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간증] 예수 없이 못사는 남자 <12> -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진실하게”
신승훈 목사
주님의 영광교회
#. 자네를 하나님이 부르시네
아프리카에서 나는 여러 면에서 부족했지만 여기 저기 뛰며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점심을 먹다가 머리가 어지럽고 기운이 빠지며 쓰러지게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타가 공인하는 건강이었다. 하루 종일 어지럽더니 그 다음 날도 아침에 일어나니 계속 어지럽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침대에 누워야 했다. 자고 나면 30 분 반짝, 다시 피곤하고, 목욕을 하고 나면 20분 반짝, 다시 피곤하곤 했는데 무슨 까닭인지 몰랐다. 그저 어지럽고 피곤한 날들로 얼마가 지났다. 그러던 중 밤에 잠을 자는데 심장이 이상하게 푸드득거렸다. “이거 왜 이러지?” 하고 아내에게 물었지만 대책이 없었다. 그 날밤 꿈에 돌아가신 장인 어른이 나타나셨다. 그분은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곳에 계셨다. “아버님, 어떻게 하면 거기에 갈 수 있습니까?”하는 나의 질문에 뭐라고 오는 길을 열심히 말씀하시는데 주변의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들리지 않았다. “잘 안 들려요, 다시 말씀해주세요.” 그러나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결국은 장인의 길 안내하시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잠을 깼다. 도대체 이 꿈은 무슨 뜻일까?
#. 눈물로 지새운 회개의 밤
그 다음날 꿈에 다시 장인 어른이 나타나셔서 “자네를 하나님이 부르시네. 올 준비 하게나!” 나는 장인 어른에게 말했다 “아직 제가 이 사역을 좀더 해야 하고 아이들도 어립니다. 아내도 아직은 그렇고, 여러 가지로 제가 지금 천국을 가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아버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거역할 셈인가? 자네는 무슨 주의 종이 그래?” “하나님을 거역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갈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알아서 해 25일이야 25일!” 그러시며 화를 내셨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것은 장인 어른이 아니시고 악한 영이었다. 잠을 깨고 달력을 보니 22일이었다. 25일까지 3일만 더 산다는 이야기인가?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피곤하여 일을 할 수 없었고 머리도 어지러워 나는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심각한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주님, 오라시면 저는 갑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진실하게 일하겠습니다.” 죽음 앞에서 생각하니 나는 자격 없는 못된 남편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부족한 아빠였다. 부모님에게도 너무나 부족한 자식이었다. 유서를 적었다. 모두에게 사과하는 내용뿐이었다. 나는 나 같은 남편이 어디 있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죽음 앞에서는 아니었다. 주님의 일을 한 것도 다 나의 의와 자랑을 위하여 한 것뿐이라고 여겨졌다. 주님 앞에 가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였다. “주님, 말도 안되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정말 잘해보겠습니다. 진실하게 사랑으로 겸손하게 해보겠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자고 있는 아내를 보며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선교지에 따라와서 고생만 하고”. 나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회개했다.
#. “몸바사에 놀러 갑시다”
그 날 아침 문승호 목사라는 선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 목사님, 몸바사에 놀러 갑시다.” 나는 순간, “몸바사에 놀러? 팔자 좋은 소리하고 있네! 남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시간이 없습니다. 그럴 마음도 아니고요” 이렇게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1시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아, 좀 놀러 가자니까요, 돈 없으면 내가 다 댑니다. 갑시다.” 아내가 옆에서 “같이 가서 교제도 하고 좀 쉽시다.” 하고 간청하는 바람에 같이 가기로 할 수 없이 허락을 했다. 가면서 같이 일하던 동역자인 이강호 목사에게 혹시 내가 못 오면 내 편지들을 어디에 두었으니 찾아 아내에게 주라고 말을 했다. 이윽고 24일이 지나고 25일이 왔다. 밤 12시까지 버티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하고 자꾸 잠이 왔다. 저녁 9시경에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을 못하고 그날 밤에 혼자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주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잠이 들고 아침에 눈을 뜨니 26일, 주일이었다. “나 살았네. 안 죽었네!” 순간 나 혼자 감동하고 있었다. 그 날 아침 우리 4명이 예배를 드리는데 나는 설교를 하면서 이제까지의 모든 일을 다 털어놓았다. 그 때 문 목사님이 말했다. 얼마 전 한 선교사님을 돌아가시기 3일전에 뵈었었는데 마치 혼이 나간 사람같이 말하고 행동을 하길래 자신의 아내에게 “저 선교사님 이상하시다. 혼이 나간 사람 같아!”라고 했는데 그로부터 3일 뒤 실제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21일 우연히 나를 만났는데 돌아가신 그 분과 내가 똑같이 혼이 나간 사람으로 보여 자신이 먼저 쉬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는 거였다. 전화를 걸어 놀러 가자는 부탁을 내가 거절을 한 후에 문 목사님 부부는 서로 다투었다고 했다. “놀러 가려면 당신이나 가지, 왜 열심히 일하는 분을 같이 가자고 하는 거에요?” 그래도 문 목사님은 사명으로 알고 다시 내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내가 살던 나이로비는 고산지대로 산소가 부족하다. 반면 바닷가인 몸바사에는 산소가 풍부하다. 쉬며 , 요양하며 나는 10일만에 다시 나이로비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 가불 십일조의 축복?
이후 한국에 있는 집사님과 연락을 했다. 집사람의 친구 남편이고 아프리카를 방문했던 의사 안집사님이 무조건 나오라고 해서 한국으로 가서 진찰을 받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보험이 없어 진찰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양 실조와 갑상선 기능 저하라는 진단이 나왔다. 약을 먹으라고 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머리 속으로 계산을 했는데 교회 신축 공사, 신학교 공사, 학교 공사, 사역 등등해서 약 6 만달러가 필요했다. 몸이 아파서 치료받으러 가는 데 교회에서 선교보고를 할 수도 없고 돈은 어디서 구하나 생각만 했다. 그러던 중에 한국에서 오 집사님을 만났다. “목사님 십일조를 선교비로 드립니다.” 5만달러였다. 너무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아닙니다. 이 만큼 벌게 해달라고 가불 십일조 합니다. 사실은 다 털어서 헌금합니다. 기도 많이 해주세요.” 그 후 8개월 뒤에 오 집사님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목사님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헌금할 것을 그랬어요. 주님이 꼭 10 배를 벌게 해 주셨거든요. 지난 1년 동안 이전 20 년보다 더 많이 벌게 해주셨어요.”하면서 싱글벙글 하는 것이었다.
#. 교회를 개척하라는 감동
한번 망가진 건강은 쉽게 회복되어지지 않았다. 본 교회에서 들어와서 쉬라고 했다. “주님, 안식년이 주님의 뜻이면 세 가정만 보내 주세요” 지난 4년 반 동안 네 가정이 왔는데 아버님은 소천 하셨고, 한 사람은 자신은 선교사로 부름을 받지 않았다고 3 개월 만에 돌아갔다. 한 자매도 6개월만에 돌아갔고 한 가정은 복잡한 도시와 방대한 사역은 자신들에게 안 맞는다며 조용한 시골에 가서 일한다고 탄자니아 구석으로 들어갔다. 그런 선교지에 기적이 일어났다. 1달 동안에 세 가정이 온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안식년을 나왔는데 담임 목사님께서 이곳에 있을 수 있으면 본 교회를 섬기라고 하셨다. 기도했다. 감동이 왔다. “위임 권위에 순종하라.” 남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세 가정의 선교사들은 맡겨준 사역들을 잘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본 교회인 은혜한인교회를 1년 반 동안 부목사로 섬기던 중에 교회를 개척하라는 하나님의 감동이 왔다. 나는 담임 목사님에게 어렵게 말씀을 드렸다. “주님의 감동인 것 같습니다. 3일을 달라고 하시더니 기도하신 김광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주님의 뜻이니 개척을 하되 LA에다 하라”고 말씀 하시며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그래서 1999년 1월 셋째 주일에 10 명의 교인들과 함께 주님의 영광 교회가 시작되었고 주님은 엄청난 은혜와 복을 부어주셨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과 사명을 감당할 일꾼들을 많이 보내주셨다. 첫 해에 이사를 5번을 하게 하셨지만 모든 필요한 물건들을 다 채워주셨다. 첫 해에 무려 1,000명을 보내주셨다. 지금은 200 여명의 선교사와 선교 단체 그리고 100 여명의 현지인 목회자들을 섬기고 있다. 나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는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나는 얼마 전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뭐 잘한다고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은혜 주시나? 우리만큼 헌신 안 한 주의 종은 어디 있나? 그렇다고 우리가 남들보다 신학 공부를 더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기도를 남보다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신앙생활을 더 잘 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모른다. 왜 이런 은혜를 주시는지, 그저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릴뿐이다. 나는 우리 교인들에게 늘 말한다. 나보다 행복한 목사는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다만 한 가지, 은혜를 많이 주신 자에게는 열매를 많이 찾지 않으시겠나 하는 부담에 오늘도 하루를 산다.
#. 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