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추방 걱정에 밤잠도 설쳐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이민단속에 항의하는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잇다. 지난 1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불체자 추방 정책 반대 시위 모습. /AP
무차별 이민단속에 한인사회 공포
'영주권 취소 재판' 앞둔 가족 초조
라티노 많은 타운업소들 노심초사
추방명령 한인들 '빨리 영주권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무차별적인 이민 단속이 펼쳐지는 가운데 불법체류 한인이 처음으로 체포됐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한인사회와 한인 이민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불법 신분을 숨기고 사는 한인들은 당장 추방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라티노 불체자들을 적잖이 고용하는 LA한인타운 비즈니스들은 종업원들이 갑자기 체포돼 영업에 타격이 있을까 우려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다.
뉴저지 포트리에 거주하는 김모씨도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미국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 영주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최근의 이민단속을 보자니 더 초조해진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씨는 2000년대 초 한국에서 아내, 딸 둘과 함께 LA에 들어와 살다 몇 년 후 이민 브로커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발급을 대행해준 브로커의 비리가 당국에 적발되면서 사달이 났다. 국토안보부는 절차 상 하자를 내세우며 ‘영주권 발급 취소’ 결정을 내렸다.
김씨 가족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좌절감 속에서 변호사를 찾았고, 캘리포니아에서는 비슷한 케이스 대부분이 추방 판결이 나는 반면 뉴저지에서는 ‘구제’한 판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아예 뉴저지로 이주해 몇 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다음 달에 드디어 파이널 히어링을 받게 된다”고 밝힌 김씨는 “이번 이민 단속과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무슨 트집이라도 잡힐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불체자에 대한 단속이 예상보다 강력하고 속도도 빨라지면서 한인사회와 한인 불체자들 사이에서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민법 전문 김성환 변호사는 “최근 한인은 물론 라티노 불체자들의 문의 전화가 갑자기 폭주하면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상황”이라며 “특히 범법 기록이 없는 많은 한인 불체자들조차 노심초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번 단속에서 전과가 없는 단순 불체자는 구금 대상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최근 불체자의 경우 절도등 경범죄로 기소되더라도 즉시 구금되고 추방되는 법률이 새롭게 발효되는 등 단속의 고삐가 더 조여지면서 더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이민 단속이 강화되면서 추방 명령을 받았던 한인 중에 결혼 등으로 체류 상황이 바뀐 경우 영주권 신청을 서두르겠다는 한인들이 부쩍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영주권 뿐 아니라 시민권 취득 문의도 두드러지고 있다. 아시안 이민자 권익 옹호단체인 AJSOCAL의 한 한인 상담원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로 시민권 취득에 관한 문의가 굉장히 많다"며 "특히 요즘엔 40~50년 이상 영주권으로 살던 한인들 중에 갑자기 시민권을 따려는 경우가 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영주권은 계속 갱신하고, 그 사이에 본의 아니게 범법자가 되면 추방당할 수 있어 불안 해하지 말고 아예 시민권자가 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LA 한인타운도 직격탄을 우려하고 있다. 한인 마켓과 식당 등 업주들은 "체류 신분이 없는 직원이 많아 하루 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 제네럴 컨트랙터도 새해 들어 일용직 구하기가 엄청 힘들어졌다고 상황을 전했다.
교회에도 이민국 단속을 허용한다는 지침이 발표되면서 LA일원 한인교회 등 종교시설도 몸을 사리고 있다. 실제 이민세관단속국(ICE)은지난 달 말 애틀랜타, 사바나 등 전국 곳곳의 교회에서도 불체자 단속을 벌여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한 한인 목회자는 “미국 교회를 빌려 한인과 중국인, 히스패닉이 각각 예배를 드리고 있다”며 “한인은 시니어 중심이라 그나마 영향이 적은 편이지만 히스패닉교회는 단속 발표 이후 참석자가 눈에 띄게 줄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체류 신분으로 인해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한인 불체자 인구는 약 14만~1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입양제도 사각지대에 몰려 미처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한인 입양인들과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가 함께 불법 체류 신분이 된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불법 체류 청년 추방 유예’(DACA) 프로그램으로 합법적 신분을 얻은 한인 1.5세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DACA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1기 행정부 때처럼 이 제도의 폐지를 시도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불체자 단속은 단기적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시도의 일환처럼 보인다”며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단속은 최소한 수 개월 동안 지속되고, 연방정부는 계속해서 추가 조치를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해광 기자 la@chosun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