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순간

한남옥 (시인, 수필가, 나성 영락교회 권사)
새벽녘, 하늘은 깊은 어둠을 밀어내고 서서히 빛을 맞이한다. 아침 햇살이 퍼질 때마다 나뭇잎에는 새 이슬이 맺히고, 공기는 새로운 하루의 기운으로 가득 찬다. 밤이 낮으로 바뀌는 이 자연의 순환처럼, 우리 삶도 끊임없는 이별과 만남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던 날, 큰 잔치를 베풀었다. 어미의 품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그 작은 변화가 축하 받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기에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우리 손자는 이제 세 살이 되었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네 부부는 일찍이 아이를 데이케어에 맡겨야 했고, 젖도 이르게 떼야만 했다. 처음엔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는 지혜롭게 재택근무를 활용하며 아이를 돌보았고, 손자는 사랑 속에서 건강히 자라고 있다.
요즘 손자는 또 하나의 익숙한 것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기저귀를 떼고 스스로 변을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이를 위해 준비한 변기는 작은 물레방아가 달린 것이었는데, 소변을 보면 그것이 빙빙 돌며 흥미를 유발했다. 아이는 새로운 도전에 재미를 느끼며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지혜로운 도구 하나가 그의 성장에 다리를 놓아 주는 듯했다. 무슨 일이든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아들 내외가 참 지혜롭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작년 가을, 아들네 가족은 이사를 했다. 그리고 손자는 데이케어를 떠나 프리스쿨로 입학했다. 집에서 한국어만 사용했던 아이가 영어로 수업을 듣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 어린 것이, 낯선 언어와 친구들 속에서 서서히 자리 잡아 간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젖을 떼던 날 잔치를 열었던 것처럼, 우리는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삶은 끝없는 이별과 새로운 만남의 연속이니까.
우리 부부도 이제는 익숙했던 교회에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육신은 점점 연약해지고, 마음 한편엔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젖을 떼면 이유식을 먹으며 더 크게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제 다른 양식으로 영혼을 채울 시간이 된 것 아닐까.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일을 찾아, 남은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채우길 기대해 본다.
노을이 지면 하늘은 하루를 내려놓고 깊은 밤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밤이 끝나면 새로운 아침이 찾아온다. 우리 삶의 이별과 만남도 마치 하루의 흐름과 같다. 떠남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이 있고,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의 이치처럼 변화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