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수의 코미디 40년 연예비사<7>
2일(한국시간)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고 서세원님의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영결식장에서 코미디언 심형래씨와 함께. 고 서세원님과 방송하던 모습.(위에서부터)
서세원의 당신 실수한 거야!
1981년 6월에 개그맨이 되어 MBC 청춘만세에서 서세원, 김병조, 고영수 선배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서세원과는 매주 아이디어 회의와 같은 코너 녹화를 했고 밤무대로 전국에 공연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서세원 한남동 집에 자주 들리게 되었다.
서정희는 어떤 사람일까. 잠시라도 쉬는 법이 없다 무엇인가 늘 일을 한다. 정리정돈을 하고 쓸고 닦고, 광을 내고 청소부나 다름없이 하루종일 청소를 한다. 모든 물건을 그냥 놓아두는 게 아니다. 받침대를 설치하든지 덮개를 씌운다. 오늘은 이 방향으로 가구를 배치하고 내일은 또 다른 방향으로 놓고 계속 변화를 주고 무엇인가 새롭게 꾸민다.
살림꾼 서정희 차량관리는 또 어떤가? 영하 13도 추운 겨울날이었다. 펄펄 끓는 물을 아파트 주차장에 갖고 내려가 뿌려대며 손세차를 하는데 얼음이 얼어 달라붙는다. 잘 닦일 것 같지만 닦으면 닦을수록 얼음이 계속 달라 붙는다. 나중에는 차가 얼음덩어리로 뒤덮인다. 세차비를 아끼려고 애쓴다. 차에 잠시라도 먼지가 있어서는 안된단다. 그에 못지 않게 서세원도 열심히 웃겼다. 부지런히 온천지를 뛰었다. 2년이 못되어서 나는 MBC청춘만세에서 쫓겨났고 KBS로 스카웃되었다. 서세원과는 여기까지가 코미디 인연의 전부였다.
1980년대 초였었나? 정윤희와 서세원이 데이트 하는 걸 봤다.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다. 몰래 만나는 것을 목격했다. 제보가 신문사에 빗발쳤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탤런트이며 영화배우인 정윤희와 개그맨으로 날로 인기가 치솟고 있는 서세원이 연인사이가 된다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빅뉴스, 초대박 사건이 아니라 대형사고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신문기자는 사실확인에 들어갔다. 서세원은 평소처럼 하던대로 했다. 이말 저말 설레발치며 앞뒤가 안맞는 말을 횡설수설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마치 들켜서 사실을 은폐하려고 둘러대는 식으로 헛점을 보였다. 나도 들었지만 정리가 안된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변명도 설명도 아니다. 거짓도 진실도 아니었다. 장난기에 기자가 넘어갔지 않았겠나? 서세원, 정윤희 열애설이 퍼지면서 정윤희 측에서는 우리는 서세원 자체를 모른다. 만난 적도 없다, 책임을 묻겠다며 반발했다.
사실 무근 가짜뉴스였다. 왜 이런 착각을 했을까? 서정희 정윤희는 미인이다. 흑백TV로 정윤희를 봤던 사람들이 스치듯 지나가는 서정희를 봤다면 정윤희로 착각할 수 있었겠다. 동의한다. 일단 서세원은 익히 안다. 미모의 여성을 만난다면 이는 분명 방송연기자 일것이라고 예단할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아직 서정희는 이름도 얼굴도 많이 알려져 있지않을 때였기에 사람들은 쉽게 정윤희라고 믿는다. 사람이 사람의 인상을 각인시키는 것은 3초 만에 결정이 난다고 하는데 서세원이 일반인에게 서정희와 다니면서 3초 이상의 긴 시간을 방치하리만큼 주의력이 없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이 역시 동의한다. 이 기사는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었고, 양쪽에 큰 피해는 없었다.
어느 날 MBC 개그맨 연습실에 담당PD가 신문을 들고 들어왔다. “세원아 내가 볼링을 시켜주면 한 달은 가야지 또 사고를 쳤나? 너 이러다가는 그냥 간다. 내가 오늘 보내줄까?”라고 이야기했다. 스포츠신문의 내용은 서세원, 서정희 동거설에 관한 기사였다. 서세원의 매니저가 거금을 달라고 협박하여 들어주지 않았더니 기자에게 발설하여 보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거라는 단어가 나오면 사람들은 흥분한다. 한마디씩 못해서 안달이다. 사회악, 특정범죄, 강력범죄를 발견한 냥 난리를 친다. 어떤 만남은 꼭 관계가 수상하다고 표현하는데 수상하다면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을 위반했단 말인가? 우리 생활에 늘 있어도 별 일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왜들 그러나? 내가 못하니까 질투를 하는 것이다. 내 능력은 반성 안하고 남을 저주하는 것이 정상인가? 80년대 그때의 사회는 그랬다.
일단 기사가 뜨면 신문이 문제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는다. 따져 볼 겨를이 없다. 내일 또 다시 뜨는 기사를 막아야 한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연기자를 프로그램에서 자르는 것이다. 도중하차라고 하지만 강제추방이다. 방송국은 항상 대중으로 핑계를 댄다. 연기자는 명심해야 한다. 대중은 항상 옳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함량이 안되는 사람을 밀어서 스타를 만들기도 하고, 멀쩡한 스타를 하루아침에 끌어내려 바보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대중은 옳다. 대중은 책임이 없다. 대중의 뜻에 따라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결국 대중에 의해 사육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서세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임예진, 이택림이 MC인 영11에서 “예진이 이리와봐, 예진이는 참 아름드러워 너무 아름드럽다.” 영11 젊은이들은 폭소만발 탄성을 울렸다. 역시 서세원 다웠다. 아름다워+더럽다 = 아름드럽다. 서세원 특유의 감각이 묻어나는 단어를 개발한 것이다. 오랫동안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한 결과다.
이러한 발상이 누구에게나 즉흥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구봉서 선생은 코미디계의 최고 인기인이며 최장 어른이시다. 수십년 연기를 해오신 백전노장 원로선배이신데 이 앞에서 감히 새까만 초년생 후배가 “당신 지금 실수한거야, 왜 하는거야. 어따대고 하는거야. 또 하는거야. 몰라잉. 나 지금 왜그래 잉. 대단히 실례했시며~ 밉지 않게 치고 빠지는 기법 전혀 무례한 것 같지 않은 재미있게 넘어가는 기술은 수 많은 작품을 보고 듣고 은연 중에 몸에 베인 연기력 덕분이다.
무대에 등장할 때 등장인물은 물론 긴장하지만 관객들도 누가 무엇을 할지 궁금하다. 그래서 무대가 열리면 잠시 침묵이 생긴다. 바로 그 때 이 긴장을 푸는 비법도 가지고 있다. 별 것도 아니지만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가 중요하다. 흰 종이를 잘게 찢어서 갖고 있다가 무대에 조명이 비춰질 때 머리 위에 하얗게 뿌리며 나타난다. 꽃잎이 흩날리 듯 흰눈이 내리 듯 보이면서 박수와 함성, 관심 집중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무대를 주도한다.
서세원은 코미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서세원 토크쇼의 성공은 방송사가 앞다투어 토크쇼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토크쇼 하면 과거에는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학자, 의사, 박사, 변호사, 유명인사 주제와 맞는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짜여진 틀에 껴맞춰서 뻔한 얘기를 하니 재미가 없고 자기 자랑 일색에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니 짜증이 났다. 그 결과는 실패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서세원은 달랐다. 대담자를 놓고 쇼를 하는 것이다. 치고 빠지고 들고 쑤시고 좌충우돌 확실히 재미있다. 무리할 때도 있지만 맥을 제대로 짚고 간다. 난감한 질문을 던져 당황하게도 하고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상대방의 아픈 곳을 건드린다. 한국 토크쇼의 방향을 새롭게 했다. 개그맨은 방송국에서 오랫동안 아마추어 취급을 받았다.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지만 무언가 1% 부족했다. 개그맨 애들이란 명칭으로 불려졌다. 아마추어 출연료에 불과했던 대우를 받았고 18등급 중 최저등급인 18등급으로 시작해서 1년에 겨우 한 등급 정도 올라갈 뿐이었다. PD로부터 출연 선택을 받으려고 방송국을 기웃거린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웃음의 보조역할에서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1979년 선발된 TBC 1기인 서세원은 인기를 등에 업고 고액의 출연료를 요구했다. 프로로서 당당하게 입지를 다졌다. 개그맨의 중요성을 방송국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도적으로 개그맨을 선발하는 대회도 열게 되고 개그맨실도 따로 만들게 된다. 리포터로 패널로 초대손님으로 진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개그의 지평을 넓히고 한 차원 신분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공중파, 지상파를 막론하고 예능프로 중요한 토크쇼는 거의 개그맨들의 사회로 진행되고 있다. 다 저 잘나서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서세원이 그 토대를 닦았다. 아나운서, 전문사회자, 방송 프리랜서들의 몫이었던 MC를 개그맨을 쓰니 새롭고 재미있고 고정관념을 깨고 신선한 웃음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모든 프로에서 개그맨을 앞세워 성공했다.
서세원은 스피드광이다. 서울서 익산까지 1시간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시속 180~190km, 차량이 뜸한 심야의 일이었다. 말도 빠르다. 쏟아붓는다. 생각도 행동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리고 너무 빨리 가버렸다. 말리지도 못한 우리는 무엇을 했나 미안하다 친구! 그대의 귀한 충고 고맙네. 죽는 날까지 새기며 살겠네 '당신 실수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