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기쁘게 찬양을 부를 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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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기쁘게 찬양을 부를 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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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성가대 활동을 통해 교화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 낸 영화 '시스터 액트'(1992)



최문섭 목사 (하나님을 바라보는 교회 담임)


우리는 많은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찬양의 유익함은 모릅니다. 마치 노래교실이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듯 찬양을 합니다. 하지만 찬양사역자인 나로서는 우선적으로 ‘찬송’과 ‘찬양’은 모두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찬송(讚頌)은 주로 노래를 불러서 하나님을 높이고 기리는 것을 의미하고 찬양(讚揚)은 더 넓은 의미로 노래와 악기 연주, 몸 동작 등 모든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 ‘찬송’과 ‘찬양’은 다릅니다

따라서 찬송과 찬양은 자기 내면의 심정을 하나님께 목소리와 악기로 표현하고 전달해야 하며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찬송과 찬양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거짓 행위에 절대 속지 않으신다는 말 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고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으로만 하나님을 향해 머리를 숙이며 경외 하는 척 한다고 한다면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했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모든 찬송과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주인이 바뀌어서도 안됩니다. 사람이 기쁘기 보다는 하나님이 기쁘셔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찬송이고 찬양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을 위한 찬양의 행위와 사람을 위한 노래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찬양 사역자와 인도자들이 넘쳐나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다고 은혜나 영광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올바른 찬양이란 하나님이 기쁘시고 사람에게도 은혜를 끼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요사이 TV 나 유투브에서 찬양집회나 찬양예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진짜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인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위로하는 일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올려지는 찬양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로하려고만 하니 노래가 좋아서 따라 부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송’은 주로 노래로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를 뜻합니다. 반면 ‘찬양’은 노래뿐 아니라 악기, 율동, 몸짓 등 모든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넓은 개념입니다. 결국 두 단어는 모두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로,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마음에 있습니다.


#. 찬양의 유익과 변화는 무엇입니까?

찬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찬송을 부르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가 넘칩니다. 낙심한 영혼은 새 힘을 얻고, 믿음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회개의 찬송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기쁨의 찬송은 즐거움으로 충만케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찬송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담대함을 줍니다. 무엇보다 찬송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직접 불러본 사람만이 그 은혜를 압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찬양의 놀라운 역사를 보여줍니다. 욥은 자녀와 재산을 모두 잃고도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에게 임했던 악신이 떠났습니다(삼상 16:23). 이스라엘은 전쟁에 나아갈 때, 항상 적군들보다 군사의 숫자가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겁내지 않고, 군대 앞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를 앞세우고 찬양을 부르면서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적들을 물리쳐 주시고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해 주셨습니다(대하 20:21-22).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다가 옥문이 열리고 결박이 풀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행 16:25-26). 루터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을 지어 부르며 종교개혁을 완수했습니다. 찬양은 마귀를 물리치고 믿음을 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찬양은 사탄 마귀를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무기요 능력인 것입니다. 


#. 오늘 우리의 찬양은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날 교회에는 찬양 팀과 합창단이 세워지고, 수많은 새로운 찬송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이나 규모가 아닙니다. 찬양의 본질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무대라도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찬양은 성도의 신앙고백이자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삶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사야 43장 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찬송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형통할 때나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찬양을 올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찬양 가운데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루터가 죽음의 공포 앞에 있을 때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라는 찬송을 만들어서 부르고 찬송으로 힘을 얻어 종교개혁에 성공을 했듯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송을 부르면 죽게 된 사람일지라도 살 길이 열립니다.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상관 없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상관 없이, 우리가 찬송을 불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찬송 받으시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하십니다. 이러한 찬양의 유익이야 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찬양은 어떠합니까? 또한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찬양대는 어떠합니까? 찬양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영광의 표현입니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신자의 내면을 새롭게 하며 하나님과 만나는 통로이며 사탄마귀를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이면서 개인의 유익을 넘어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고, 연약한 인생에 힘을 주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찬양의 유익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신자들에게는 기쁨·평안·회복·승리·연합을 주는 능력입니다. 즉, 찬양은 예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신앙생활 전체를 살리는 생명력임을 이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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