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시니어] “속사포 개그의 달인이 바로 나, 엄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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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시니어] “속사포 개그의 달인이 바로 나, 엄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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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코미디협회 회장 희극인 엄영수

 

전(前) 한국방송코미디협회엄영수회장(73). 그의 개명 전 이름은 엄용수(嚴龍洙).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1978년 TBC라디오방송 ‘노래하는 곳에’로 데뷔했다. 1981년 MBC 제1기 개그맨 콘테스트에 출전, 금상으로 입상했지만 대부분의 활동은 KBS에서 했다. 콩트코너인 '하룡서당'에서 학동역으로 나오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훈장역 임하룡이학동 엄영수에게 질문을 하면 숨 쉴틈도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정작 정답을 맞추지 못해 웃음을 유발하는 식으로 이 연기를 통해 그는 ‘속사포 개그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0년대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우뢰매’ 시리즈의 엄박사역으로 영화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삼혼’(三婚)을 통해 미국으로 장가를 와 ‘LA의 사위’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속사포 개그와 시사코미디의 원조

엄전회장이 ‘속사포 개그’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국의 개그를 한 단계 격상시킨 뚜렷한 업적이 있다. 지금은 작고한 김형곤과 함께 정치풍자 코미디의 지평을 열었다. 특히 시청자들이 인상 깊어했던 ‘3김성대모사’는 지금까지도 각종행사와 방송에서 단골레퍼토리다. 한국에서는 불모지와도 같았던 시사 정치 코미디를 통해 시대를 읽어 내는 개그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성인용 본격 스탠딩 코미디를 시도했던 것도 그였고 모창의 달인으로 배호, 조영남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높은 싱크로율로 불렀다. 이름을 개명하게 된 계기는 사람들의 발음이 ‘엄영수’로 들려서 팬 서비스 차원에서 바꾸게 되었다고. 활발한 방송 활동은 물론 군기가 빡세던 과거 코미디언계에서 후배들에게 잘 대해 줘서 '미담이 많은 선배'로 통해 후배들의 프로그램에 빈번하게 출연 섭외가 들어오는 몇 안되는 개그맨 중 한 사람이다. 물론 천성이 워낙 선하다 보니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어서 ‘대표적 코미디언 호구’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돈을 잘 빌려 주었는가 하면 사재를 털어가며 장기간 동안 한국방송 3사인 KBS· SBS· MBC의 코미디협회 회장을 두루 역임하기도했다.

 

#. 인생의 히로애락이 모두 성공

그는 늘 “실패도 이유가 있다. 아름다운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성공이라고 본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결국은 모두 성공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긍정적 에너지가 최대 자산. 오랜 희극인 생활을 통해 터득한 인생의 경험이 묻어난 이야기이기도 하다. 코미디속 개그맨들은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이기 보다 망가진 모습을 보여서라도 대중을 웃겨야 하니 인생의 소소한 ‘희로애락’은 무대에서의 자신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대중을 웃기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생각만으로도 오늘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다고 믿는 엄 전회장은 항상 긍정적 에너지를 나눠준다.  ‘LA의 사위’가 된 지금, 그의 미국에서의 계획은 다양하다. 우선 자신의 책, ‘연예비사, 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코미디쇼를 겸한 출판기념회를 비롯, 8월 초에는 절친이자 개그맨 동료이며 현존하는 현역 변사인 최영준과 무성영화 변사극인 ‘홍도야 우지마라’상영회의 일정이 잡혀 있다. 특히 북 콘서트의 경우 LA를 시작으로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애틀랜타 등을 두루 돌면서 자선공연, 무료공연, 단체위문공연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있다. 영원한 현역 개그맨으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되며 이를 통해 꿈과 희망, 위로를 선사한다는 계획이다.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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