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의 세상읽기] 그림자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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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실의 세상읽기] 그림자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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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씻어내던 어느 오후,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욕실에서 나와 몸을 닦는 순간 잠시 의식을 잃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깨어난 몸을 가누며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스위스 정신과의사이자 호스피스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Elisabeth Kübler-Ross.1926~2004) 말기 환자 500 명을 인터뷰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를 정리했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환자만의 것이 아니라 언젠가 누구나 마주할 여정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당연해야 죽음에 대한 생각은 두려운 , 쓸데없는 ,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 나와는 관계없는 , 재수 없는 것으로만 취급하고 지낸다. 그러다가 어느 갑자기, 준비 상태에서 죽음이라는 무기에 총살당하게 된다. 일로 인해 준비 없는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혼란을 남기게 된다. 때문에 철학자 하이데거는인간은 죽음에 붙여진 존재라고 설파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있다. 이곳에 들어가기 수도원 안에서 말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그러나 수도원에서 한마디는 허락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는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뜻으로, 수도사들은 훈련을 통해 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은 사유를 한다.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도 이렇게 말했다. “네가 태어날 너는 울고, 세상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세상이 울고, 너는 웃을 있도록 살아라.” 죽음을 잊지 않고 삶의 끝을 염두에 두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진실된 삶에 이르게 한다.

기독교는 죽음을 끝이라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죽은 친구 나사로를 보며 눈물 흘리셨지만, 무덤 앞에서 이렇게 외치셨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음은 더는 절망이 아닌, 부활의 문이 되었다. 죽음이 그림자라면, 너머에 있는 빛은 부활이다. 그렇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종말의 준비가 아니라, 오히려 하루를 깊고 충실하게 살아갈 있게 한다.

믿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가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과연 나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고 있는가? 그날이 오면, 담담히 웃을 있을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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