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광복 80주년, 한국과 미국이 함께 그리는 자유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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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감성 사이] 광복 80주년, 한국과 미국이 함께 그리는 자유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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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오는 15일은 대한민국의 광복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복(光復)’이라는 말에는 빼앗긴 주권을 되찾았다는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그 이후 자유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의 한국뿐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광복절은 단순히 기념식과 경축사로 끝나는 날이 아니다. 1945년 그날, 서울 거리에 울려 퍼진 ‘애국가’와 만세 함성은 당시 사람들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선물했다. 그 울림은 시간이 흘러도 문화 속에서 되살아난다. 예를 들어,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 콘서트에서는 국악관현악단이 ‘아리랑’을 연주하고, 현대무용단이 그 선율에 맞춰 해방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한다. 젊은 관객들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무대에서 과거를 현재의 감각으로 체험한다. 음악은 역사를 감정의 언어로 번역하는 힘을 지녔다.


한국 사회는 경제력과 K-팝, 영화, 드라마 등 ‘K-컬처’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문화의 영향력이 곧 정신적 독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문화 강국’이 되려면 창작물 속에 자유, 평화,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가 담겨야 한다. 음악이 단순한 히트곡을 넘어 메시지를 품어야 하듯, 국가의 성장도 외형을 넘어 정신을 품어야 한다.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광복절은 ‘조국의 역사’이자 ‘정체성을 확인하는 날’이다. LA, 뉴욕, 시카고 등지의 한인타운에서는 다양한 행사와 기념식이 열린다. 퍼레이드 행렬 속  전통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군무, 그리고 낭독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시 한 편은 먼 조국의 역사를 오늘 이곳의 이야기로 바꾼다. 예를 들어, 한인 청소년들이 윤동주의 ‘서시’를 한국어와 영어로 번갈아 낭독하거나, 재미작가의 단편소설을 무대에서 공연 형식으로 읽어주는 ‘리딩 콘서트’는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민 1세대가 광복을 ‘일제에서의 해방’으로 기억했다면, 2세·3세는 이를 ‘모든 억압과 차별에서의 해방’으로 재해석하며, 미국 내 다른 소수민족과 공감대를 넓힌다.


그림과 시, 소설은 광복의 감정을 가장 깊이 담아내는 도구다. 해방 직후 화가 이쾌대의 ‘군상’ 연작은 환희와 혼란이 뒤섞인 표정을 기록했고, 장욱진의 단순한 선과 색 속 어린아이의 모습은 해방 후의 순수와 희망을 상징했다. 2025년 한국과 미국에서는 광복을 주제로 한 전시가 활발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특별전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초상화와 해방 직후의 풍경을 현대 작가들이 재해석한 작품이 나란히 걸린다. 그리고 뉴욕 퀸즈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는, 한인과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이 ‘자유’를 주제로 회화·사진·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LA 한인타운의  갤러리에서도 청소년 예술가들이 만든 광복절 포스터와 시화(詩畫)가 전시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광복의 의미를 젊은 세대에게 전하려면, 교실 속 ‘연표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생들이 직접 광복절 포스터를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편지를 낭독하며,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을 써보게 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광복절을 맞아 ‘역사·예술 통합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VR로 독립운동 현장을 체험한 뒤, 느낀 점을 시로 쓰고 이를 미술작품으로 표현한다. 미국의 한국학교 등에서는 8월마다 관련 특별 프로그램들이 열린다. 어린이들은 태극기를 직접 그리고, 한국 전통 민요를 배우며,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영어로 재구성해 발표한다. 이렇게 문화와 예술을 곁들인 교육은 ‘광복’이라는 단어를 생생하게 각인시킨다.


2025년의 한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 산업 구조 전환, 인구 감소, 기후 위기라는 복합 도전에 직면했고, 미국도 여러가지 어려운 현실과 도전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두 사회 모두,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문화·예술·교육은 이 책임을 즐겁고 지속 가능하게 전하는 매개다. 노래하고, 그리고, 쓰면서 자유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과정이 바로 광복의 현대적 실천이다.


2025년 광복절은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날이다. 서울의 거리에서, LA의 무대에서, 그리고 학생들의 스케치북과 악보, 노트 속에서 자유의 이야기가 계속 써지고 있다면, 광복은 결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노래와 그림, 문장 속에 살아 숨 쉬는 광복은 세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우리 모두의 내일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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