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감성 사이] 순수한 예술가와 청렴한 교육자 – 사라지는 빛, 지켜야 할 불꽃
김미향
오클렘그룹 대표
예술가와 교육자는 오랫동안 한 사회의 양심이자 정신의 등불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외면과 침묵 속에서도 인간성과 진실을 표현하고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의 화가 이중섭은 전쟁과 결핍 속에서도 가족과 생명의 본질을 화폭에 담았고, 독일의 케테 콜비츠는 전란과 슬픔을 판화로 새기며 사회적 고통을 직시하였다. 이들은 유행이나 상품성과 거리를 두고,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조명하는 행위임을 몸소 실천하였다.
교육자 또한 그러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은 학문이 현실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수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미국의 존 듀이는 교육이란 자율적 사고와 공동체적 삶을 길러내는 경험의 연속이라 강조하였다. 이들에게 있어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고 성장시키는 도덕적 실천이었다.
나 역시 어린시절, 예술가와 교육자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고결한 존재로 배웠다. 부모님은 예술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고귀한 정신을 품고 있는지를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들을 자연스레 마음에 새기며 자라났다. 학교에서는 고전과 위인전, 교육 관련 서적들을 통해 수많은 청렴한 교육자들의 삶과 태도를 접하며, 교육이란 단지 전달이 아닌 헌신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인지 어린시절의 나는, 진정한 예술과 교육은 물질적 보상과는 단절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오히려 순수함은 세속적 조건과 거리를 둘 때 비로소 지켜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성장하며 마주한 현실은 이상과는 사뭇 달랐다. 시대는 더욱 빠르고 실용적으로 변하고 있었으며, 진정성은 때로 '비효율'로, 이상은 '순진함'으로 치부되었다. 진실한 창작이 왜곡되고, 따뜻한 교육이 외면받는 장면들 앞에서 갈등과 혼란은 깊어졌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타협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묻게 되었다.
오늘날 예술과 교육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급변하고 있다. 예술은 점차 소비의 대상이 되었고, 예술가는 생존을 위해 시장과 대중성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한다. 창작의 깊이보다 조회수와 반응이 우선시되고, 진정성은 전략과 포장에 가려지기 일쑤이다. 예술산업은 예술가의 영혼을 보호하기보다는 흥행과 매출에 집중하는 구조로 재편되어 가고 있다. 이럴수록 예술가는 시대를 해석하고 인간의 진실을 성찰하는 본연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하며, 예술산업 역시 창작의 자유와 품격을 보장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교육 또한 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다. 입시와 정량적 평가에 모든 것이 귀속되며, 교사는 점점 행정과 기준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생은 경쟁과 순위로 분류되고, 교실은 공감과 사색의 공간이 아닌 실적 중심의 전장이 되었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은 사람을 이해하고 키워내는 일에 있다. 교육자는 아이의 고유한 가능성을 존중하며, 인간을 위한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교육산업 역시 시스템의 효율성을 넘어서, 윤리성과 공동체적 책임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학생은 단지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사회의 구성원이다.
오늘날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은 예술과 교육의 방식 자체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창작과 가르침조차 생존의 문제로 연결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본질을 되짚어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정교해지더라도 “무엇을 위한 창작인가”,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가”라는 물음은 인간만이 던질 수 있다. 창의성과 공감, 통찰력은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예술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교육자는 누구를 향해 가르치는가. 예술과 교육은 산업적 구조에 포섭되더라도 그 본질의 정신만은 잃지 않아야 하며, 예술산업과 교육산업 역시 그 중심에 인간과 공동체를 둘 수 있는 철학적 기반 위에 서야 한다.
기술과 속도가 지배하는 오늘, 예술과 교육은 여전히 인간다움의 최후 보루로 남아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본질을 성찰하고, 그에 걸맞은 자세를 견지할 때, 우리는 다시금 꺼져가는 불빛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지성적 책임이자 사회적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