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의 행복칼럼] 고독으로 익어가는 가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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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의 행복칼럼] 고독으로 익어가는 가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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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지배했던 암울한 시절 체코의 프라하 지하 폐지 처리장에 ‘한탸’라는 폐지 압축공이 있었다. 한탸는 축축한 지하에서 폐지를 압축하며 35년을 보냈다. 한탸는 자기 일과 일터를 한없이 사랑하며 자신의 인생에 자부심이 대단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페지압축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탸는 종종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폐지 작업을 하다 줍는 책을 읽는 것이 한탸의 행복이었다. 한탸는 자신의 공간인 지하 폐지 더미에서 자신이 구원시킨 책들을 통해 진리를 얻었다. 그는 책을 찾아낼 때 책의 감촉을 느끼는 기쁨을 위해 작업 중에 장갑을 끼지 않았다. 한탸는 이만큼 책을 사랑했고, 이렇게 책을 사랑하고 책을 읽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한탸는 쏟아지는 폐지에서 쓸만한 책들을 찾았고, 그 책들에서 인생의 진리를 찾았다. 그는 누구보다 많이 읽었고 그렇게 얻은 지식과 지혜를 소중히 여겼다. 책을 읽으며 환상처럼 니체와 괴테 등의 위인들을 만나는 멋진 경험도 했다. 그는 폐지압축 35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한탸는 어느 날 자신이 조작하는 압축기보다 성능이 훨씬 더 좋은 새 압축기 도입을 알고 자신의 실직과 행복의 상실을 예감하고 슬퍼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 그는 두려움과 슬픔에 떤다. 

   

한탸는 밀려난다. 고용주가 어느 날 한탸를 불러 이제는 압축공의 일을 그만두고 처리된 폐지에서 흰 종이를 찾는 일을 하라고 주문한다. 정든 일을 한순간에 뺏기고 백지를 찾는 한탸는 자신의 세계가 끝난 것을 실감하고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압축기 안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얘기의 마지막 장면이다. 직장 상실보다 고독 상실을 더 아파하는 한탸의 아픔이 애잔하다. 

   

이상은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걸작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2016년 한국의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이었다.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시대와 삶에 대한 질펀한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보후밀 흐라발 본인이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라고 할 만큼 애착을 가진 작품이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명작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끈적끈적한 삶을 담은 실존적 작품이다. 제목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포탄 소리 가득한 전쟁 상황이나 복잡하고 분주한 삶과 세상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고독감을 의미한다. 그에게 고독은 생명줄이었고 행복이었다. 그 고독은 전쟁의 광음이나 파리떼와 쥐떼가 토해 내는 소음이 가득한 삶의 현장에서 한탸가 누렸던 자기만의 세상이었다. 그 고독이 한탸가 자신을 지킨 삶의 방패였고 자부심이었고 자랑이었다.

   

누구나 고독이 필요하다. 고독(Solitude)은 외로움(Loneliness)이 아니다. 전쟁의 포성과 기계소리, 파리소리, 쥐떼 몰리는 요란한 작업장에서 현탸가 홀로 누린 것이 고독의 묘미다. 고독은 자기 객관화로 자기를 만나는 시간이다. 고독은 스스로 자신을 접촉과 복잡함으로부터 격리해 ‘홀로’ 즐기는 사색의 향연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깊어가는 가을처럼 생각과 삶도 깊어가면 좋겠다. 허망한 재미나 얄팍한 이익을 좇아 분주하지 않고 고독으로 내면을 살피며 익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소음 가득한 세월 속에서, 생각을 살찌우는 한 줄의 글을 읽고 정리된 생각을 글로 남기는 가을을 보내고 싶다. 만물이 익어가는 이 가을에 우리 인생도 탐스럽게 익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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