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간증] 예수 없이 못사는 남자 -여호와 이레, 예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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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간증] 예수 없이 못사는 남자 <8> -여호와 이레, 예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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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광교회 신승훈 목사

 

내가 아프리카를 가기 전에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계셨음을 실감했다. 최돈희 선교사가 케냐에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 선교사님은 노르웨이에 살고 계시던 분이었다. 아프리카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나보다 약 1년 먼저 아프리카로 가시게 되었다. 평신도 선교사였던 그녀가 제자 훈련을 시작하여 몇 사람을 헌신시켰다.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들을 주의 종으로 길러낸다는 것은 평신도 선교사였던 그녀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바로 그 때 내가 아프리카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신학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말이 신학교지 목회자 훈련소 같은 곳이었다. 93 1 5일에 가서 2 23일에 시작을 했다. 28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 학교가 시작되는 중에 몇 가지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이 있었다. 학생은 있었는데 건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먹고 잘 수 있고 강의할 수 있는 집, 그럴만한 큰 집도 없었지만 있었어도 학생들을 합숙하여 가르친다면 집주인들이 다 싫어했다. 집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그날은 주님께 인도해달라고 기도 후 집을 찾으러 나가는데 주님께서 감동을 주셨다. 오른 쪽으로, 곧장, 왼쪽으로인도하심을 따라 한 20여분을 운전했다.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 집이라는 감동이 왔다. 문을 두드리니 집을 지키는 청년이 하나 나왔다. 빈집이라고 했다. 식당으로 쓸 장소, 예배드릴 장소, 도서실 할 장소, 강의실, 30 명이 먹고 잘 수 있는 시설. 개인 집에 어떻게 이런 시설이 있는가? 물어 보니 2년째 집이 비어있단다. 빈 집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새로 지은 집이 2 년이나 비어있다니? 흥분한 가운데 부동산 업자의 전화번호를 물어서 전화를 했다. 가톨릭 신부님이 주인이란다.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주님이 감동주신 집이라 전화를 그냥 끊지 않고 집주인에게 한 번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개신교 선교사이고 개신교 신학교를 한다고, 집을 빌려줄 의향이 있냐?”고.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빌려준단다. 우째 이런 일이? 가톨릭의 신부님이 개신교 선교사에게 마음이 열려 계셨다. 신학교를 한다는데? 많은 사람이 합숙을 한다는데? 새 집을 빌려주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흥분을 가지고 나를 파송한 교회에 전화를 했다. “목사님, 건물을 찾았습니다. 3개월 렌트비와 필요한 가구, , 사무용품, 식기, 담요, 매트, 취사도구 등등을 사려면 만 불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은 다 있습니다” 목사님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돈이 없는데요”. 그때 얼마나 실망이 되었는지 모른다. 주님께서 건물을 주신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된 거야 ? “예? 돈이 없으시다고요? 그러면 저를 왜 선교를 보내셨나요?” 이 말이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잘 알겠습니다.” 힘없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우째 이런 일이? 하나님이 주신 건물인데, 돈이 없다니! 그 날 밤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잠이 깜빡 들었는데 새벽 3시에 팩스가 왔다. 나가서 받았는데 이럴 수가! 미국에서 선교오기 전에 두 번 만난 집사님이 보낸 팩스였다. “주님께서 만 달러를 선교사님에게 보내시라는 감동을 주셔서 보내드립니다. 꼭 쓰실 일이 있는 줄로 압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집사님께서 새벽기도 하는데 주님께서 신 선교사에게 만 달러를 보내시라고 하셔서 주님께 질문을 했다고 했다. 그도 그렇게 많은 돈을 헌금한 적이 없었던 터라 “주님, 공이 세 개 아닙니까? 혹시 천 달러?” 주님은 분명히 공 네 개, 만 달러라고 하셨단다. 팩스에 적혀있기를 “나는 신 선교사님이 어디에 쓰실 일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만 달러를 보내라고 하셔서 순종하고 보냅니다. 꼭 쓰실 일이 있는 줄로 알고 이렇게 보냅니다.“ 나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팩스 용지를 잡고 눈물을 흘렸다. 방에 들어와서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었다. 내가 필요했던 그 금액, 보내주신 선교비가 5천달러였거나 만 달러였어도 그런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나를 지켜보시는 주님, 인도하시는 주님, 너무나 감사해서 울고 있는데 아내가 깼다. 아내는 영문도 모른 채 한참을 같이 울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두려워서 묻지도 못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예요? 죽은 사람이?“ 자초지종을 듣고 난 아내와 나는 같이 울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우리 신학교의 소문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성경만 가르치는 신학교, 새벽 기도와 철야가 있는 신학교, 무료 신학교, 전도하러 같이 나가고, 성경을 암송해야 밥을 주고, 책도 무료, 우리 학교 졸업생들이 목회하는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고, 이런 저런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로 우리 신학교에 입학하려면 3년을 기다려야 했다. “주님 땅을 주세요. 건물을 주세요. 주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 하잖아요? 저 위해서 찾는 것 아닙니다.” 나이로비 시내에 카렌이라는 동네에 5에이커의 땅을 사게 하셨다.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자금을 보내주셨다. 그 간증을 다 하자면 한이 없다. 이후 120 명이 숙식할 수 있는 신학교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일년 후에는 400km 떨어진 곳에 분교도 세우게 하셨다. 주님께서 다 하셨다.

 주님께서는 나이로비의 키베라라는 빈민가에 초등학교를 인수하게 하셨다. 나이로비 인구(당시 200) 75%가 빈민가에 산다. 그 당시 100여명의 학생이 있던 학교였는데 지금은 천 여명의 학생이 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중고등학교도 세우게 하셨다. 이 학교는 신문에 자주 나는 학교가 되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술집을 사서 교회와 학교로 개조하였다. 아이들의 성적이 우수하고 예능 활동이 뛰어나서 대통령상도 받았다. 또 다른 빈민가인 가리오방기에 초등학교를 세우게 하셨다. 다 하나님의 은혜다.

또한 원시인들이 사는 지역인 맛사이 지역에도 학교를 세우게 하셨다. 그 시작이 이러하다. 내가 살던 아파트 매니저와 알고 있는 맛사이 소 장사가 있었는데 둘이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 맛사이족이 나를 만나기를 원한다고 하여 만났더니 자기가 사는 지역은 외부인들이 지난 40년간 들어온 적이 없는 진짜 원시 지역이라 하며 꼭 한번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방문을 약속하고 맛사이 지역으로 가던 그 날, 맛사이 주민들이 많이 모였다. 4km이상을 걸어온 사람들도 많았다. 소똥 집에 살며 일부다처에 원시인들같이 사는 사람들,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나를 환영하며 이 지역에도 병원이나 학교를 세워달라고 했다. 교회를 세우려면 이 지역에는 들어오지도 말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도우면 조금밖에 못 돕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엄청난 도움을 주십니다. 내 작은 도움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받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받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들 중 한 젊은이가 질문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는데요 ?”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오게 해주세요. 비가 3년 반이나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차 싶었다. 3년반 비가 안 와 ? 내가 엘리야냐 ? 3년반동안 비다운 비가 안 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엎지른 물이었다. 해 보자. 나는 그들보고 나를 따라 하라고 했다. “하나님 비주세요.” 한국말로, 영어로, 스와힐리어로, 맛사이어로, 다 합쳐서 백 번은 했나 보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7 밤 자고 북 치면 이 나무 아래로 다시 모이세요.” 시계도, 달력도 없는 그들이었다. 약속한 일 주일이 지났다. 나는 차를 몰고 맛사이 지역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풀이 노랬다. 비가 안 왔다. 너무나 실망이었다. “하나님 진짜로 비 주실 수 있잖아요? 비오면 주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교회 하나 생기는데 왜 비를 안 주셨어요? 제가 가서 무슨 말합니까? 나는 설교하러 안 갑니다. 아니 못 갑니다. 하나님이 대신 가세요!” 강짜인지 기도인지? 그렇다고 안 갈 수 있나? 사람들을 모이라고 했는데? 기도인지 불평인지를 계속하며 가던 나는 눈을 의심했다 마을 입구에서 보니 그 마을만 초록색이었다. 비가 온 것이다. 마을 입구에서 나의 차가 비가 와서 물이 고인 진창에 빠지게 되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를 뒤로 빼려는데 헛바퀴가 돌았다. 다시 앞으로 나가려는데 역시 헛바퀴가 돌았다. 차를 빼려고 계속 시도하다가 완전히 차가 진창에 빠져버렸다. 조금 전에 할렐루야 하던 나는 다시 불평을 했다. “주님, 비를 주시려면 적당히 주셔야지요. 나 지금 설교하러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갑니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멋대로다. 그런 나를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는 주님을 감사할 뿐이다. 그 때 나의 앞에 맛사이 전사 7명이 나타났다. 뒤에서 5명이 또 왼쪽에서 3명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곳은 젊은이들이 15 명이 나타날 수 있는 지역이 절대로 아닌 벌판이다. 나는 그들보고 손짓으로 차를 밀라고 했다. 그들이 모두 밀어서 차가 진창을 빠졌다. 그들이 내 봉고 차를 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들을 다 태우고 7일전에 약속한 나무 밑으로 갔다. 일주일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 교회와 학교가 세워지게 되었다. 얼마 후에 그 지역의 학교와 교회 소문을 들은 다른 지역 맛사이들이 자기 지역에도 교회와 학교를 세워달라고 간청을 해서 또 다른 맛사이 지역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가뭄도, 비도 예비하신 주님, 사역을 위하여 빈민가에 학생들과 교사들을 그리고 신학교의 모든 것을 예비하신 주님, 그 주님은 계속하여 모든 면에서 역사하여 주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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