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재산도 모두 잃었다… 남편은 살해된 것"
페루 고아원서 자원봉사 도중 행복한 표정으로 원생들이 쓴 한국어 감사편지를 보여주는 벤자민·에밀리 정씨 부부. /에밀리 정씨 제공
버지니아주 한인 벤자민 정씨
페루서 자원봉사 도중 사고로 사망
미망인 "조사 결과 사고 아닌 살인"
50만달러 이상 지출, 사무실서 생활
사랑도, 재산도 모두 잃었다. 살던 집까지 차압당해 사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한다.
불의의 사고(또는 살인?)로 한인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버지니아 출신 백인여성 에밀리 정(41)씨 얘기다. 벤자민(한국명 정성범)·에밀리 정씨 부부는 버지니아주 애난데일에서 ‘벤자민 정 보험 에이전시’를 운영할 당시인 2020년 12월 말 남미 페루 수도 리마 인근 한 고아원으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정씨 부부는 2주만 봉사하고 미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팬데믹으로 모든게 셧다운 되면서 어려움에 처한 고아원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귀국할 수가 없어 계속 페루에 머물며 원생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그러던 중 2022년 1월 어느날 비극이 터지고야 말았다.
남편 정씨가 모터사이클을 타고가다 SUV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장기가 파열되고 두개골과 갈비뼈 곳곳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것. 정씨는 병원에서 6개월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한 후 개인주택으로 장소를 옮겨 치료를 받아오다 건강이 악화돼 지난 9월 25일 45세를 일기로 결국 숨을 거뒀다.
에밀리 정씨는 지난달 30일 본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거부로 남편의 수술비, 입원비, 간호사·물리치료사 급여, 렌트비, 생활비, 의료장비 구입비 등을 모두 합쳐 50만달러 넘게 지출했으며, 크레딧카드·융자 등을 포함해 현재 20만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며 “변호사 등을 고용해 페루 현지에서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한게 아니라 미행당한 후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모터사이클 사고로 땅바닥에 나뒹굴었으면 온 몸에 스크래치가 났어야 하는데 스크래치가 전혀 없었고, 사고당시 지니고 있던 현찰 2만달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며 “페루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요청했지만 시간만 끌 뿐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사고를 낸 SUV 운전자는 경찰의 조사를 받은 후 석방됐다고 정씨는 전했다.
그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을 돌본 간호사·물리치료사의 3개월치 월급과 노동법상 베니핏 등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소송까지 당해 눈앞이 캄캄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정씨는 애난데일의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중 남편을 처음 만나 사랑을 싹틔웠고 2005년 결혼했다.
시부모가 LA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정씨는 페루에서 화장한 남편의 유골을 이번 주말 시댁식구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정씨는 “살던 집을 차압당해 보험에이전시 사무실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남편이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진상 규명을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고 한인 커뮤니티의 도움을 호소했다.
정씨의 지인들은 지난주 정씨를 돕기위해 고펀드미 어카운트(https://gofund.me/ae6df066)를 개설했으며 한인들의 작은 정성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성훈 기자 la@chosun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