,말라위 등으로 투입하게 됭었다. 뿐만 아니라 팬더믹으로 인한 줌미팅의 활성화로 우리들은 현지 목회자들과 더욱더 자주, 다양한 플랫폼으로 만나 활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상상초월의 선교전략과 귀한 동역자들의 헌신으로 비전 50 선교는 현재 18개 나라에서 3,000 교회, 4,000 목회자, 120,000 성도들이 비전 50 선교회 국가별 본부를 조직하기에 이르렀으니 하나님의 경륜은 참으로 기묘할 뿐이다. 하여 필자 교회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미라클 LA 교회가 되었다.


이때 얻어진 선교적 열매들은 필자와 성도들이 모두 자비량으로 감당하였던 열매들이었다. 하여 필자는 자비량 선교의 시간적, 재정적 우선순위로 인한 한계로 아직까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이루지 못하고, 제 3세계를 떠돌고 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피곤한 선교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전 50 선교회를 통하여 한 해에 200여개의 교회가 개척이 되고, 3,000명 넘는 세례자, 10,000명이 넘는 회심자들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선교인가? 지금도 베트남의 5성급 같은 1성급 호텔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행복한 선교가 되게 하신 하나님과 귀한 신자들에게 감사, 또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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