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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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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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고문의 건강비결 


현존하는 정치인 최고참이며 정치사에 가장 의리있는, 지금까지도 바른생활 밖에 다른 길을 모르는 모범적인 삶을 산다는 권노갑 고문의 생신 축하연이 지난 2월 8일 오후 6시 서울클럽에서 200여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화기애애 하게 진행됐다. 공식 사회는 김민석 국회의원, 축하공연 사회는 그간 생신을 비롯해 산수연(80세) 미수연(88세) 사회를 했던 개그맨 엄영수가 맡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그림자, 영원한 비서, 민주당 평생고문, 실세이지만 배후에 있었고 정치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었어도 영향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정치인은 보통 청중에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지지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직업상 당연한 일이다. 나도 코미디협회장 직책을 맡고 있어서 축사, 격려사, 기념사, 심사평, 치사, 소감 등 여러 말을 하게 되는데, 내용은 항상 10초 이내다. “훌륭한 분들께서 좋은 말씀 하십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축하 차 왔다는 것만 보이고 내려오면 된다. 행사장은 어딜 가나, 시간이 늦어진다. 축사가 길어진다. 빨리 끝내주기를 바라는 코앞의 민심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무슨 큰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쓸데 없는 말을 제발 절반만이라도 줄이자! 행사시간을 줄여서 다른 참석자들 현장에 일찍 복귀해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시간 없어 쩔쩔매는 밑에서 일하는 실무자들 일 좀 여유있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 행사시간 길어지면 그 틈새를 메꾸려고 과속하다가 교통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마이크를 장시간 독점하는 것은 민폐다. 국가적인 손실, 사회적 손해 비용을 따져서 말 많은 곳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 재미없는 말을 길게 하는 코미디언은 결국 퇴출당한다. 국회는 마이크세를 제정하라!


권 고문은 말을 듣기만 할 뿐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말을 아낀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비서, 고문을 평생하고 있다. 주빈께서 참석 내빈을 한 분 한 분 소개하는데 그렇게 정확할 수가 없다. 듣는 분들이 모두 '94세 노인께서 기억력이 어쩌면 저렇게 좋을까'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대방의 이름, 인연을 맺은 이유, 현재의 직책, 예전에 있었던 일화, 주요 사건을 하나 하나 상세히 열거 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로 보였다. 정확한 발음, 넘치는 건강미, 맑은 목소리, 곳곳한 자세, 침착하고 여유있는 모습, 젊음이 넘치는 기백, 100세 돌파는 시간문제고 120살까지도 문제없을 것 같다는 모든 축하객의 느낌이었다. 


90만 넘으면 노인들께서는  걸음도 제대로 걷기 어렵고 발음이 부정확 하며 앉아 있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소개를 받은 영화배우 신영균 스타께서는 96세로 매일 권고문을 피트니스클럽에서 만나 꾸준히 운동을 하고, 항상 좋은 생각을 하고, 남의 애경사는 반드시 시간을 내 챙기고, 이웃과 대화를 끊임없이 하는 게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다. 두 분 특징을 보니 웃음이 그치지 아니했다. 권 고문께서는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고 신영균 스타께서는 너털웃음을 크게 지으면서 입장해서 떠날 때까지 계속 그렇게 크게 웃기만 하다 가셨다. 내가 인사를 올리니까 '그래, 알아 알아. 하하하하. 말 잘하지, 잘해. 하하하하. 응, 좋아. 하하하하' 웃기 위해 태어나신 것처럼 계속 웃어 주셨다. 건강의 기본, 건강의 비결, 건강의 지킴이는 웃음이란 것을 다시 확인했다.


가수 남진 형님이 무대에서 과거를 회상했다. 권 고문께서 목포여고에 영어 선생님으로 재직할 때, 남진 형님 사촌누나 영어 가정교사를 하셨는데 그때 모습이 영화배우 같으셨고, 처음에 팝송가수로 시작했기에 영어에 관심이 많을 때라 사촌누나가 영어공부 하는 걸 여러 번 봤는데 어려운 영어를 참 쉽고 재미있게 강의하셨던 게 기억난다고 하였다. 권 고문께서는 목포의 남진 아버님께서 목포일보 회장, 국회의원, 양조회사 회장이었는데 국회의원은 이제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며, 시대가 바뀌었다고 불출마 선언으로 김대중 후보를 밀어주지 않았으면,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권 고문은 또, 정보기관에 끌려 가서 물고문을 가장 많이 당한 것이 김옥두 총장과 자신이었는데 물을 먹여서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죽음이 오는 것이 보였고, 아! 이제 죽는구나 실감이 났다며 그러나 반드시 살아 나가서 하려던 일들을 끝까지 할 것이란 결의를 다졌다고 했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정신력이 매우 강한 분이다. 권투선수로 3등을 하는 바람에 3회 런던올림픽을 못나갔고, 운동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기에 영어공부로 전환해서 영어 선생님이 됐으며 복싱뿐 아니라, 육상·축구·배구·농구 등 만능 운동선수였고, 꾸준히 공부를 병행했다고 전했다.


건강을 위해 오랫동안 골프를 즐겨 왔는데 드라이버 잘 치는 사람 만나면 그를 타켓으로 놓고 꾸준히 연습해 반드시 비거리에서 앞섰고, 한 번도 도전에 실패한 적이 없으며, 최근 국회의원 중 가장 멀리 나가는 두 사람을 추월하려고 밤낮으로 때리고 있으며 곧 따라잡을 것이라 예고했다. 1월에도 가장 추운 날을 택해 여섯 번, 2월 초에 한 번 금년 들어 벌써 일곱 번 라운딩을 했다. 드라이버 승부에 이기기 위해서는 만약 실수하거나 거리가 짧게 나면 공을 몇 개라도 더 놓고 다시 쳐서 악착 같이 목표를 달성한다며, 이제 이 정도는 좀 봐줘야 할 나이 아닌가. 밝게 웃으시며 촌철살인 조크를 하여 좌중을 폭소, 그야말로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묘기대행진처럼 94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천재나 신동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축하객 소개와 과거의 에피소드를 열변으로 들려 주시던 권 고문은 참석한 연예인들도 자세히 소개했다. 한국의 톱스타 최고의 인기가수 요즘 가요제에 심사위원장을 전담하는 남진! 미녀 가수로 우리 행사에 자주 나와 아끼지 않고 봉사해 주는 마음씨 착한 최유나! 세계적인 사회자 김대중 대통령 성대모사의 일인자 정치개그의 달인…, 하고는 말이 끊겼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안타까웠다. 일반인 같았으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잠시 침묵이 었었고 축하객은 애가 탔다. 다시 말이 이어졌다. 엄영수 동지! 바로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박수가 두 배 새 배로 터져나왔다. 다 기억하셨는데 내 이름을 순간적으로 잊으셨다. 내 차례에서만 문제가 생겼다. 엄영수가 끼어서 사고가 터진 것이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문제는 아니다. 사실 지극히 정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쉬웠다. 내가 송해 선생이나 나훈아 였으면 잊지 않고 바로 기억하실 건데…. 만약 다른 사람이 MC 였으면 이런 사태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 않았나!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권 고문님께 죄송했다. 아직 내가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더 부지런히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인생스토리를 들으면서 모든 참석자가 감동 받았으며 고문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충만하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배울점이 많은 이 나라 어르신의 인간적인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권노갑 고문님 만수무강 하십시오. 95회 생신 축하연에는 반드시 대스타가 되어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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