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자주와 동맹
이 우 근
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PEN.KOREA 인권위원장
유비의 부름을 받은 제갈공명은 위·오·촉 세 나라의 천하삼분지계를 역설한다. 촉한과 동오의 동맹으로 위나라에 대항하자는 공명의 구상은 적벽대전에서 큰 위력을 나타냈다. 그러나 형주의 영유권을 둘러싼 촉·오의 전쟁, 유비의 패전으로 촉·오동맹이 허물어지자, 공명은 촉나라 단독으로 위 정벌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장원에서 죽는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민주정치, 풍요로운 경제, 문화적 융성을 이룬 개방국가였고, 경쟁국인 스파르타는 경제와 문화에서 낙후된 폐쇄적 병영국가였다. 그리스의 숙적 페르시아를 번번이 물리친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은 그리스의 지배권을 놓고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27년 동안 동족끼리 전쟁을 벌인다.
스파르타는 이민족 페르시아의 지원까지 끌어들였지만, 아테네는 동족의 순수성을 고집하며 오만한 태도로 델로스 동맹의 결속마저 약화시켰다. 동족인가, 동맹인가? 이민족과 동맹을 맺은 군사독재체제의 스파르타가 자유민주체제의 동족 아테네를 무릎 꿇렸다.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지배권을 상실한 뒤에는 코린토스 동맹을 이끈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통일하면서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시대를 펼친다. 동맹이 없었다면 스파르타의 승리도, 그리스의 통일도, 헬레니즘의 문명도 역사에 없었을지 모른다.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에 영토 할양을 요구하자 체코는 영국·프랑스·소련과 맺은 집단안보체제를 믿고 독일의 요구를 거절한다. 그런데 독일을 두려워한 프랑스와 영국은 체코를 배제한 채 뮌헨협정으로 독일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동맹에 배신당한 체코는 전투 한 번 못해보고 영토를 뺏긴 뒤 곧 나라 전체가 독일에 병합되었다. 동맹을 잃은 외교적 고립의 슬픈 운명이다.
남베트남을 지원하던 미국이 미군을 철수시키자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 수도 사이공의 함락으로 패망했다. 서방세계와 관계를 끊고 아랍 민족의 반미 자주 노선을 선언한 리비아의 카다피도 '아랍의 봄' 혁명에 뒤이은 내전과 나토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민족자주독립을 추구한 고립정책이 가다피의 42년 독재정권을 붕괴시킨 것이다.
수·당의 중국 대군을 번번이 격파한 고구려는 신라보다 군사력이 강했다. 드넓은 농토를 가진 백제는 신라보다 경제력이 앞섰다. 군사력·경제력이 고구려와 백제에 뒤진 신라가 무슨 힘으로 삼국을 통일했는가? 나·당 연합의 동맹외교였다. 이민족과의 동맹으로 동족의 나라를 굴복시키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당나라와도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동맹은 통일에 필요한 한 고비였다.
조선 말기, 흥선 대원군은 나라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자주외교, 자주국방을 고집했다. 그러나 일본 군함 운요호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조선은 청·일·러 등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고, 끝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불러오고 말았다. 세계정세의 흐름과 국제 동맹의 중요성에 눈 감은 자주외교의 불행한 결과였다.
동맹을 버리고 자주를 외친 나라들의 몰락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유신 시절의 민족적 민주주의, 북쪽의 민족주체사상이라는 역사적 오류를 경험한 우리도 만약 건강한 민족애와 배타적 동족의식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결국 ‘닫힌 민족주의’라는 이념의 자폐증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족자주’는 매력적이고 가슴 뛰는 신념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지구촌 곳곳이 한나절이면 가닿는 거리로 좁혀지고, 글로벌 분업의 세계화로 한 나라의 독자생존이 불가능해진데다, 각종 대량살상무기들이 여러 나라의 안보구역을 턱없이 확대시킨 현대에는 동맹외교의 필요성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절실해졌다.
이즈음 자유세계의 동맹을 벗어나 민족자주를 외치는 목소리가 마치 시대정신처럼 당당히 흘러나온다. 동맹의 결속보다 동족의 선의(善意)에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는가? 핵무기를 거머쥐고 ‘남한은 동족이 아니라 적(敵)’이라고 호통치는 자칭 김일성민족의 기대 불가능한 선의에… 빅토르 위고의 탄식이 떠오른다. “적의 침략에는 저항할 수 있지만, 자기 시대의 사상에는 저항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