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신(神)이 되는 인도"

홈 > 로컬뉴스 > 로컬뉴스
로컬뉴스

"모두 다, 신(神)이 되는 인도"

웹마스터

인도 히말라야의 산간마을 다람살라 전경. 뉴델리시에 있는 시크교 사원. 무슬림 유적지인 승전기념탑 '구뜹 미나르'에서 일행이 기념촬영을 했다. 뉴델리에 있는 전승기념물 '인디아 게이트'. 꾸뜹 미나르와 모스크 유적들. 오토바이 미니택스 '툭툭'. 갠지스강의 화장터 모습. 힌두교 사제들이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을 치르고 있다. 연꽃 모양의 바하이교의 로터스 사원. 다람살라에서 패러글라이딩 활강을 준비하는 모습.(위에서부터)  /하기환 회장 제공


[나의 여행기-한남체인 하기환 회장 일행의 인도 문화탐방] <상>


LA스키협회 회원 4명 원정팀 꾸려 

에베레스트 등반 위해 히말라야로

네팔 폭우, 아쉬움 속 인도로 발길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바하이교, 

시크교 등… "과연 '신의 나라'"

승전기념탑 '꾸뜹 미나르' 웅장함 

힌두교 최대의 성지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화장 '최고의 예우'


정말 내일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간단한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실감했다. 지난 10월, LA스키협회 회원이 주축이 된 히말라야 트레킹팀이 두 번째로 만들어졌다. 2023년 제1차로 우리는 안나푸르나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반환점으로 돌아서며, 다음 해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EBC)를 찾기로 했던 것. 약속대로 우리 4명으로 짜인 팀은 히말라야로 떠났다. 하지만, 여행은 에베레스트가 아닌 인도이야기로만 가득하게 됐다. 지금부터 조선일보LA 독자들과 나(하기환), 론김·제인김 부부, 하경철씨와 함께 떠났던 여행스토리를 풀어 놓는다.  


에베레스트를 향해 GO!

지난 10월 3일, 한국 인천을 떠나 6시간 정도 비행 후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 카투만두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는 계획대로 아주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다음날 4일, 아침 일찍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에 도착했다. 예약된 헬리콥터만 타면 될 일이다. 시간에 쫓기는 우리는 헬리콥터를 빌려 루클라공항(Lukla Airport)을 거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로 가기로 했다. EBC 코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1위를 놓치지 않는 루클라부터 시작한다. 그 공항에 내려 일주일 정도 고소적응을 하며 걸어 올라 EBC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다시 걸어 내려오거나, 헬기로 하산하는 게 일반적인 순서. 우리는 그 순서를 거꾸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소증 우려도 있으나 고산 스키를 즐기는 우리 팀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예전 한국의 시골역 대합실 닮은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은 몹시 붐볐다. 많은 트레커들이 모였다. 이제 조금 있으면 에베레스트로 비행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들떠 있었다. 그런데 항공사에서 연락이 없다. 한 시간 두 시간, 무려 5시간이나 출발을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이 없다. 그 대신 우리와 계약한 네팔 여행사에서 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Ron, 미스터 하, 및 모든 팀원들, 네팔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팔의 최근 소식을 업데이트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때 아닌 집중 호우와 홍수로 인해 네팔 전역의 많은 인프라가 파괴되어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중략), 10월 1일부터 민간항공은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구조 헬리콥터만 착륙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규정이 갑작스럽게 발표되었습니다. 모든 헬리콥터는 정부 구조를 위해 대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습니다...(중략), EBC에 헬기를 착륙시키지 못해 매우 유감입니다.”


급히 구글 검색을 해 보니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가 간다. 네팔에서는 22년 만에 내린 폭우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홍수와 산사태 사망자가 200명을 넘어섰다는 뉴스. 지난달 27일부터 10월 2일까지, 카트만두에는 하루 최대 322mm의 폭우가 쏟아졌다. 카트만두공항 관측소는 이번 강우량이 2002년 이후 최고라고 밝혔다. 네팔 정부는 전날 저녁 이번 수해에서 4200여명이 구조됐지만, 전국에서 총 209명이 사망했고 29명은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이럴 수가! 이러니 이용 가능한 헬리콥터는 모두 수재민 구조를 위해 징발된 것이다. 그리고 위험한 루크라공항도 기상 관계로 경비행기조차 이·착륙을 못 한다고 했다. 


에베레스트로 갈 수만 있다면 5시간이 아니라 종일이라도 대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심각했고 엄중했다. 정말 사람이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걸 실감한다. 희망이 없었다. 이럴 땐 포기가 빠를수록 좋다. EBC 일정을 취소하고 다음 여행지인 인도 여행으로 바로 떠나기로 뜻을 모았다. 네팔 대신 인도에서 일정을 며칠 더 늘리기로 한 것. 우리는 다음 날 바로 인도의 수도 뉴델리(New Delhi)로 비행했다. 그리하여 에베레스트의 웅장한 자연 대신 문화탐방이 시작된 것이다. 


모두 다, 신(神)이 되는 인도

계절이 10월인데도 델리는 습기가 많았고 또 무척 더웠다. 나는 2009년 첫 인도 여행을 했었으니, 15년 만에 두 번째 방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명언이다. 첫 번째 여행 때는 관심 없었던 문화가, 종교가, 먹을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인도(印度·India)는 거대한 크기로 인해 ‘아대륙’으로도 불린다. 2022년까지 중국은 세계 인구 순위 1위였다. 2023년에 인도가 중국을 추월했다. 인도는 ‘지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라는 영예(?)를 차지했다. 인구는 가장 많고 땅 면적은 일곱 번째로 넓은 나라 인도. 그리고 인구 수만큼이나 신(神)이 많다는 다신교. 인류 4대 문명인 인더스문명을 품고 기원전까지 거슬러 오르는 오랜 문화.


히말라야 산록을 걷는 대신 우리는 문화관광유적지 탐승을 위하여 바쁜 걸음을 옮겨야 했다. 물론 인도를 신의 나라라고 하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다. 고대로부터의 힌두교는 물론 신흥종교도 계속 태어나고 있는 인도. 그런 신흥종교 중 하나에 ‘바하이 교(敎)’가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종교였다. 물어물어 찾아간 로터스 템플(Lotus Temple)은 그들의 예배당이었다. 그들이 세운 로토스 템플은 이제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다. ‘로터스’라는 이름처럼 연꽃 모양의 거대한 성전은 웅장하고도 아름다웠다. 우리에겐 생소한 종교였는데, 알고 보니 이미 서울 용산 후암동에도 ‘바하이 센터’가 있었다. 미국 시카고 미시간 레이크 주변 윌멧에도 바하이교 사원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긴 설명 대신 에피소드 하나를 전한다. 지금은 시카고의 명물이 된 이 바하이 사원의 기공식은 1912년에 있었다. 당시 10년 가까이 미완성 건축물이었다. 항상 공사 중인 이 건물을 보고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가 비서에게 물었다. 

“저건 뭐 하는 건물이지? 왜 저렇게 더디게 올라가는 거야?” 

사정을 알아본 비서가 카네기에게 보고했다. 

“바하이교 사원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종교의 경전을 낭독하는 곳입니다.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불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경전까지 말입니다. 낭독만 하고 해석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해석을 하면 서로 싸우게 되니까요.”


이 에피소드를 들었을 때 미소가 나왔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바하이교는 19세기 중반 생긴 신생 종교. 이슬람교 계통의 외래 신종교인 바하이교까지 지금 인도에서는 번성 중이다. 이렇게 ‘신의 나라’ 인도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인도 뉴델리의 중앙 교차로에 서 있는 전승기념물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를 둘러보고 식당을 찾았다. 예전에도 먹어 본 적이 있으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인도의 식단들. 소고기는 없다. 인도의 국교라 할 수 있는 힌두교는 소를 신성시하니 감히 먹을 수 없는 것. 닭고기 위주의 카레와 난(naan)이란 빵이 주식이다. 난은 발효된 밀가루 반죽을 달구어진 화덕 표면에 얹어 구워 낸 빵. 인도에서는 기본적인 주식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도의 음식이 우리 입에 딱 들어맞았다. 어지러운 인도 문화와 더불어 음식 탐방도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에베레스트 대신 히말라야 산록을 날다

헬기를 못 띄운 카트만두 여행사가 우리에게 추천한 인도 여행지가 있었다. 히말라야 만년 설산을 볼 수 있다는, 산간마을 다람살라(Dharamsala)가 그곳. 히말라야산맥 ‘캉그라 계곡’에 있는 이 마을에는 티베트 망명 정부가 들어서 있다. 이튿날 우리는 다름살라공항에 도착했다. 히말라야 산맥 자락의 아주 작은 도시였는데 정말 히말라야 설산이 보인다. 호텔에 체크인했다. 히말라야 산록의 호텔. 스위스 알프스 중턱의 멋진 리조트를 상상했다. 그러나 가난한 인도의 변방에서 그런 기대는 무리. 거리 구경을 나섰지만 길도 좁고, 아주 무질서하고 지저분했다. 주인 없는 개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물론 티베트 불교나 이곳에 거주하는 달라이라마(Dalai Lama)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저 가난하고 무질서만 보이는 가난한 도시였다. 다람살라에서는 관광과 체험을 할 게 별로 없었다. 명상과 요가를 하는 기도원 같은 곳이 전부였으니까. 


특별한 관광지가 없지만 여기서도 유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이었다. 작년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도 네팔 포카라에서 한 번 시도한 적이 있다. 높은 산에서 뛰어내려 창공을 가르며 히말라야 경치를 즐기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요금도 포카라보다 반값도 안 되게 저렴했다. 활공을 위해 해발 2,500m까지 좁은 산길을 낡은 차로 올라가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곡예였다. 앞자리에 앉은 나는 브레이크를 힘주어 밟는 모션을 얼마나 했는지, 발에 쥐가 날 정도였다. 정말 험한 길을 미친 듯 달리는 운전사는 길보다 더 험하게 운전을 했다. 


장비를 챙기고 언덕 정상으로 올라갔다. 리더는 파라슈트를 펼쳐 놓고 적당한 바람을 기다렸다. 바람 방향이 바뀌는 대로 장소를 옮겨가며 허공에 뜰 준비를 했다. 적당한 바람이 불자 우리는 산비탈을 힘차게 뛰어내렸다. 파라슈트가 활짝 펴지면서 낙하를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 속에 뒤로 보이는 만년 설산을 배경으로 비행하는 기분은 최고였다. 발밑으로는 푸른 차밭과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들이 보인다. 까마득히 아래로 보였던 마을까지 20여분간 하늘을 가르고 무사하게 안착했다. 비행을 마친 후 다시 다람살라로 내려오는 길에 힌두교의 아주 오래된 작은 템플에 들렸다. 인도는 힌두교이고, 힌두교는 바로 인도라 할 수 있다. 힌두교의 역사는 모든 종교보다 더 오래되었다. 


힌두교의 특징은 모시는 신이 수십만 이라고 한다. 누구는 인도인 숫자만큼 신이 있다고도 한다. 말 그대로 다신교(多神敎). 그 말처럼 다~ 신이 되는 나라 인도. 따라서 모든 동물들도 신이다. 특히 코브라 뱀, 코끼리, 원숭이 등이 대표적인 동물 신으로 분류하고 있다. 소도 신성한 신이니, 좁은 길에 소가 서 있으면 차들이 피해 다닌다. 어슬렁거리는 소는 가득이나 엉망인 교통체증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과연 혼돈과 혼란이 일상이지만 인도인들은 그것에 익숙해져서인지 불만 없이 살아가고 있다. 오후에는 호텔 안에서 2시간 마사지 서비스를 받았는데 값이 너무 저렴하다. 과연 인도의 저렴한 물가와 강한 달러를 실감한다. 


시크교도와 꾸뜹 미나르 유적지

다시 델리로 돌아온 우리는 펀자브지방에 많은 시크교(Sikhism) 사원을 찾았다. 시크교는 다신교를 믿는 힌두교와 다르게, 유일신을 믿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교리 측면에서는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을 내세워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반대한다. 종교개혁운동이 한창이던 16세기, 구루 나나크(Guru Nanak)가 창시한 시크교. 500년밖에 되지 않은 신흥종교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엄청난 규모의 시크사원은 곳곳에 있다. 사원은 신자와 관광객으로 아주 붐볐는데 사진을 못 찍게 한다. 경건한 사원이어서 남자나 여자나 반바지 차림은 제지를 받았다. 우리는 긴 옷을 빌려 입고 여자 머리엔 스카프를 하나씩 쓰고 사원으로 들어섰다. 물론 신발도 맡기고 양말도 벗고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바닥 및 천장이 대리석으로 잘 장식된 강당에서 시크교 성직자들이 경전을 읽으며 설교를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간혹 머리에 터번을 쓴 인도인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힌두교도가 아닌 것을 처음 알았다. 


델리에는 또 다른 유명한 무슬림 성지들이 있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꾸뜹 미나르(Qutb Minar)' 유적지가 그곳. 1193년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술탄 ‘꾸뜹’이란 인물이 이곳 힌두왕국을 패배시키고, 승전기념으로 세운 승리의 탑(미나르)이다. 꾸뜹 미나르에 입장하면 돌로 만든 거대한 사원들이 보인다. 모두 유네스코 지정 이슬람 모스크 유적군이다. 유적지 중심에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양식이 혼합된 높이 73m의 5층 석탑이 보인다. 탑 속에는 377계단 있어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는데 지금은 출입할 수 없다. 그 거대한 탑에 사용된 돌 색깔과 조각은 웅장하고, 멋있었고 화려했으며, 역사적 가치도 높았다. 인도를 대표하는 탑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말을 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지만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인도는 이렇게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같은 여러 종교가 지배했던 나라였다.


성스러운 갠지스강과 고대도시 바라나시

오후엔 또 다른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로 출발했다.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州)에 자리한 도시. 옛날 카시왕국의 수도이자 동시에 힌두교의 최대 성지가 바로 바라나시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갠지스강이 바로 이 도시를 관통한다. 갠지스강은 힌두교도에게는 최고의 성스러운 성지로 믿어진다. 강가 가트에는 성스러운 목욕을 하고, 그 물을 마시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신도들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가트에서 죽은 자를 화장하는 건 힌두교 최고의 예우라고 했다. 그 화장 모습은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문득 15년 전 이 도시 방문 기억이 떠올랐다. 갠지스강 가트 계단에서 힌두교 사제들이 탬벌린을 치면서 밤새도록 노래와 춤을 추고 있었다. 아마 힌두교 축일이었던 것 같았다. 사제들 노래가 너무 아름답고, 통역으로 들었던 가사는 인생을 음미하는 깊은 내용이었다. 


이제 그 감동적 장면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바라나시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는데, 일행 중 내 것만 오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델리에서 내 짐을 싣지 않은 것이다. 항공사에 클레임을 걸고 밖으로 나왔다. 바라나시에는 인도인 가이드가 마중 나왔는데, 한국 이름으로 자신을 ‘철수’라고 소개한다. 한국인들이 그만큼 많이 찾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의 안내로 갠지스강 석양을 보는 배를 타고 강가 바라나시 고대 건물들을 관광하기로 했다. 요즈음 느끼는 것인데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 덕분인지, 아시아 어디서나 한국말을 하는 현지인이 있다. 그들 덕분에 편하게 관광을 다닐 수가 있다. 그런데 철수씨의 말에 의하면 요사이 강물이 불어서 가트가 물에 잠겼다고 했다. 내가 고대했던 사제들 노래도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정도밖에 안 한다고 한다. 12월이 되어 히말라야가 얼어붙어 강물이 줄고 가트가 물 밖으로 나와야 사제들이 공연한다는 것. 내가 바라나시에서 기대하는 것 중 하나가, 밤새워 부르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려는 것이었다. 실망이 크다. 


힌두 사제들이 공연했던 바로 옆 가트 화장터는 오픈되어서 사용 중이었다. 여러 곳 가트에서 나무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시체를 누인 후 화장하는 것이다. 이런 화장에도 빈부가 있었다. 제대로 된 화장에는 나무값 등 상당한 경비가 들어서 서민들은 큰 부담이라는 것이다. 15년 전에 겁도 없이 화장터로 걸어가 카메라를 대고 찍다가 혼난 추억이 떠오른다. 동네 깡패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서 돈을 내라고 협박했던 기억. 여자는 화장터를 못 쓰고 남자들만 사용 가능하다는 것도 놀라웠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시신을 24시간 안에 강 옆 화장터에 모셔야 효자가 된다고 했다. 2015년에도 지프차 지붕에 비단옷을 입힌 시체를 태운 채, 도심을 쾌속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바라나시를 둘러보며 24시간 안에 바라나시 화장터까지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바라나시는 최악의 도시로 바뀌었다. 인구가 300만이 넘는 대도시에 제대로 포장된 길도 없는데 온갖 동물들이 서성이고 있다. 거기에 자동차, 툭툭, 인력거 릭샤, 오토바이와 넘치는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인다. 자동차 매연과 길의 먼지에 목이 아픈 공기질. 정말 심하게 표현하면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혼돈의 지옥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계속>


* '나의 여행기'는 독자 여러분의 지면입니다. 세상은 넓고 갈 곳도, 볼 것도 많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나홀로 떠난 여행, 그 여행의 기록과 감상을 미주조선일보LA 독자들과 함께 나누시면 어떻겠습니까? 여행기를 잘 정리해 간단한 자기소개와 사진을 함께 이메일(mkim@chosundaily.com)로 보내주시면 인상적인 것을 채택해 지면에 소개하겠습니다. 선택된 글은 분량 조절 및 수정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