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조선 최초의 커피 수입- 1883년 원산항으로 들어온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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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담긴 문화사] 조선 최초의 커피 수입- 1883년 원산항으로 들어온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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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대한민국 최초의 커피 음용은 고종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때는 아관파천으로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896년이었다는 얘기가 오랫동안 커피 상식의 하나였다. 지금도 적지 않은 책이나 언론 기사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근거 없는 가짜뉴스다.


한국에 커피가 공식적으로 수입된 첫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커피가 공식적으로 수입되었다는 첫 기록은 일본 외무성통상국에서 펴낸 <통상휘편通商彙纂> 1883년(명치 16년) 편에 나온다. 당시 한국의 개항장이었던 인천, 부산, 원산항을 통해 들어오고 나간 수출입 물품 목록이 담긴 책이다. 


1883년 상반기, 즉 1월부터 6월 사이 수출입 물품 목록에 커피가 여러 차례 나온다. 원산항으로 커피 1원 69원어치, 물가를 참고하여 추산하면 약 1킬로그램 정도가 들어온 것이다. 당시 커피는 한 잔 만드는데 원두 5그램 정도를 사용했다는 것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약 200잔 정도 만들 소량이었고, 주로 원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883년 하반기에도 원산항으로 24원어치, 약 14킬로그램 가량의 커피 원두가 들어왔다. 거의 3천 잔 정도의 커피를 만들 분량이었다. 1883년 6월 인천항 거주 일본인이 102명이었던 것으로 보면 원산항에 거주하던 일본인도 비슷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 일본인이 마시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이었다. 아직 서양인들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이다. 


그렇다면 이 커피는 어디로 갔을까? 누가 소비하였을까? 당연히 원산 주변의 조선인들에게 판매하였거나, 아니면 원산을 거쳐 대도시 서울이나 평양으로 보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서울로 보내졌다면 1차로 고종 임금이 있는 왕실에 전해졌을 것이다. 1883년에 서울 정동에 미국 공사관이 문을 연 이후 프랑스, 영국 등 서양과 수교를 시작하면서 서양인 접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왕실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고종이나 명성왕후로부터 커피 대접을 받았다는 기록이 다수 존재한다.


서양인 접대를 해야 하는 고위 관료들에게도 커피가 분배되었다. 예를 들면, 1883년 겨울 당시 경기도 관찰사 김홍집이 고종의 초청으로 입국한 미국인 Percival Lowell에게 신상품 커피를 접대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후 1883년 8월에는 인천항으로 50박스, 한자로 50본(本)의 커피가 수입되고, 10월에는 68근 15원 내지 20원어치가 수입되었다. 합하면 1만 잔 정도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원두였다. 이처럼 본격적인 개항과 함께 서양인이 입국하기 시작하는 1883년 무렵부터 개항장으로 신상품 커피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쉽게도 부산항으로 들어온 수입 물품 목록에 커피는 보이지 않는다.


1896년에 있었던 아관파천 13년 전이다. 고종 임금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며 미모의 독일인 여성 손탁으로부터 커피를 배워서 마셨다는 이야기는 추측일 뿐 기록에는 없다. 아쉽지만 기록에 없는 완전한 가짜뉴스다. 


한국은 1880년대에 근대화를 위해 서구의 물품을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서구의 제도를 배우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1899년 봄 서울에는 일본 도쿄보다 먼저 근대적 교통수단인 전차가 개통될 정도였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였다. 커피도 일본과 큰 시차 없이 수입되었고, 최초의 카페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다.


없는 역사를 지어내는 가짜 역사학자도 문제지만, 있는 역사를 찾아내지 못하는 게으른 역사학자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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