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인생은 무엇을 타고 가는가?
이보영
한진해운 전 미주지역본부장
2024년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이 가까워 질수록 ‘세월이 무척이나 빠르게 지나갔네!’ 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나이 들수록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의학자들에 의하면, 나이 들수록 쾌감을 느낄 때 분비되는 ‘도파민(Dopamine) 호르몬’ 분비량이 감소되고, 도파민 분비가 줄면 기억의 강도가 약해져서 지나 간 일에 대한 기억이 흐려진다고 한다.
나이 들수록 지난 일들에 대한 기억이 감소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짧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의 노화는 뇌 신경망을 둔하게 해 이미지를 점점 흐릿하게 인지한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때,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사람의 두뇌는 흥미롭거나 충격적인 일은 깊이 오래 기억하지만, 익숙한 일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반대로 어린아이들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뇌는 정보처리 속도가 빨라 동일 시간에 어른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기술(New Technology)이 매일, 매시간 발명되어 쏟아져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신기술 하나가 발명되어 세상에 발표되려면 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시대에 우리는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삶을 바쁘게 살면서 무엇인가를 타고, 의지하여 가는 인생이다. 두 다리로 걸어가는 인생,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가는 인생, 배를 타고가거나, 비행기를 타고가는 인생….
두 다리로 걷는 것은 느리고 피곤하고 지루하다. 그래서 빠르고 편리한 자동차, 기차를 만들게 되었고, 물이 깊고 멀어서 건널 수 없게 되자 배를 띄워 건너게 되었고, 공중에 자유롭게 날아 다니는 새를 보며 부러워 하다가 마침내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발명하게 되었다.
인류가 만든 운송수단 중에 가장 많은 화물을 운송하는 수단은 선박이다. 비행기는 가장 빠른 운송수단이다. 어찌보면 지구촌에 있는 모든 인류는 ‘지구(地球)’라는 운송수단을 타고 가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운송수단은 인간이 발명하고 제작했지만, 지구는 창조주가 만든 걸작품이다.
지구는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까? 과연 고속열차나 항공기보다 얼마나 빠를까?
‘하루’ 라는 시간은 지구가 자전(自轉: Rotation)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을 말한다. 즉 1일, 24시간이다. 자전으로 인해 지구에는 낮과 밤이 생기고, 낮엔 해가 뜨고 밤엔 달과, 별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지구의 둘레는 4만km, 하루 24시간으로 쪼개면, 지구의 자전속도는 시속 약 1667km/h 이다. 이를 초속으로 환산하면 463m/s 이다. 음속(Sonic) 340m/s보다 더 빠른 속도다. 자전속도 약 1667km는 KTX 고속열차의 최고속도인 305km/h 보다 5.5배나 빠르고, A380 항공기의 최대항속 945km/h 보다 1.8배나 빠른 속도이다.
이런 속도로 달리는데 우리가 어지럼증이나 멀미, 구토를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참 궁금하다. 속도가 느린 놀이기구를 잠시만 타도 어지럼증과 불안을 느끼는데, 자전하는 지구를 종일 타고 가면서도 어지럼증이나 멀미를 느끼지 않고 산다는 것이 그저 신비롭다. 그 이유는 중력이 있는 지구에 꼭 붙어서 모든 공간의 사물들과 우리가 한 몸이 되어서 함께 움직이니 ‘내가 돌고 있다’는 감각을 인지하지 못해서 어지럼증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좀 더 수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지구의 자전은 24시간에 360도를 돌지만, 이를 초당으로 환산해 보면
360도/86,400초= 0.004 이다. 지구의 자전은 초당 0.004도만큼 회전한다. 10초면 0.04도, 100초라 해도 고작 0.4도이다. 우리가 느끼기에 아주 미세한 각도이기 때문에 거의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구의 공전(公轉: Orbit)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주기적으로 도는 운동을 말한다. 이 공전과 기울어 진 자전축으로 인해 4계절이 생긴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시간을 1년이라고 정했다. 지구의 공전속도는 시간당 10만7000km/h로 움직이고 있다. 공전속도를 초속으로 환산하면 초당 30km, 음속(Mach: 마하)보다 88배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인류가 개발한 그 어떤 운송수단도 지구의 공전 속도를 따라가질 못한다. ‘지구’ 라는 비행물체는 약 75억명의 승객을 태우고 초속 30km로 날아가며, 시속 1667km로 회전하는 거대한 비행선에 우리가 함께 탑승해 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빨리 달리는데, 왜 소음(noise)은 들리지 않을까? 인간의 ‘가청 주파수(Audio Frequency Range)’는 20hz~16khz 범위 안에서만 들을 수 있다. 만약 지구의 공전이나 회전 소음이 우리의 귀에 들린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창조주의 한 수다.(That was a stroke of genius)
2024년 한해도 ‘지구’의 비행선을 타고 참 빠르게 지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