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의 세상 읽기] 생명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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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실의 세상 읽기] 생명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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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실(문학평론가)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사상가이자 작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름, 시인 에머슨의 집에서 3년간 머물면서 초월주의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행동했다.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그는 “삶이 다했을 때, 삶에 대해 후회하지 말자!”라는 결심과 함께 어떠한 사치품과 편의품은 멀리하고 최소한의 것으로 생활할 것으로 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동안의 생활을 청산하고, 1845년 7월 보스턴에서 30여 분의 거리에 있는 호반에 들어가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혼자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이곳에서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내며 그가 느낀 기록을 한 해로 압축하여 사계절의 흐름으로 10년간 수정해, 1854년 ‘월든, 숲 속의 생활’을 발표한다. 그의 산문집에는 “이곳에서 간소하게 더욱 간소하게, 현명한 사람들은 늘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간소하게 생활했다. 나는 인생의 본질적 사실만을 대면하면서, 진지하게 살고 싶어 이곳에 왔다.”라고 썼다. 그가 사색하며 생활했던 통나무집은 100년의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 사라지고, 통나무 기둥 몇 개만 남았다. 1945년 발굴해 지금의 전면에 경계석을 표시하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호숫가 주차장을 벗어나면 그의 저서에 나오는 상세한 묘사대로 재현해 놓은 통나무집이 우뚝 서 있다. 길이 4,5m. 폭 3미터. 높이 2,4m의 규모 안에는 벽난로 하나, 장작을 담는 상자, 침대 하나, 작은 책상, 의자 두세 개 놓을 수 있는 좁은 공간, 오두막집 앞에는 그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오래 전 보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소로우의 ‘월든, 숲 속의 생활’이 인용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의 굴레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숲 속으로 간 것은 삶을 음미하며 살고 싶어서였다. 죽음을 맞이할 때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였다. 인생이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고, 결코 체념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 삶의 정수를 마음껏 빨아 마시며 깊이 있게 살아가고 싶었다.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버리고,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아보고 싶었다”.


 예수님께서는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성전(聖殿)에 대해 "이 성전을 허십시오. 내가 사흘 동안에 그것을 세우겠습니다."(요2:19)라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왜 하나님이 사시는 성전을 향해 "이 성전을 허십시오"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하나님께서 거주하는 곳엔 예물로 꾸며진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영혼을 말씀하시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성전이라고 말씀하신 이후 비로서 주님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야말로 하나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성전이다.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끔 주변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연의 내면적 소리를 들어보자. 현대를 살아가며 화려한 궁전을 ‘짓기’ 위한 전투를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머무실 수 있는 나만의 생명의 집을 짓기 위한 기도는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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