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칼럼] 관광하는 종교개혁과 관광하는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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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칼럼] 관광하는 종교개혁과 관광하는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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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옥 목사

미라클교회

 

2017 10 31일은 교회 역사에 기념비적인 날이라 하겠다. 이는 당시 34세였던,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젊은 신학 교수였던 루터가 1517 10 31일에 대학교회의 문에,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과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앙을 담은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지, 50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하여 종교개혁500주년이었던 당시에 많은 보도가 쏟아졌고, 특별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종교개혁의 발상지인 루터의 독일과 쯔빙글리와 칼뱅의 스위스 등등, 유럽의 종교개혁 기념지를 엮어 살펴보는 관광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필자도 당시에 “이러한 곳들을 방문해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지만, 경제적, 시간적, 상황적 이유로 그저 부러워할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 또 한 가지의 생각은 종교개혁 유적지를 관광하는 일도 의미가 있겠지만, 종교개혁적 상황에 있는 오늘의 절박한 교회상황에서 개혁의 불길을 되살린 후에 방문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겠다는 옅은 생각이 있었다. 과거에 유명 목사님의 글에서 칼뱅이 목회했던 제네바의 텅 빈 예배당 이야기와 그 예배당에서 열린 달라이 라마의 집회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는 내용을 읽었다. 당시 종교개혁의 발상지였던 나라들과 또한 종교개혁의 중심역할을 했던 교회들의 쇠락 소식을 들을 때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 결국 오늘날 유럽의 유서 깊은 많은 예배당들은 소수의 성도들만 예배하는 장소가 되었고, 대신에 많은 관광객들이 관광하는 예배당, 관광지가 되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껍데기는 있으나, 그 안에 생명은 없는, 영적 미이라 상태의 교회를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아름다운 빛 속, 고색창연한 박물관 한 편에, 우두커니 서있는, ‘미이라 교회’로 보존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틴 루터를 따르는 루터교회의 주류도, 장 칼뱅을 따르는 장로교회의 주류도, 존 웨슬리를 따르는 감리교회의 주류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노멀이 아닌, 세속의 문화와 오염된 세계관과 비성경적 뉴 노멀을 쫓겠다고 선언한 지금의 시점 에서는 더더욱 영적 미이라 상태의 교회가 되어감을 인정하게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오직 믿음’(Sola Fide)에 의한 구원에서 시작되었다. 루터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에 의한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재천명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기득권이 더 중요했던 교황 레오 10세는 이듬해인, 1520 6 15일에 루터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파문하겠다는 교황청 출교 교서를 발표하였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오 주여 일어나서 당신의 입장을 밝히소서. 야생의 산돼지가 당신의 포도 나무를 침범했나이다” 십자가를 통과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권을 위한 면죄부로 구원받는 것을 가르치는 교황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포도원을 허는 야생의 산돼지가 되었는데, 이 정도면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것 같다. 이로 말미암아 루터는 오직 성경’ (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의 원칙을 핵심으로 삼게 되었다. 교황의 칙령이 성경의 권위보다 높았던 시절, 뿜어져 나오는 개혁의 불길은 루터 한 사람을 파문하는 것으로 막아낼 수 가 없었다. 막으면 막을수록 압축의 팽창력은 더욱 극대화가 되었다. 결국 루터에게서 독일로, 스위스로, 영국으로 종교개혁의 불길은 유럽과 북미 대륙 전체를 휩쓸고, 복음주의 신앙 운동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흥은 마침내 1800년초, ‘Student Volunteer in Mission’으로 확산되며,‘위대한 선교 19세기’의 불길로 전세계에 확산되었다. 이제 507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 때 개혁의 주체였던 개신교는, 수술대 위에 올라가야 하는 또 다른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하여 우리들도 이제는‘종교개혁을 관광’하거나 우리의‘관광하는 신앙생활’을 멈출 때가 되었다. 하나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목어경(鑒於經) 날마다 죽음으로, 날마다 영적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살아가는 또 다른 루터, 칼뱅, 웨슬리가 되어 다시금 타오르며 번져가는 횃불이 되어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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