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불확실한 시대의 한인 경제와 문화적 해법
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로스앤젤레스 미드윌셔에 위치한 아카데미뮤지엄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특별전시 ‘봉준호의 세계(Bong Joon-ho: The Art of Vision)’가 한창이다. <기생충>의 황홀한 계단 구조, <살인의 추억>의 끝없는 장마, <괴물>의 한강변까지 — 관람객은 봉준호라는 창조자의 렌즈를 따라, 한국 사회의 층위와 세계적 공감을 오가는 감정의 서사를 경험한다. 이 전시는 단순히 한 영화인의 발자취가 아니다. 한국 문화가 LA 한복판에서 세계 시민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이민자 공동체가 지닌 문화 자산의 경제적 가치를 일깨워주는 계기다.
최근 미국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연방 기준금리는 여전히 5% 이상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은 목표치를 웃돈다. 소비는 위축되고 자영업자들의 운영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와 LA 지역은 이민자 단속 강화로 한인 상공인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주방, 창고, 배송 등 이민자 노동력에 의존하던 업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이는 고스란히 매출 저하와 서비스 축소로 이어진다. 여기에 2026년 월드컵과 2028년 LA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단속과 위생 규제가 강화되면서 한인 자영업자들은 또 하나의 압박을 마주한다.
그러나, 이 시간을 단순히 생존의 시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서사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그랬듯, 한인 커뮤니티도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고, 위기 속에서 창조성을 발휘할 때다.
문화는 곧 브랜드다. <기생충>이 전 세계에서 2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며 한국 영화·음식·디자인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 서사의 힘 때문이다. 이제 지역 상공인도 문화적 사고의 확장성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성적 경험을 줄 것인가”가 핵심이다. 작은 식당의 메뉴 문구나 조명 톤, 마트의 진열 방식에서도 ‘한인 문화의 생활성’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 거점이 될 수 있다.
다가올 세계 스포츠 이벤트는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라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인 커뮤니티가 준비할 수 있는 문화 행사, 지역 역사 알리기, 한식과 K-콘텐츠를 연결한 마이크로 브랜드 마켓 등은 단순한 부스를 넘어 스토리텔링 기반의 경제활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소속감을 자극하는 서사다. 지역 주민, 관광객, 타민족 소비자가 “이 공간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 문화는 바로 그런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이민자 커뮤니티는 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왔다. 신분 불안정, 언 장벽, 제도적 차별 속에서도 끈질기게 생존했고, 때로는 가장 빛나는 문화적 혁신을 만들어냈다.
지금 한인 상공인들은 단순히 “잘 버티는 것”을 넘어야 한다. 문화를 통해 정체성을 확장하고, 브랜드를 통해 경제적 주체로 거듭나며, 위기 속 감정을 다루는 섬세함으로 시대를 리드해야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그랬듯, 가장 치열한 현실 속에서도 가장 깊은 공감은 문화에서 나온다. 그 공감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브랜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