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예술로 기억하는 6·25 — 전쟁, 상처, 그리고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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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감성 사이] 예술로 기억하는 6·25 — 전쟁, 상처, 그리고 헌신

웹마스터

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6월 25일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날이다. 1950년 시작된 한국전쟁은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수많은 가족을 이산하게 만들었으며, 한반도의 땅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잿더미 속에서도 사람들은 절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고통을 예술과 대중문화로 승화시키며 기억하고, 전하고, 위로하려는 움직임은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예술은 단지 아름다움이나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를 기억하게 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가장 깊은 언어이며, 때로는 가장 정직한 역사이기도 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한국전쟁은 교과서 속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세대다. 그러나, 어린시절, 서울 한복판에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며 흥얼거리던 노래 한 소절을 지금 와서 떠오르면, 그 가사에 새삼 놀라게 된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흐르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그저 리듬이 좋아 아이들과 천진난만하게 불렀던 그 노래의 가사가, 실은 전장의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나면 기분이 묘해진다. 이런 경험은 전쟁의 기억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동요나 유행가가 아니라, 전쟁을 겪은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서 반복되던 집단기억의 단편이자 예술의 역할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음악은 시대의 감정을 가장 빠르게 담아내는 예술이다. 전쟁 중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절한 마음을 노래한 곡들, 한국전쟁을 돕기 위해  온 서방국들의 영향으로 유행한 재즈 등은 우울한 정서를 감싸 안으며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국외에서는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종교적 장엄함과 반전 메시지를 결합한 이 곡은, 한국전쟁을 포함한 모든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끌어낸다.  


미술 역시 전쟁의 상처를 형상화하며 강한 생명력을 드러냈다. 이중섭 화백은 피난지였던 제주도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시대의 아픔을 은박지에 새긴 ‘은지화’로 표현했고, <흰 소>, <아이를 업은 어머니> 같은 작품에서는 전쟁이 남긴 상처와 인간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냈다. 국외에서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전쟁의 공포와 인간성의 파괴를 고발하며, 오늘날까지 반전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문학은 시대의 고통을 언어로 기록했으며. 황순원의 <소나기>는 전쟁을 직접 묘사하지 않지만, 전후의 황폐한 정서 속에서 어린시절의 순수함과 상실감을 대비시키며 깊은 울림을 준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전쟁 후의 혼란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일상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기억을 담담하게 전한다. 해외문학에서도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의 무의미함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한국전쟁과도 깊은 맥락을 공유한다. 


또한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종합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예술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 <웰컴 투 동막골> 등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한국전쟁을 조명하며, 전쟁의 비극성과 인간성 회복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고지전>은 고지 쟁탈전 속에서 희생되는 개인의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미국 영화 <브리지 오브 더 리버 콰이> 역시 한국전쟁을 미국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문화충돌과 전쟁의 복잡성을 함께 조명했다.  영화와함께, 공연예술은 언어를 초월해 전쟁의 감정을 몸짓으로 전달했다. 국립무용단의 <장사리 9.15>는 실화를 바탕으로 학도병들의 희생을 그려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비록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분단과 혼혈 문제 등 한국전쟁과 닮은 아시아의 비극을 서양의 시선으로 재조명했다.


그러나 예술을 통해 기억할 때 반드시 함께 떠올려야 할 이들이 있다. 바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참전용사들이다. 이름 없이 전장에 나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은 오늘 우리가 자유롭게 숨 쉬고 예술을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들의 헌신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이며, 예술이 꿰매는 고통의 실마리이자 진실의 한 조각이다.  한국전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생한 역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술을 통해 그 상처를 마주하고 기억할 때, 그 기억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다음 세대에 전할 교훈이 되며, 평화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6월 25일, 우리는 노래와 그림, 책과 영화, 그리고 무대 위의 몸짓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되새긴다. 그리고 그 기억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다짐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예술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기억을 어떻게 간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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