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칼럼] 선진국은 개뿔, 아직 멀었다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로컬뉴스

[김동률 칼럼] 선진국은 개뿔, 아직 멀었다

웹마스터

그제 코로나 발생 이후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KTX다. 버릇처럼 서울역 2층 로비에서 맥도널드 커피를 사들고 탄다. 진주까지는 꽤 멀다. 고속철도로도 세 시간 조금 더 걸린다. 객차 안은 텅 비었다. 코로나 시국, 육십여명이 타는 객차에 달랑 세 명이다. 커피를 마시며 조간신문을 읽는데 승무원이 다가왔다. 방역당국의 지침이라며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세상에, 이게 상상이 가능한 일인가. 음식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 시간 동안 커피도 못 마시게 하다니.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K방역은 개뿔,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승무원을 탓할 바는 아니다. 거대한 공권력 앞에 방법이 없다. 조용히 화장실에 가 버리고 왔다. 들뜬 마음은 사라지고 기분이 여간 꿀꿀한 게 아니다.  


기차는 한국의 수준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안내방송을 들으면 마치 유치원생 같은 자괴감이 든다. 옆 사람과 얘기할 때는 목소리를 낮춰라, 전화는 진동으로 해라, 통화는 객차 연결 통로를 이용해라 등등 끝이 없다. 코로나 시국에 더 늘었다. 마스크는 코와 입을 완전히 가려쓰라는 것까지. 안내방송은 고압적이다. 승객을 숫제 교양 없는 사람으로 전제하고 가르치려 든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기차의 잔재가 여전하다. 그러나 승객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기차의 고객, 존중의 대상이다. 고객에게 훈계하려는 코레일의 고압적인 태도에 절망감을 느낀다.  


코로나가 한국사람을 산으로 몰아넣었다. 산은 이제 중장년층들의 놀이터다. 주말, 서울 근교 북한, 관악, 청계산은 사람들이 넘친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순례하듯이 오르던 풍경은 더 이상 없다. “그때를 아십니까?” 에서나 볼 수 있다. 그 땐 그랬다. 텐트는 물론이고 담요에다 코펠, 버너, 식재료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랐다. 20Kg쯤 되는 배낭을 메고 깔딱고개니, 눈물고개니 떠들며 밀어주고 당겨주며 올랐다. 지금은 다르다. 야영, 취식이 금지된 지 오래다. 그저 약간의 음식물을 가져 간다. 


그런데 점심 때가 되면 서로 눈치를 살핀다. 들고 온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기가 영 불편하다. 2018년 3월 15일 이후 국내 모든 산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탐방로는 물론이고 대피소에서도 안 된다. 1차 적발되면 5만원, 2차부터 10만원 과태료를 내야 한다. 


문제는 등산객이 가져온 약간의 술조차 마시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산에 올라 목이 마르거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갈 때 약간의 알코올은 적절한 대안이 된다. 그래서 서양의 경우 뒷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포켓 사이즈 위스키가 산행에는 필수품처럼 따라 다닌다. 트레킹 위스키다. 실제로 산에서 음주를 막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금주국가인 무슬림 국가를 제외하곤 없다. 술을 팔지 않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가져온 술까지 못 마시게 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흠뻑 땀을 흘린 뒤 정상에서 마시는 한잔의 술이 목젖을 타고 내릴 때의 짜릿한 기분을. 그러나 이 땅에서 그런 즐거움은 찾기 어렵다. 누군가 포상금을 노리고 신고하면 낭패다. 북한의 주민상호 감시체계와 뭐가 다른 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겨울산행을 가면 막걸리에다 따뜻한 어묵을 파는 좌판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 더 이상 그런 풍경은 보기 어렵다. 


정부당국의 설명은 개그 수준이다. 음주로 인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 개정했다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교통사고가 많으면 차를 타지 말아야 한다. 개탄할 정책이다. 통계를 보더라도 그렇다. 등산 전문지 ‘월간 산’은 환경부를 인용해 최근 6년 동안 국립공원에서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가 모두 64건으로, 국립공원 안전사고의 5%였다고 보도했다. 이 5%를 줄이려고 산행 중 금주령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전체 등산객을 술취해 사고나 치는 미개인으로 취급하는 처사다. 


유학시절 칠년 간 미국에서 살아본 나로서는 두 나라를 비교해 볼 기회가 많다. 한국은 겉으로는 일류 선진국 맞다. 대부분 동감한다. 그러나 속속들이 뜯어보면 아직 멀었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는 철저히 무시된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성과주의와 규제를 우선하는 전체주의적인 행정이 아직도 한국사회를 옥죄고 있다.


c21f737ce6fd4a0074ab4bc2212573a2_1634601830_2987.jpg

김동률 칼럼니스트: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를 졸업했다. 사우스캐롤라이 매체경영학 박사를 했다. KDI 연구위원, 영화진흥위원, EBS 이사, 공기업 경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의 주요 일간지에 기명칼럼을 연재했으며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유려한 문장과 설득력 있는 글로 사랑을 받아 왔다. 그의 에세이는 한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게재됐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