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구독 좀 하려구요, 나이? 102살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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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구독 좀 하려구요, 나이? 102살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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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 옹이 햇볕 잘 드는 거실에서 조선일보를 읽고 있다. /백종인 기자

 

  

LA다운타운 거주 김병훈 최고령 독자

15년째 시니어 아파트 ‘나 홀로 생활’

아침, 저녁 예배… 정신·건강 맑고 분명

실향민 출신 “반공 정신 잊으면 안돼”

명예 독자 위촉… 구독서비스 제공키로


 

며칠 전이다.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났다.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독자서비스부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남혜원 과장이다.


“여보세요. 조선일보입니다.” (남 과장)

“예, 조선일보지요? 구독신청 좀 하려구요.” (독자)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성함하고, 배달 받으실 곳 주소,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남)

“LA 살아요. 주소는 XXXX, 전화번호 △△△예요.” (독자)

“선생님, 구독료는 6개월이 100달러, 1년은 200달러입니다. 어떻게 하시는 게 편하실까요? 신용카드나 체크 지불 모두 괜찮습니다.” (남)

“아유, 내 나이가 102살이예요. 1년은 어떨 지 모르고, 일단 6개월씩 하는 걸로….” (구독)

“네? 아이구, 102세시라구요?” 남 과장이 깜짝 놀란다. 어느 틈에 근처 직원들도 통화 내용에 귀를 세운다. 사무실이 술렁인다. 여기저기서 감탄사도 들린다. “대단하시네. 저 분. 나가서 취재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영업부서 쪽에서 그런 의견이 나왔다. 아무렴, 왜 아니겠나.


전화로 약속을 잡았다. “김병훈 선생님, 오후 2시쯤 찾아뵙겠습니다.” 주소를 찍어봤다. 다운타운 한복판이다. 교통이 만만치 않다. 일방통행에, 주차도 까다롭다. 30분 이상을 헤맸다. 어렵사리 목적지를 찾았다. 시니어 아파트 건물이다. 8XX호. 출입문은 빼꼼, 열려 있다. 방문자를 위한 배려다.


햇볕이 잘 드는 거실이다. “15년 전에 집사람이 먼저 가고 혼자 지내요.” 크지 않지만, 정갈하게 정돈된 실내다. 102년의 여정이 소개된다.


“내가 1919년 생이예요.” 3.1 만세 운동이 있던 해다. “고향이 평안북도 선천이예요. 해방 이듬해(1946년) 3월에 월남했죠. 줄곧 공무원 생활을 했어요. 재무부 적산관리처에서 일했죠.” 일본인들이 두고 간 건물, 토지 등을 관리하는 업무다.


“아마 그 동안 세워준 학교가 5~6개, 교회는 한 70~80개는 될 거예요.” 적산을 처리하면서 학교나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인허가 업무를 조정했다는 의미다. “알만한 교회나 학교가 있으시냐”고 여쭤봤다. “대광(중고등)학교, 영락교회가 있지요. 한경직 목사님하고 같이 만들었어요. 내가 원로장로까지 지냈죠.”


자칫 실례될 질문이다. “선생님, 그 연세에 신문 구독까지 하시니 대단하시네요. 언뜻 지팡이와 안경이 보인다. 청력은 대화하는 데 별 문제가 없을 정도다.


“내가 젊을 때부터 술 담배를 멀리했어요. 누가 권하면 맥주 한 두 잔 정도?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지요. 28년 전에 큰 아들 초청으로 미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예요. 아침 5시면 일어나서, 6시에 혼자 예배를 봐요. 저녁 6시에 또 한번 기도하고, 8시면 잠자리에 들어요.”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 습관이 몸에 밴 일상이다.


“이 아파트에 산 지도 벌써 25년째 돼요. 아내도 떠나고, 가까운 친구들도 몇 있었어요. 그런데 80 넘으니 하나 둘 가더라고….” 쓸쓸한 표정이 잠시 스친다. “서울 만리동에 살았어요. 거기서 조선일보를 20년 이상 봤죠. LA 와서는 중앙일보를 한 10여년 봤나? 그러다가 조선일보가 여기도 나온다고 하길래 (구독)신청을 했죠.”


그러면서 속내를 비친다. 고향을 잃은 이의 바람이다. “반공 정신을 잊으면 안돼요. 그런 신문이라서 보게 됐지요. 그리고 우리 사위도 여기 글을 써요.” 맏사위가 법무법인 충청의 대표 변호사다. 꽤 알려진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현재는 본지 필진이다.


30분 넘는 대화였다. 중간에 끊긴 적은 없다. 기억은 또렷하고, 의사 전달도 분명했다. 거동에 큰 불편도 없다. 돋보기 도움 없이, 웬만한 독서도 가능해 보인다. 그 건강과 연륜, 특별함에 존경을 담는다. 조선일보LA는 김병훈 옹을 명예 독자로 위촉,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백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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