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신호등] 초대의 손길, 환영의 미소

이보영
미주조선일보 독자부 위원
[관계의 시작]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자리에 ‘초대’를 받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환영’ 을 받으며 살아간다. 반대로 누군가를 ‘초대’ 하기도 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하기도 한다. ‘초대’는 문을 여는 행위이고, 환영은 마음을 여는 행위이다. 초대가 없다면 관계의 시작이 어렵고, 환영이 없다면 그 만남의 자리는 냉냉하게 식어버릴 것이다.
[두 단어 속에 담긴 의미]
초대와 환영, 이 두 단어는 언어적으로도 흥미롭다. ‘초대(招待)’의 한자를 보면 초(招)는 ‘부른다’ 는 뜻이고, 대(待)는 ‘기다린다’ 는 뜻이니 “손님을 오라고 불러 놓고 기다린다” 는 것이다. 영어의 ‘Invitation’ 역시 ‘안으로 불러드리다’ 라는 라틴어 ‘Invitare’ 에서 파생되었다. ‘환영(歡迎)’은 ‘기뻐할 환(歡)’ 과 ‘맞이할 영(迎)’ 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것을 넘어 기쁜 마음으로 맞이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만남은 ‘초대’와 ‘환영’이 함께 이루어 지는 것이다. 초대가 외적(형식적)의 행위라면, 환영은 내적(심리적) 태도라 할 수 있겠다.
[역사적 만남]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종식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미·러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수락하고 알래스카에서의 회담이 성사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앵카리지 북쪽의 ‘앨먼도프-리차드슨’ 공군 기지에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장 중앙에는 레드카펫이 깔렸고 공식 환영 행사가 마련되었다. 잠시 후 전용기에서 내린 푸틴 대통령은 레드카펫 위를 따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가 와 서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역사적 만남의 상징이었고, 온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두 체제의 제스처]
이번 두 정상의 만남은 단순한 의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지구상의 두 체제, 즉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독재 정권 체제의 통치자 간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초청’과 ‘환영’은 대화를 여는 첫걸음이자 평화를 향한 가장 인간적인 제스처다. 서로가 웃으며 맞이하는 인사와 악수의 손길 속에서 우리는 국제 정치의 냉혹한 계산을 넘어, 인류가 함께 지향해야 할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정상 회담의 기대]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전에 이 회담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즉각적인 휴전에 돌파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휴전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실망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또한 이번 회담은 푸틴이 6년만에 미국을 첫 공식 방문히는 중요한 외교 행사였으며, 서방과의 외교관계에 고립상태에 있던 러시아가 서방 세계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기대하게 되었다. 두 정상의 전용차가 각각 대기하고 있었지만, 푸틴은 트럼프의 안내로 트럼프의 전용차에 함께 올랐다. 외교의 관례를 깬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두 사람만의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짧은 중요한 시간의 대화에서 과연 어떤 비밀들이 오갔을까?
[정말 빈손 회담일까]
공식 회담은 약 3시간 정도로 비교적 짧게 종료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We didn’t get there(이룬 것이 없었다)” 라고 결과가 없었음을 솔직히 밝혔다. 기자회견도 회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푸틴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알래스카가 갖는 역사적 의미, 과거의 연합군 전승 이야기, 인류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강조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그는 무역, 디지털, 첨단기술, 우주탐험, 북극개발 등에 미국과 협력하고, 서방과의 관계 복원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회담 자체가 메시지]
푸틴은 회담에 참석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지도자’가 아니라, 세계 최강국 대통령과 대등하게 마주 앉은 모습 자체가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된 것이다. 외교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
[회담이 남긴 교훈]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회담은 성과와 실패라는 단순한 잣대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가능성과 예측만 보여도 좋은 결과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휴전만으로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가 없으며, 시간이 걸려도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만남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니까. 러시아는 군사력으로, 미국은 제재와 동맹 네트워크로 협상력을 쥐려 했지만,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평화를 끌어낼 수 없음을 확인했다. 힘이 정당성을 잃으면 압박으로 남고, 명분이 힘을 잃으면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지속적인 대화와 만남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