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시니어] '월남전 참전 60년' ··· 끝나지 않은 전쟁
문세훈 한미월남전 참전 전우 총연 회장은 월남전의 고통과 후유증이 아직도 진행중이기에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규정한다. / 이훈구 기자
문세훈 한미월남전 참전 전우 총연 회장
올해로 한국군 월남 참전 60년이 된다. 월남 패망 50주년과는 다른 의미다. 문세훈 한미월남전 참전 전우 총연 회장(78)이 갖는 감회는 남다르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군 출신 월남 참전 재향군인들의 고통이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전 용사들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트라우마), 공황장애는 물론 고엽제(Agent orange) 피해를 달고 산다. 고엽제를 직접 맞은 이들도 있지만 문 회장처럼 간접적으로 체험(가루 날림으로 인한 오염)한 사람도 말초신경이 마비가 되어 지금도 스마트폰 자판을 손가락으로 누를 수 없고 장거리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다. 직접 피해자들의 경우 대부분 40대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나마 한국 거주 월참전우의 경우에는 나름 처우개선이 이뤄지고 있으나 문제는 미국 거주자들이다. 2023년 마크 타카노 의원의 발의에 의해 미군이든 한국군이든 참전 보훈 혜택을 받게 될 이른바 ‘H.R.366’ 법안에 바이든 전 대통령이 서명을 했지만 한국정부의 공백과 비협조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월남전 후유증 그리고 위암 4기
동국대학교 물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월남전에 자원하였다. 한마디로 ‘젊은 피’가 끓어 올라 1967년부터 69년까지 주월한국군사령부 산하 첩보대에서 첩보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닌호아의 백마 지구대 복무 시절 캄란 지역으로 작전을 나갔는데 베트콩의 수류탄 공격을 받고 후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터라 2km 정도를 정신 없이 뛰다 보니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왼쪽 허벅지에 파편을 맞은 까닭에 피를 많이 흘려 고무 밭에서 실신했을 정도. 극적으로 미군 차량에 발견되어 후송 후 신체적 치료는 받았으나 그때의 트라우마가 남았다. 문 회장은 첩보대에서 근무한 까닭에 월남이 패망할거라는 여러 징후를 발견했다고 했다. 어떤 경우는 한 가족이 100년 동안 청나라, 프랑스, 태평양전쟁 등을 거치면서 100년간 전쟁을 경험한 경우도 있어 어느쪽이든 좋으니 전쟁만 끝내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부정부패가 많았다고 한다. 제대 후 미8군에 취업이 되면서 12년간 미군 부대 내 건축관련 일에 종사하였고 이를 계기로 1982년도에 도미, 이때부터 건축관련 일을 계속 해 나가면서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삶에 눈을 뜨게 되었고 관련 단체들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각혈과 하혈을 하게 되어 내시경 검사를 하니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또 다시 쓰러졌고 ‘굿사마리탄병원’에 응급으로 실려가 재검 후 위암 4기 판정을 받게 된다.
#. 위암의 고통과 건강유지
위암 수술 과정에서 문회장은 위의 80%를 절개했을 뿐만 아니라 담낭(쓸개)을 제거해야 했다. 음식 섭취가 현저하게 줄었다. 당연히 수술 후 초기에는 아예 먹지를 못하니 링거로 버텨냈고 지금도 짜장면 1 그릇을 3-6회 나누어 먹어야 만 한다. 이 과정에서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면역력 부족은 필수. 아무리 암이 전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영양제가 섭취 되지 않으니 조금씩이라도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꾸준히 먹어야 한다. 또한 ‘스트레스’는 암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장애물이다. 문 회장은 항상 밝게 웃으며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해외 거주 참전용사들의 한국 국군묘지 안장 문제와 보훈법 시행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책마련과 협조 그리고 한국군 월남참전 충혼비 건립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경우 지난 2024년에 작고했지만 유골을 집에 모시고 있는 사례까지 존재한다고 하니 그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이 힘들다. 아직도 챙겨야 할 참전 전우들이 많이 생존해 있는 까닭에 문회장은 오늘도 건강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