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영산강 뱃길과 왕인 박사
김희식
(주)건축사무소 광장 상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주말, ‘영암 왕인 문화축제’ 행사장을 다녀왔습니다. 4세기 중엽 일본에 학문과 기술문화를 전파하러 떠났던 왕인(王仁)박사. 그는 영암 월출산 자락 성기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번 행사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지방 문화행사였죠.
행사장 한 쪽 국악무대에서는 명창들의 ‘강강술래’ 소리가 들립니다. 무대 앞 넓은 잔디밭에서는 한복을 차려입은 200여 명의 영암군 여성들이 명창들의 ‘강강수~울래’ 연창 소리에 맞춰 여러 대형을 보여줍니다. 원형, S형, 무한대꼴 등 다양한 이합집산의 변화로 모션이 수시로 바뀝니다. 길 건너편에서는 왕인 박사 길놀이 퍼레이드가 펼쳐졌고요.
농악대를 앞 세운 행렬이 이어집니다. 뒤를 이어 풍물놀이 패들, 그중 머리에 쓰는 둥근모자 전립(氈笠) 위에 매달린 끈을 신나게 전후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뱅뱅돌리기도 하는 등 신명나는 한마당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당시의 복식을 차려입은 관원들이 줄 지어 지나 갑니다. 시대가 바뀌다 보니 외국 유학생들과 청년들도 자원하여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네요. 그들도 무리지어 옛 복장을 입은 채 대열에 맞춰 유쾌하게 걸어가는 모습입니다.
행렬이 지나간 후, 어찌하여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 갔을까, 국사시간에 익혔던 왕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봤습니다. “4세기 중엽 백제 근초고왕 때 백제 왕이 백제 학자 아직기(阿直岐)에게 좋은 말 두 필을 갖고 왜로 건너가 왜왕에게 선물하게 했다. 이에 왜왕은 그 말 기르는 일을 아직기에게 맡겼고 또한, 아직기가 경전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얼마 후에 ‘그대 나라에 그대보다 나은 박사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왕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왜왕은 세 명의 사신을 백제에 보내 왕인을 모셔오게 했다. 왕인은 논어10권과 천자문 한 권을 갖고 왜로 건너갔다. 그때 백제왕은 제철 기술자, 직조공, 양조 기술자 등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왜에 간 왕인은 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왜왕의 요청에 따라 신하들에게 경(經)과 사(史)를 가르쳤다.” (나의 문화답사기, 일본 아스카, 나라편 40쪽, 유홍준, 2016).
‘친구따라 강남간다’ 라고 했던가요. 아직기의 소개로 왕인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거죠. 행사장을 빠져나와 이웃한 구림마을로 향했습니다. 왕인이 성장했던 마을입니다. 여전히 수십 채의 한옥들이 품격있게 모여있는 마을입니다. 이어서 간 곳은 백제시대 국제무역항이었다는 상대포(上臺浦). 지금은 영산강 하구언으로 인하여 뱃길이 끊겼지만 당시에는 영산강을 거쳐 목포까지 뱃길로 이어졌던 곳이죠. “목포에서 영산강까지 48킬로미터 구간은 남도인 나주, 무안, 영암 해남군과 다도해 섬들과의 뱃길로 이용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영산포에 조창이 설치돼 있었으므로 물자수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전라도 남부의 쌀은 이곳 영산강의 수운을 통해 다른 지방으로 수송되었다. 최근까지도 소기선(小汽船)이 내왕하여 영산포에 등대가 있었으나, 육상교통의 발달과 하상의 변동으로 현재는 운행되지 않는다. 영산강 하류에 자리잡은 영암의 상대포는 당시의 국제항구로서 왕인박사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난 곳이다.”(신정일의 신택리지 222쪽, 2016).
그러고 보면 왕인도 고향을 떠나 일본에서 살게 된 디아스포라의 한 사람이었던 셈이죠.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찿아가는 키워드는 도래인(渡來人, 도라이진)이다. 한때는 귀화인(歸化人)이라고 했다. 도래인의 대종은 가야인과 백제인이었다. 4세기경부터 학문과 기술의 교류가 있었던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주주국가라고 할 수있다. "이러한 맥락때문일까요? 요즘도 자주 등장하는 일본의 역사왜곡 보도와 함께, 최근 '한국병합'의 역사적 사실을 일본인 학자에 의해 객관적 시각으로 저술한 책도 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모리 마유코, 도쿄여대 교수, 한국병합-논쟁을 넘어 2024).
이번 왕인박사 문화축제와 왕인 유적지를 다녀오는 동안 수긍이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문화를 무시한다. 이제는 일방적 시각에서 쌍방적 시각으로 전환 할 때다”(유홍준, 일본 답사기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