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한 벌의 치마, 한 시대의 양심

강정실(문학평론가)
세월은 많은 것을 잊게 하지만 어떤 삶은 오히려 우리를 붙잡는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생이 그렇다. 그는 위대한 실학자이기 이전에 시대의 불신 속으로 밀려난 한 인간이었고, 가족과 떨어진 채 18년의 유배를 견뎌야 했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정조가 승하한 뒤 조선은 빠르게 그에게 등을 돌렸다. 서양 학문을 연구했다는 이유, 천주교 신자였던 형제들과 같은 집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죄인이 되었다. 그는 체제를 흔들려 한 적이 없었으나,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결국 순조 원년, 그는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유배란 죄보다 무거운 침묵이었고, 사람과 사회,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한 인간을 격리하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그는 귀양의 본질인 ‘이별’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강진에서의 18년은 길고 가난했다. 종이조차 귀하던 시절, 그는 늘 멀리 있는 가족을 떠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의 아내가 시집올 때 입었던 여섯 폭 다홍치마를 인편에 보내왔다. 세월에 빛바랜 그 치마에는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잊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호소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 천을 받아 든 다산의 가슴은 말없이 젖어 들었을 것이다.
다산은 그 소중한 비단을 잘라 종이를 덧대고 네 권의 하피첩(霞帔帖)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삶의 지침을 전했다. 시집가는 딸에게는 치마폭 위에 매조도(梅鳥圖)를 그리고 직접 시를 지어 보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으나, 가족을 잇는 사랑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고, 부부 사이의 신뢰는 말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절망에 함몰되지 않았다. 유배지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를 비롯해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 과정에서 다산초당이 세워졌고, 지역의 젊은 인재들은 그의 제자가 되어 학문의 꽃을 피웠다.
‘경세유표’는 국가 제도의 전반을 개혁하기 위한 설계도였고, ‘목민심서’는 지방관이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밝힌 실천의 윤리서였다. 이는 유배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한 지식인의 양심의 기록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빠른 성공과 즉각적인 보상에 익숙해진 나머지, 조금의 불편과 기다림조차 실패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관계를 쉽게 끊고 책임을 미루며, 견뎌야 할 자리를 너무 서둘러 떠나고 있지는 않은가.
빛바랜 치마 위에 남겨진 다산의 문장들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을 때조차 끝까지 지켜내야 할 인간의 품격은 무엇인가를. 그는 분노로 시대를 저주하지 않았고, 절망 속에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으며, 끝내 백성을 향한 사랑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평생 붙들었던 한 시대의 양심이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성경의 구절이지만, 그의 삶을 요약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다산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사고와 민본사상의 가치는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어 대한민국 해군의 최신형 호위함 ‘정약용함’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이제 그의 이름을 단 함선이 푸른 망망대해를 항해한다. 한 벌의 치마에서 시작된 사랑과 책임, 긴 유배의 시간을 견뎌낸 양심은 오늘의 바다 위로 이어졌다. 다산 정약용의 삶은 말한다. 시대가 등을 돌릴지라도, 인간은 끝까지 인간다워야 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