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난 동남아 여행
인도네시아 자바섬 사마랑에 있는 삼푸콩 사원 광장에서 남편과 포즈를 취했다. 발리의 재래시장 모습. '푸푸탄 바둥' 기념탑. 삼푸콩 사원.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관광객들을 반기는 조형물.(위에서부터)
[나의 여행기] 한국어진흥재단 모니카 류 이사장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난 동남아 여행 <상>
인도네시아 발리와 자카르타에서
근대 동남아 역사·섬나라 문화 배워
외세침략 피해의 역사, 한국과 비슷
'和蘭'에 맞서 '푸푸탄 독립투쟁' 펼쳐
곳곳에 중국 문화와 경제력 침투
현 수도 자카르타, 수반침식 심해
보르네오섬 누산타라로 천도 계획
마치 밀렸던 숙제를 해야 할 것처럼, 은퇴가 가까워 지던 때부터 자주 여행을 떠났다. 나는 여행을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다. 친구들 말을 빌리면 ‘엉덩이가 무거워서’, 형제들 말을 빌리면 ‘변덕이 죽 끓듯 해서 한군데 못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 게으르고 피곤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가 가난했던 어린시절이었다. 졸업 학년 때 경주 수학여행 갔던 것이 기억난다. 일 년에 두 번 가까운 곳에 소풍 갔던 것, 송충이 잡으러 서울 근처 어느 산에 갔었던 적이 있는데, 그것은 소풍이 아니다. 서울을 벗어난 가족여행은 아예 없었다.
여행을 싫어했던 것이, 내 성격 탓이었는지, 어려웠던 가족의 상황 때문이었는지, 어느 것이 먼저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성인이 되어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났고, 미국에 살게 되면서, 아이들의 안목을 넓히고, 아이들이 나 같은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에 여행은 피할 수 없는 가족행사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많은 여행을 했다. 최근 6년 동안 18번 여행지로 떠났는데, 그중에 16번은 남극을 포함한 미국 밖 해외이었다. 남극에서는 알바트로스 새와 펭귄들을 만났다. 지난달에는 동남아시아 몇 나라를 다녀왔다. 무척 피상적인 여행이었지만, 남극에서는 자연을 배웠다면, 동남아시아에서는 역사와 문화를 배웠다. 이 나라들은 나의 모국을 생각하게 했다.
섬들로 형성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배가 호텔 역할을 하는 크루즈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매일 짐을 꾸릴 필요 없이, 선실이 임시 거처가 되어주고, 항구에 내리면 뭍에서 버스나 택시로 이동한다. 어쩌면 내가 선호하는 이런 방법의 여행은 수박 겉핥기식의 무척 피상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꼬박 하루
LA에서 지구의 정 반대편에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까지 도착하는 데에 하루 이상을 길 위에서, 또 하늘에서 보냈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1만7000개 섬 중 하나인 자바섬에 있다. 적도를 끼고 있어서 불쾌지수가 높은 후덥지근한 날씨이다. 텍사스주의 세 배 면적으로 약 2억30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여섯 개의 종교, 7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다민족, 다종교이지만 마찰 없이 잘 어우러져 살고 있다고 한다. 다인종의 나라 미국에 살고있는 나로서,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이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1800년대부터이다.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관념 없이 편안히 어우러져 잘 살던 섬사람들에게 향료 무역상들이 1600년대부터 들어오면서 상거래를 시작하였다. 점차 정치적으로 식민지화하는 아이디어에 매료된 이들은 인도네시아를 속국화한다. 네덜란드뿐 아니라 영국에 이어 일본도 2차 대전 전에, 한때 이 지역을 침범했다. 이들의 근대사는 한국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1906년 발리왕국을 중심으로 네덜란드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기관총, 대포 등의 신식무기로 무장한 네덜란드 군을 이길 수 없었다. 그들이 궁성 앞에 도달하자 발리의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 약 1000명은 항복보다 죽음을 택하였다. 이 사건을 ‘푸푸탄 투쟁’이라고 부른다. 우리 한국의 삼일절 만세 독립운동처럼 무기 없이 봉기했던 사건으로 이를 기념해 푸푸탄이 제일 많았던 ‘푸푸탄 바둥’에 기념탑이 세워져 있어서 의미를 더한다. 이 기념탑에는 조각된 아이들의 모습도 보여 가슴 아프다.
다인종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중국계는 약 1.2%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문화적, 경제적 침투력은 매우 강하다. 인도네시아 어디를 가든지, 웬만한 도시에는 차이나타운이 있고, 중국 사원, 중국 음식점이 있다. 종족끼리 모여서, 활발하게 사는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다. 자바섬의 사마랑에 있는 삼푸콩 사원과 마당에 서 있는 쟁해 장군 석상이 그 좋은 예이다.
#. 발리를 떠나 자카르타로
발리를 떠나 다음에 기착한 곳은 수도인 자카르타이었다. 자카르타는 나의 큰 오빠가 1960년, 1970년 대에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 꼭 가보고 싶었다. 당시 한국은 발전 도상에 있었고, 경제적 여유는 없었지만, 1973년 3월 19일에 뉴욕타임즈 사무엘 김 기자가 보고 했듯이, 경제개발이 절실한 인도네시아를 돕는 차원에서 건설회사, 토목업체들이 파견되었다. 뉴욕, LA, 서울처럼 교통체증이 심하였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곳곳에 조형물이 방문객들을 맞았다.
자카르타는 인구밀도가 높아 오염이 심하고 지리적으로 13개의 강이 교차하는 늪 지역에 세워져 있다. 늪 지역이다 보니, 수반침식이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몇 년 후 보르네오 섬에 있는 누산타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발전을 위한 성장통을 앓았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근대 동남아시아 역사와 이 섬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좋은 여행의 시작점이었다. 다음 행선지인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싱가포르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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