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모임 때 정치 얘기했다가 언쟁만…”
소셜미디어로 정치 양극화 심화
미국 79% 1위… 한국 77% 3위
84% “허위 정보에 더 취약해져”
퓨리서치 19개 선진국 조사 결과 컷
A씨는 얼마 전 송년 모임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오랜만에 동창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던 중 화제가 한국 정치로 옮겨가면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 고위급 인사가 서울 모처에서 굴지의 로펌 변호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는 한국발 뉴스를 놓고 날 선 언쟁이 벌어졌다. 까마득한 후배 B씨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야~ 요즘 유튜브 중에 참 엉터리들이 너무 많아. 그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소리냐. 말도 안되는 걸로 조회수 올려 돈 버는 데만 혈안들이야.” (A씨)
“아니 선배님. 잘 알고 말씀하셔야지요. 녹취록이 다 나왔다니까요. 그 사람들 중에 고위 공직자들도 있잖아요. 차량 운행 기록만 뒤져보면 금세 알 수 있어요.” (후배 B씨)
이렇게 시작된 말싸움은 점점 볼륨이 높아지고, 틀딱, 개딸, 바이든, 날리면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면서 급기야 격한 감정이 폭발 일보직전까지 맞부딪혔다. 주위의 만류로 간신히 멈추기는 했지만, 자리는 이미 흥이 다 깨지고 말았다.
A씨는 “마치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명백한 사실에 대해 저렇게 다른 생각을 갖고, 엉뚱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지 모르겠다”며 “며칠이 지나도 사과 한마디 없다. 후배라는 사실이 창피하고 믿기지 않는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유튜브를 비롯해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플랫폼이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킨다는 조사 결과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는 한국,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선진국 19개국을 대상으로 이런 소셜미디어 및 인터넷과 민주주의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6일 공개했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인의 77%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이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킨다고 답했다. 이는 19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미국(79%), 네덜란드(78%) 등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수치다. 조사대상국의 평균 응답은 한국보다 12%포인트 낮은 65%였다. 한국 응답자의 61%는 또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에 긍정적이라고 답했으며 32%는 소셜미디어를 민주주의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나 카카오톡 단체방으로 수신되는 정체모를 ‘뉴스’나 ‘펌글’의 범람이 확증편향을 심화시키고, 점점 이념적 성향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LA에서 개인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김택수씨는 “사업상 모임에 가면 초면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살피게 된다. 특히 정치적으로 어떤 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혹시 반대되는 성향이면 가급적 주제를 피하려 한다”며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정보에 노출돼 누구나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지식을 가졌다. 괜히 내 얘기만 고집하다가는 말싸움 나기 십상이다. 그러려니 하고 웃어 넘기는 게 최선”이라고 밝혔다.
퓨리서치 조사 결과 대상 국가 응답자의 84%는 소셜미디어로 허위정보에 더 취약해졌다고 답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인종과 종교 등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수용성이 증대됐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국가별로 답변에 차이가 있었다.
전체 조사대상 국가 평균이 45%에 그친 가운데 한국(62%)은 수용성 측면에서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19개 국가 중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 바로 다음은 싱가포르(51%)였으며, 프랑스가 25%로 긍정적 평가율이 가장 낮았다.
이번 조사는 미국 성인 3581명, 한국을 비롯한 미국 외 지역 성인 2만944명을 대상으로 지난 2월~6월 전화, 면담, 온라인 설문 등의 방식으로 실시됐다.
백종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