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종]축구·탱고에 열광…소수자·약자에 입맞추고 떠나

2019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교황이 어린이의 얼굴에 키스하는 모습. /AP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서 출생
항상 미소 짓는 '2중턱 할아버지'
취임 첫해, 타임 '올해의 인물' 선정
21일 오전 선종(善終)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으로서 2013년 취임 이후 12년간 교황청의 기득권을 개혁하고 가톨릭 교회에서 소외받았던 소수자를 챙기기 위해 애썼다.
취임 초엔 ‘수퍼스타’로도 불렸다. 초등학생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강론, 항상 미소 짓는 ‘2중턱 할아버지’로 대중에게 친근한 교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아 베르고글리오. 청년 시절 교황은 여느 아르헨티나 청년들처럼 축구와 탱고에 열광했다. 연정(戀情)을 품었던 여성이 있었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사제로 진로를 결정하고 예수회에 입회했으며 아르헨티나 최대 교구인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으로 재직하다 교황에 선출됐다. 그는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에 선출된 2005년 콘클라베에서도 유력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2013년 베네딕토 16세가 생전에 교황직을 사임하면서 열린 콘클라베에 참석할 때에는 왕복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한다. 자신이 선출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그가 속한 예수회는 16세기 종교개혁에 대항해 ‘교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동시에 가톨릭 개혁과 신대륙과 아시아 등에 대한 전교(傳敎)에 앞장선 수도회다. 영화 ‘미션’에도 등장하는 수도회다. 예수회는 교육에도 큰 관심을 보여 국내에도 서강대학교를 설립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 첫 교황이다.
교황은 선출 직후 자신의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이 또한 최초이다. 그동안 바오로, 요한, 베네딕토 등 성인의 이름을 딴 교황은 많았다. 전임 베네딕토 교황은 ‘16세’였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문을 연 교황은 ‘요한 23세’이다. 프란치스코(1182~1226)는 이탈리아 아시시 출신의 성인으로 ‘빈자(貧者)의 성자’로 불린다. 2013년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콘클라베에서 새 교황으로 선출되자 브라질 출신 무메스 추기경이 그를 포옹하며 “가난한 이를 잊지 마세요”라고 당부한 데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연중 제33주일(11월 중순)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선포해 매년 전 세계 가톨릭이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도록 했다. “여보세요. 교황입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일화는 숱하다. 교황청 교환원부터 교황에게 편지를 보냈던 학생까지 수행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교황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취임 후 첫 미사에 바티칸 청소부를 초대하고 부활절에는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어줬다. 미사 중에 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연단 위를 뛰어다녀도 미소만 지었다. 이런 점 때문에 취임 첫 해에 시사 주간지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수퍼스타 교황’이란 말도 나왔다. 침체된 가톨릭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은 교황으로도 평가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교황에 대해 ‘붉은 교황’ ‘마르크스 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