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요양병원 외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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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 요양병원 외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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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빈

임영빈 내과 원장


노년내과 전문의는 의사 역할만 하지 못 한다. 치매 어르신이 진료실에서 정확하게 표현을 못 하시고, 최근 일을 기억을 못 하시니, 사회복지사처럼 가족에게 연락해야 한다. 무릎이 아프신 분에게 "운동하세요"라는 잔소리보다, 물리치료사처럼 장비를 가지고 다니며 운동을 같이 진료실에서 해야 한다. 이렇게 진료실에서의 역할이 단순한 ‘의료서비스’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짧디짧은 진료시간과 많은 환자 수는 한 분 한 분을 제대로 보살피기에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진심으로 다가갈 수록 더 큰 소진이 찾아온다. 그래서 노년내과 전문의에게는 언제나 함께 일 할 좋은 팀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도 양로병원에서 이런 팀의 소중함을 느낀다. 헌신적인 간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이 어르신 한 분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주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양로병원이나 요양시설을 ‘가면 끝’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다. 어르신과 가족 모두가 원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돌봄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마지막 선택지처럼 내몰리곤 한다. 그러면 어떻게 연로한 어르신들을 팀으로 포괄적으로 돌보지만, 요양병원으로 모시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스탠퍼드 노년내과 전문의 과정 시절,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대안으로 PACE라는 아름다운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PACE는 말 그대로 ‘포괄적 노인의료 서비스(Program of All-Inclusive Care for the Elderly)’를 한 곳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어르신들은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치과의사, 검안의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한 팀이 되어 돌본다. 감기 같은 사소한 문제든, 낙상 위험 같은 큰 문제든 의료진이 상주하니 언제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운동이 필요하면 오랫동안 환자의 몸을 잘 아는 물리치료사가 바로 옆에서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의료만이 아니다. 사회복지 서비스, 영양상담, 약물관리, 치과치료까지 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어르신 한 분을 위해 여러 직종이 정보를 공유하고 계획을 세우며 움직이는, 진정한 의미의 ‘팀 기반’ 돌봄이다. 결국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어르신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않고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게 돕는 데 있다.


사실 PACE의 뿌리는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중국계 이민자 사회에서 시작됐다.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보내기 싫은 마음이 모여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나는 그 마음이 우리 한인사회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퇴원을 앞둔 어르신이 “나 요양병원은 싫다” 하시고, 자녀들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녀들은 낮 동안 일해야 하고, 아이들 학교도 챙겨야 한다. 간병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이런 모델이 필요했다. 어르신이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돕되,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의료와 돌봄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이. 의료인이 혼자서 다 할 수 없고, 가족만의 책임으로도 버거운 문제를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한다. 노인의료는 한 사람의 의사만으로는 부족하다. 팀이 필요하다. 그리고 팀이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설계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PACE는 바로 그런 모델을 제시한다. 앞으로 우리가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이런 통합적 돌봄을 더 많은 어르신에게, 더 많은 지역사회에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문의 (213) 909-9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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