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주방 혁신과 미네르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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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주방 혁신과 미네르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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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가수 윤수일이 부른 노래 ‘아파트’가 히트하던 시절, 신문광고에 ‘ㅇㅇ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 오픈’이라는 내용이 많았다. 모델하우스는 건설사들이 대부분 도심지 교통이 편리한 역세권 주변 공터에다 목재를 이용해 짓는 임시 건물이다. 당시 한 달 가량의 급박한 기간 내 끝내야 하는 모델하우스 현장에 참여한 적이 있던 필자도 그래서 가끔은 밤 새워 일할 때가 많았다. 모델하우스가 완공되면 개장 첫 날부터 방문객들이 유독 많이 둘러보는 곳이 있었다. 주방(廚房)이다. 특히 주부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두툼한 분양안내 카탈로그 앞 부분에는 으레 주방 내 공간배치와 구조 평면도, 수납장, 장점 등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때마다 페이지 상단에 큼직한 글씨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안내 문구(文句)가 있었다. "주방가구는 한샘으로 합니다." 그만큼 주부들에게 신뢰받는 인기품목이 한샘 주방가구였다. 당시 한샘은 주부들을 ‘재래식 부엌에서 과학적인 입식주방(立式廚房)’으로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부엌'이라는 명칭을 ‘주방’으로 바꿔 말하기 시작한 것도  ‘한샘 주방가구’에서 비롯됐다.  


최근 한샘의 조창걸 회장이 '한국판 미네르바대학'을 설립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는 40여 년 전, 200만원 자본금으로 동네골목에 조그마한 주방가구회사 ‘한샘’을 창업했다. 그 후 평생 일궈낸 자신의 회사 매각대금 3000억원을 쾌척해 새로운 학풍(學風)의 한국판 미네르바대학을 설립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미국에서도 대학과 관련해 발표되는 것이 있다. 대학랭킹과 대졸자들의 취업시 전공분야별 연봉순위다. 금년에도 아이비리그를 중심으로 해마다 거의 같은 그룹의 대학들이 상위권에 포함됐다. 오랜 전통과 캠퍼스를 지닌 학교들이다. 그런데 상위랭킹에도 없고 캠퍼스도 없는 대학 중 주목을 받는 학교가 있다. '미네르바스쿨'이다. 이 학교는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보다 들어가기 힘든 입학 경쟁률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미네르바스쿨은 기존 대학과 모든 면에서 다르다. 학생들은 별도의 캠퍼스 없이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듣는다. 대신 학생들은 학기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가령 1학년 때는 샌프란시스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그 후로는 영국·독일·아르헨티나 등을 돌아다니며 현지에서 봉사활동, 산학협력, 지방자치단체 및 비정부기구(NGO)와 공동 과제 수행 등을 경험한다. 한국 역시 아시아권을 대표해 글로벌 캠퍼스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 도대체 뭐가 다른 대학인가 궁굼하던 차에 월간조선에 실린 한국인 재학생 ‘임하영’군의 인터뷰 기사를 볼 수 있었다.


미네르바스쿨의 경우, 지난 2020년 가을학기에는 180개국에서 2만5000명이 지원해서 45개국 출신 200명이 합격했다. 그 가운데에는 한국인 3명도 합격했는데 그 중 한 명이 23세의 ‘임하영’군이다. 합격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학교생활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임 군은 입학 후 샌프랜시스코에서 신입생으로 1년을 보낸 뒤 지난 9월부터서울에 머물면서 학업 중이다. 2학년때는 서울과 인도 하이데라바드, 3학년 때는 베를린과 부에노스아이레스, 4학년때는 런던과 대만 등지에서 공부한다. 4년간 7개 도시를 옮겨 다니는 셈이다.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각 도시에 기숙사는 있어도 캠퍼스는 없다. 


임 군의 경험에 의하면 미네르바스쿨에 합격하기까지 세 단계의 지원절차를 거쳤다고 한다. 1단계는 "Who you are", 2단계 "How you think", 3단계 "What you have Achieved" 등의 주제로 자신을 소개했다. 2단계에서는 6개 항목의 시험을 치루는데 Understanding, Reasoning, Creativity, Math, Expression, Writing 등의 평가가 따른다고 한다. 평소 영어로 자기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고 쓰기 위한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마지막 3단계 시험에서는 SAT 대신에 살면서 본인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성취 4~6가지를 각각 500자 이내로 적어냈다. 본인이 미네르바를 선택한 이유로는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에 대한 욕구와 지금까지 사회를 바꾸는 효과적인 방법이 법과 제도였다면 앞으로는 과학과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이 학교를 지원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앞서 말한 ‘한샘’의 조창걸 회장도 한국판 미네르바대학을 설립하는 데는 그간의 기업경영철학과 함께 남 다른 모국애와 기업의 사회적 환원의 적극적 사랑과 실천에서 비롯되었을 게다. 더불어 그는 인성, 감성, 지성을 갖춘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다방면의 인재를 양성키 위한 큰 그림을 제시했다. “기존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시대변화에 발맞춘 교육이 필요하다.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인 결과물을 끌어내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특히 한반도는 유리그릇보다 취약하다. 지금 대학으로는 인재를 못 키운다. 한국과 밀접한 미·중··러 등지에서 머물면서 배우는 글로벌 리더를 키우겠다”는 의지도 내놓았다. 멋진 회장님의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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