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박목월은 뜨거운 믿음가진 신앙 시인”
고 박목월 시인의 외손자 김준철 집사는 할아버지의 신앙시를 더 배우고 또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고 박목월 시인의 딸 박동명 권사와 외손자 김준철 집사.
믿음의 일꾼과 건강한 사역지를 찾아서 /10. 박목월 시인 외손자 ‘나무달’대표 김준철 집사
어머니와 함께 남가주 거주
“그는 문학과 신앙의 롤모델
신앙시 더 많이 전하고 싶어”
한국 기독교 문단은 아쉬움이 많다. 기독교 영향 하에서 쓰인 작품의 양은 적지 않은데, 문학적 혹은 신앙적 수준을 아쉽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기독교 신앙시 분야는 양도 질도 미흡하다. 천주교에서는 이해인, 구상, 김남조, 유안진, 정호승 등 다수의 시인이 있다.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목회자 시인 고훈, 용혜원 등과 윤동주, 김희승, 박목월 등이다.
신앙시인으로 박목월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그는 신앙시를 그의 인생 말년에 집중되어 썼고, 박목월의 사후에 유작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에 주로 담겨 있다. 그러나 박목월의 신앙시를 관심 있게 살펴본 사람이라면 신앙고백에 가까운 그의 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성경의 언어를 그대로 시에 담기도 하고 시어로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언어로 신앙고백을 쏟아낸다.
1978년 장로가 된 직후 소천한 박목월의 딸과 외손자가 남가주에 있다. 박목월의 딸 박동명 권사(미주평안교회/임승진목사)와 아들 김준철 집사(새생명비전교회/강준민목사)는 박목월의 문학과 신앙을 추억하며 살고 있다. 외할아버지 사랑을 받고 자란 김준철 집사는 등단한 시인이다.
박동명 권사는 유명한 시인의 딸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버지에 비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고, 아버지와 달리 미술을 공부해 미대를 졸업했다. 그러나 아버지 박목월이 성령을 받고 눈물로 찬송하며 기도하던 날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성령의 불을 받고 뜨겁게 살던 날에 찬송가 '성자의 귀한 몸'을 부르시던 아버지 박목월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김준철 집사는 외할아버지가 어린 아이처럼 꺼이 꺼이 우시던 모습을 기억한다. 외할아버지가 인생 말년에 뜨거운 은혜를 체험하고 눈물로 기도하시며 신앙시를 쓰셨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이제야 깨닫고 할아버지의 문학과 더불어 신앙을 본받기를 사모한다.
김준철 집사는 문예창작과에서 문학 수업을 했고 시인으로 등단했다. 문단에 등단하자 마자 미국으로 건너와 남가주에서 문학 활동을 열심히 했다. 자연스럽게 몇 권의 시집을 출판해 사랑도 받았고, 시문학 교실이나 문학 강좌를 개설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보람도 많았지만 여러 제약 사항이 많았고,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할아버지 문학정신을 담아 내기 위해 ‘나무달’이라는 문화예술재단을 세웠다. 나름 외할아버지의 문학과 삶을 기리려고 노력하며 출판, 문학 강좌 개설, 문화 예술상도 제정했다. 김준철 시인은 지금까지 수많은 시인을 만나며 할아버지 얘기를 들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할아버지와 인연을 자랑했고,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나 문단 후배와 제자들을 챙겨 주신 박목월 선생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최근에 할아버지 박목월이 신앙 시인이었다는 것을 동시에 들었다. 어느 문학 선배가 전해 주었고, 남가주의 어느 목사도 신앙시인 박목월을 알려 주었다. 할아버지 박목월이 시인으로 본받고 싶은 거목(木)이었는데 신앙인으로도 본받고 싶은 달(月)같은 존재가 되었다. 김준철 집사는 신앙시인 박목월을 새롭게 만나니 할아버지의 신앙시를 더 배우고 또 전하고 싶은 생각에 맘이 바쁘다. 박목월의 신앙시를 전하는 손자 시인 김준철의 모습이 기대된다.
강훈 종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