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 한복판에 폐자전거 담벼락
버몬트 애비뉴에 위치한 노숙자 ‘자전거 담벼락’, 7개월 째 노숙 중인 모호바드 낫시(왼쪽)씨가 취재 나온 ABC7 기자(오른쪽)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우미정 기자
노숙자촌에 설치 행인들 눈길… 제작자 “여자친구 기리기 위해”
인근 업주들 “행인들에 불안감, 행정력 개입해야” 우려 목소리
LA 한인타운 한복판에 기이한 설치물이 등장해 논란이다. 타운 동쪽 버몬트와 4가 인근의 노숙자 텐트촌에는 자전거 수십대가 담쟁이 덩굴처럼 벽을 타고 쌓여 있어 지나는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제작한 사람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중년의 남성 노숙자다. 자신의 이름을 모호바드 낫시라고 소개한 주인공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며 7개월 전부터 만들었다. 거리에 버려진 것들과 스스로 가져와서 기증(?)한 사람들의 자전거를 하나하나 쌓아 올렸다”며 “쓰레기나 폐품 더미가 아닌 작품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를 취재하던 한 (주류) 방송사 기자가 ‘거리에 있어서 그렇지 박물관에 가져가면 작품이 될 것’이라고 거들자 낫시씨는 “돈 많은 부자가 와서 이걸 좋은 곳에 전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길거리 생활을 하면서 인근 한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작품이 완성되면 맨 위에 ‘K-TOWN’이라는 글자를 붙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당사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우려가 크다. 홈리스들이 일대로 몰려들며 약 50여명이 노숙자촌을 형성하자 인근 업소들은 영업에 지장을 받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400블럭 사우스 버몬트 애비뉴에 위치한 레스토랑 시즐러(Sizzler)의 오스카 베라즈쿠즈 매니저는 “노숙자들이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어 식당 안으로 출입했던 손님들이 나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로 인해 최근 매출이 25% 가량은 줄었다”고 전했다.
설치물과 노숙자촌 건너편에는 한인 업소들이 다수 입주한 쇼핑몰이 위치했다. 이 곳 2층에 위치한 업소의 한인 업주는 “여기서는 홈리스들이 ‘왕’이다”라며 “업소 밖에 설치된 철제 테이블을 1층 아래로 던져 사고를 일으킨 노숙자를 경찰이 수갑을 채워 갔지만, 몇 분도 안 돼 인근 도로변에 내려주는 경우도 봤다”며 눈가리고 아웅식의 단속을 지적했다.
심지어 행패 부리는 노숙자에게 가스총으로 경고한 안전 요원을 경찰이 총으로 제압한 경우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계단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의 용변으로 인한 악취로 고객들이 출입을 꺼리는 경우도 비일비재라는 탄식이다.
인근 업소 미국 야생 산삼(American Wild Ginseng)의 김미영 대표는 “노숙자들이 물이나 음식을 요청하기 위해 종종 찾는다”며 “아직까지 큰 피해는 없지만 이들을 꺼리는 단골 손님들이 줄어들며 매출이 20% 정도 감소했다”고 토로했다.
현장에 취재 나온 ABC7의 스티븐 콜맨 기자는 “자전거 담벼락 취재를 나왔지만 인근 도로변 노숙자 텐트촌 규모에 놀랐다”며 “한인타운 비즈니스 업계에 타격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에 공감했다.
일대 상권에서는 “노숙자 문제가 인도적으로 안타깝기는 하지만 스몰 비즈니스 업주들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라면서 “미관상은 둘째 치고, 자전거 설치물로 인해 행인들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당국의 행정력이 개입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편 설치물의 주인인 낫시씨는 “아직까지 경찰이나 당국의 제재를 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우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